[제주/서귀포] 제주 트래킹 코스 추천, 갑마장길 및 가름질 쫄븐갑마장길

2019-02 이 달의 추천길 2019-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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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루 만에 사계절을

만날 수 있는 길

김강은님


2019년, 새해다. 가족과 함께 신년 일출을 맞는 것이 작은 연중행사였지만 이번엔 어쩐지 홀로 덜렁 떨어져 제주에 있게 되었다. 더군다나 잔뜩 찌푸린 제주의 하늘 덕분에 일출은 이미 오래전에 물 건너 간 상황. 나이 앞자리 숫자가 바뀐다는 건 그런 것일까? 올해로 내 나이 서른, 계획이 틀어지거나 어떤 의미 부여 행사가 헛수고가 되어도 꽤 태연한 마음이다. 그리고 한 술 더 뜨며 드는 능글맞은 생각.

“일출을 못 보면 일몰을 보면 되잖아?”

그렇게 새해 첫날, 느지막이 일어나 간소한 배낭 하나를 둘러메고 길을 나선다. 오래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제주의 길. 따라비오름과 큰사슴이오름을 품고 있는 하염없이 걸을 수 있는 그 길로.


낯설기에 더욱 신비로운 길, 쫄븐갑마장길


쫄븐갑마장길의 시작점. 조랑말체험공원에서 시작한다

갑마장길을 알게 된 건 2년 전 따라비오름을 오르면서였다. 따라비 오름 내에 세워진 이정표. 그 이정표에 새겨진 ‘갑마장길’이라는 낯선 이름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었다. 따라비오름이 이렇게나 예쁜데, 이 오름에서 이어지는 갑마장길이라는 길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언젠간 꼭 걸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게 오늘이 될 줄이야.


쫄븐갑마장길의 개념도

조선시대에 임금님께 진상되는 최고 등급의 말을 ‘갑마’라고 불렀는데, 이러한 말들만 모아서 기르던 곳을 ‘갑마장’이라고 한다. 즉 ‘갑마장길’은 조선시대 최고의 목장터를 잇는 길이며, 역사와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산책로인 셈이다. 그중 쫄븐갑마장길은 20km가 되는 갑마장길을 더 짧게 돌아볼 수 있도록 약 10km로 압축한 코스다.





쫄븐갑마장길의 시작점 ‘조랑말체험공원’에 도착하니 싸늘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러나 추위가 느껴지는 것도 잠시, 걷기 시작한 지 5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어느새 초록빛 숲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추운 겨울 이불을 덮어주듯 따스하게 말이다.

말의 이동을 막기 위한 울타리 


졸븐갑마장길의 표시, 빨간 리본

시원하게 뻗어있는 어린 잣나무숲


길 곳곳에 쉬어갈 수 있는 벤치가 설치되어 있다


빽빽하게 이어진 곶자왈 그리고 곧게 뻗은 삼나무군락은 나를 더욱더 깊은 숲으로 인도하는 듯했다. 이름처럼 낯선 쫄븐갑마장길, 앞으로 어떤 모습이 펼쳐질지 알 수 없기에 더욱 신비로운 느낌이 가득했다.

금빛으로 일렁이는 따라비오름


따라비오름이 보이기 시작한다




피톤치드를 가득 들이키며 40분쯤 걸었을까. 숲이 벗겨지며 언덕이 나타났다. 따라비오름이다. 잘 나있는 계단길을 따라 조용히 호흡을 고르며 오르는 길. 방금 전까지 나를 둘러싸던 초록은 온데간데없고 황톳빛 풍경이 펼쳐진다. 첫 번째 굼부리에 오르자, 사방이 탁 트인 조망이 날 맞는다. 그리고 찌뿌둥한 구름 사이로 따사로운 빛이 쏟아진다. 황톳빛 억새는 반짝이는 빛을 머금고 금빛 물결을 이루며 일렁인다.


“일출은 못 봤어도, 이런 날씨도 나쁘지 않잖아?”

어쩌면 해맑은 날씨보다, 흐린 날씨 속 순간의 반짝임이 나의 여행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주기도 하는 것 같다.







따라비오름은 3개의 굼부리를 가진 것이 특징. 각각의 굼부리에 올라서 각도별로 따라비오름이 만드는 부드러운 곡선을 바라보는 재미가 있다. 그 아름다운 선 위에 사람이 더해지면 더더욱 아름다운 장면을 만든다. 따라비오름이 빚는 아름다움에 얼마나 넋을 놓고 있었던지, 한참을 머물고서야 정신을 차린다. 아직 내가 걸어야 할 길이 남았기에 아쉬움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옮긴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사계를 만나다


따라비오름에서 내려다본 조망. 삼나무숲으로 이어지는 잣성길



따라비오름에서 내려오자 감탄이 절로 나오는 잣성길이 이어진다. ‘잣성’은 목장을 경계 짓기 위해 쌓은 돌담이다. 돌담과 쭉쭉 뻗은 삼나무 숲, 향기로운 편백나무 향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산책로. 이 길이 계속 계속 이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무색하게도 짧은 길이었지만, 그 아름다움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큰사슴이오름을 올라가다가 돌아다본 풍경. 어둠이 몰려오고 있다.

느지막이 시작해서인지 날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나의 발걸음은 빨라졌다. 해가 지기 전, 큰사슴이오름을 올라야했다. 잣성길을 지나, 빨간 리본과 이정표를 따라 큰사슴이오름으로 향했다. 거친 호흡으로 오름을 헤치고 올라가는데, 길 위에 녹지 않은 하얀 눈이 쌓여있었다.


산책로에 채 녹지 않은 눈이 쌓여있다.


일몰이 지고있는 큰 사슴이 오름

푸른 숲으로 시작해서 황금빛 억새를 지나더니 이제는 눈이라니! 하루 새에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다 겪는 느낌이랄까. 왠지 모르게 웃음이 터져버리고 말았다. 갓 서른이 된 새해 첫날이 참 길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만큼 쫄븐갑마장길이 다양한 모습을 품고 있다는 뜻이겠지. 해가 져버리기 전에 서둘러 큰사슴이오름 정상으로 향했다.

큰사슴이오름에서 새해 일몰을 맞다


가시리 풍력단지가 내려다보이는 큰사슴이오름 정상에 도착하자 잿빛 구름 아래로 오렌지빛 일몰이 지고 있었다. 구름이 많은 날의 특혜, 빛내림까지 더해졌다. 정상에는 편히 쉬어갈 수 있도록 벤치도 마련되어 있었다. 그곳에 앉아 마시는 따뜻한 생강차 한 잔은 다른 어떤 고급 음료보다 맛있었다.

‘다음 이곳을 찾았을 때는 따스한 계절이었으면 좋겠다. 간소한 도시락과 시원한 맥주 한 잔이 곁들여진다면 더더욱 좋겠지.’




새해 일출은 무참히 놓쳐버렸지만, 새해 일몰을 맞는 것 또한 내겐 아주 의미 있는 일이었다. 그것도 이렇게 다양한 매력을 가진 길을 걸으며 맞은 새해 일몰이니 말이다. 왠지 올해를 더 알차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길을 걷는다는 것, 풍요를 선물 받는 것


삼나무 숲


피톤치드가 가득한 곶자왈과 잣나무숲부터 시작해서 향기로운 편백나무 숲, 금빛 억새가 일렁이는 따라비오름, 일몰이 장관인 큰사슴이오름까지… 이름조차 낯설었지만, 직접 걸어보고 나니 알겠다. 쫄븐갑마장길이 얼마나 다양한 매력을 품고 있는 길인지를. 4월에는 노오란 유채꽃까지 피어난다니 말 다 했다.

2019년 첫날부터 아주 큰 선물은 받은 기분이다. 늘 길을 걷고 난 후 드는 생각은 ‘역시나 걷길 잘했어!’ 그것이 내가 걸어온 이유이고, 앞으로도 우리나라의 많은 아름다운 길들을 걸어야 할 이유다.


새해를 풍요롭게 시작하고 싶다면, 지금 당장 배낭을 메고 떠나보는 건 어떨까? 단 하루간에 사계절을 만날 수 있는 길, 쫄븐갑마장길로 말이다.


▶︎걷는 시간

4시간

▶︎거리

약 10km

▶︎걷기 순서

조랑말체험공원~가시천(곶자왈)~따라비오름~잣성길~큰사슴이오름~꽃머체~조랑말체험공원

▶︎코스 난이도

보통

 

 


▶︎화장실

카페 옆 화장실

▶︎관광포인트

- 4~5월이면 길의 시종점인 녹산로를 따라 벚꽃토널과 유채꽃밭이 장관을 이룸

- 오름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비오름의 가을철 억새 풍광

- 조랑말박물관, 승마장, 캠핑장이 위치한 조랑말체험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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