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서귀포] 자연과 역사를 품은 길 제주 올레길 10코스

2019-02 이 달의 추천길 2019-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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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역사를 품은 길

'제주 올레길 10코스'

이채빈 여행작가

산방산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날 제주의 슬로건이 궁금해서 검색을 한 적이 있었다. 사시사철 매력이 다른 이 섬은 어떤 슬로건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어떤 문장이 이 섬의 매력을 모두 표현할 수 있을까. 투박한 돌담과 사시사철 피어나는 꽃들, 서로 다른 매력을 자아내는 해변과 목장, 오름과 산들. 이러저러한 풍경이 보고 싶어 여행을 여러번 떠날 바엔 제주 한 곳을 며칠 여행하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제주는 섬 곳곳의 특색이 있다.

Only jeju island

나는 매 계절 제주를 앓는다. 삼 년 전 한 달간 제주에 머물며 곳곳을 돌아다녔지만 아직도 제주는 내게 썩 매력적인 섬이다. 봄이면 봄이라서, 여름이면 여름이라, 가을이면 가을이라, 겨울이면 겨울이라. 철마다 색다른 매력으로 제주의 자태는 쉴 새 없이 나를 유혹한다.

올겨울도 제주의 매력을 이겨내지 못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공항이다. 내 손에는 신분증과 전날 끊은 제주행 티켓, 1박 2일간의 여행을 책임질 단출한 짐가방이 있다. 어떤 풍경을 원하든 늘 그 이상을 내어주는 모든 매력을 담은 단 하나의 섬. 제주를 걷기로 했다.

자연과 역사를 품은 길


송악산에서 내려다 본 바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전초 기지로 삼았던 알뜨르 비행장


제주 올레길 10코스는 화순 금모래 해변부터 모슬포항까지 이어진 17.5km의 편도 코스다. 눈이 시릴 만큼 푸른 바다가 펼쳐진 해안도로와 제주 내음이 가득 담긴 오솔길, 하늘 높은 줄 모르는 나무가 늘어진 숲길 같은 것들이 길의 중간중간을 꾸며주고 있어 풍경을 담는 눈과 카메라를 쥔 손이 절로 바빠지는 길이었다.

느영 나영 길을 걷자


11코스의 시작점과 10코스의 도착점인 서귀포시 서부보건소 앞

“언니 내일 제주도 갈래? 올레길도 걷고, 흑돼지도 먹고 돌아오자.”

별생각 없이 제주를 그리워하다 던진 한 마디에 우리는 다음날 이른 아침 비행기로 제주에 도착했다. 공항에서부터 렌트해둔 차는 근처 주차장에 세워두고 서부 보건소 앞으로 가니 파란색 컨테이너 박스인 제주올레 안내소가 보였다.


올레길의 마스코트인 간세, 안내소에 들리면 코스가 안내된 지도를 받을 수 있다.


정석대로라면 10코스의 시작점인 화순 금모래 해변부터 길을 걸어야 하지만, 우리는 11코스의 시작점부터 역방향으로 길을 걷기로 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꽤나 많은 길을 걸어봤지만 올레길만큼 친절한 길은 처음이었다. 코스의 시작점마다 있는 안내소와 중간중간 길을 잃지 말라며 묶어둔 주황색과 파란색의 리본과 화살표는 올레길을 여행하는 여행자를 위한 제주도의 배려가 돋보이는 부분이었다. 17.5km라는 긴 코스에 길을 잃지는 않을까 걱정했던 우리는 덕분에 편한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바다 내음을 맡으며 걷자


해안 도로로 나가는 길목, 저 멀리 보이는 등대와 바다.


길을 안내하는 주황색과 파란색의 리본


서부 보건소에서부터 시작한 길은 사람 냄새가 가득한 길로 이어진다. 누군가가 살고 있을 집들, 일궈놓은 밭, 그리고 그 뒤로 보이는 빨갛고 하얀 등대. 저 멀리 슬쩍 슬쩍 보이는 바다가 발걸음을 재촉한다. 길을 따라 걸어가면 개방된 마을 어장이 나온다. 관광객과 도민들을 위해 개방한 누군가의 생업의 터. 방파제의 뒤로 보이는 검은 돌이 파도와 맞부딪치는 소리가 참으로 시원한 길이다. 짧은 해안 길을 걷고 나면 마라도로 향하는 여객선이 운항하는 운진항이 나온다. 한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짜장면 시키신 분~”이라는 유행어가 만들어진 곳이 마라도라는 사실을 이 길을 걸으며 알게 되었다. 누군가와 함께 길을 걷는 건 이런 점이 참 좋다. 타인과 나의 경험과 지식을 길을 따라 걸으며 공유할 수 있다는 게.

잊지 말아야 할 것들, 역사를 기억하는 길


알뜨르 비행장으로 향하는 길

다크 투어리즘 스팟인 알뜨르 비행장. 코스의 안내판이 있다.


알뜨르 비행장길에는 이곳이 제주임을 알려주듯 말이 있었다.


해안 도로에서 길을 건너 걸음을 옮기니 좁다란 길을 따라 푸른 밭이 나온다. 겨울의 추위를 감추는 듯한 초록빛 생명력이 지천으로 널려있다. 저 멀리 보이는 산방산의 웅장한 자태가 다시 한 번 이곳이 제주라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걷다 보니 이토록 푸르고, 정겨운 길에 어울리지 않는 표지판이 보인다. 잔혹한 참상이 벌어졌던 역사적 장소를 돌아보며 반성과 교훈을 얻는 여행을 알리는 ‘다크 투어리즘’의 코스를 알리는 안내판이다. 알뜨르 비행장부터 송악산까지 쭉 이어진 코스에는 우리 민족의 슬픈 역사가 알알이 맺혀있다.


평화를 상징하는 조형물, ‘파랑새’

대나무를 엮어 만든 소녀상이 알뜨르 비행장에 다 왔음을 알려준다. 평화를 상징하는 9m 높이의 소녀상. 이 소녀상을 지나 길을 쭉 따라가는 게 10코스지만, 이까지 왔으니 잠시 경로를 이탈해 알뜨르 비행장을 들렀다.

알뜨르 비행장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대정읍 상모리 아래쪽의 너른 벌판에 제주도민을 동원하여 건설한 군용비행장이다. 콘크리트와 자갈 등으로 튼튼하게 지어진 격납고 안에는 제로센의 모형이 들어있다. 어쩐지 꺼림칙한 제로센의 조형물과 많은 이들의 염원이 담긴 형형색색의 리본의 대비는 한동안 생각에 잠기게 만들었다.


섯알 오름 위령탑


섯알 오름의 역사를 기록한 표지판


10분 남짓 더 걸었을까. 비행장에서 1km도 채 떨어지지 않은 위치에 섯알 오름 위령탑이 있었다.

제주 4.3사건이 끝나고 난 뒤, 단지 인민군에게 협조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 하나 만으로 어떠한 법적인 절차 하나 없이 하룻밤 사이에 총살 당하고, 암매장 당했던 1000명이 넘는 제주 도민들을 위로하는 위령탑이었다. 한때 피로 물들었을 이 길을 자박자박 걸어본다. 위령탑 전에 봤던 격납고의 리본도, 위령탑을 지나 오름 옆으로 걸어가는 이 길도 누군가의 비명과, 피로 얼룩졌던 과거가 이렇게나 고요하고 아름답게 변했다는 사실에 기분이 오묘해진다.

산과 바다가 조화를 이루는 길


탁 트인 바다와 해안 절벽이 보인다


아마 이게 간세나 노새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둘레길에도 일제시대의 잔재가 남아있다. 송악산 둘레길의 일제 동굴진지


올레길 10코스에서 어느 구간이 가장 아름다웠냐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송악산 둘레길’을 꼽았다. 산과 바다의 정취를 한 번에 즐길 수 있는 구간이 아닐까. 위를 보면 하늘 높은 줄 모르는 나무가, 아래를 보면 푸른 빛깔의 바다가 우릴 반겨준다.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하는 사람과 여행을 온 가족, 남녀노소 구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걷고 있다. 중간쯤 있는 매점에서 흘러나오는 냄새는 마침 배가 고팠던 우리를 유혹했지만, 오늘 우리의 목표는 올레길 완주 후 흑돼지 먹기였으니 조금만 더 참고 길을 걸어보기로 했다.


송악산에서 내려오니 다시금 해안도로가 나온다.


근처에 카페와 음식점이 많으니 쉬었다 가기에도 좋은 곳


다시금 해안 도로가 나왔다. 둘레길 위에서 보는 것과는 또 다른 매력의 바다. 탁 트인 바다를 보며 친구와 길을 걸으니 쌓여왔던 스트레스도 풀리는 기분이다. 챙겨온 작은 삼각대에 카메라를 두고 이래저래 함께 추억을 찍는다. 썩 잘 찍은 사진은 아니지만 예쁘게 차려입고, 멋진 장소에서 찍은 사진보다 마음에 드는 건 함께 한 시간을, 그 추억을 남기기 때문이 아닐까.



해녀상이 자리하고 있다.

해안 도로를 쭉 따라 걸으면 사계항이 나온다. 송악산 둘레길, 사계항, 화순 금모래 해변. 10코스의 역방향으로 길을 걸으면서 정한 세 가지 지점이었다. 사계항이 나왔다는 건 코스의 3분의 2 정도를 걸었다는 거겠지. 마라도 잠수함과 주차장을 지나쳐 길을 건넌다. 꽤나 긴 코스에 다리가 아파오지만 고지가 눈앞에 보이기 시작하니 발걸음을 멈추지 말자고 서로를 다독여 본다.


산방산을 오른 편에 끼고 길을 걷는다.



산방산을 두른 길을 걷고 있으니 민가와 숙박 시설이 꽤나 많이 보였다. 몇 번을 봐도 정겨운 낮은 돌담과 푸릇한 밭, 파란 하늘과 산방산이 지루할 법한 길을 잘 메꿔준다. 좁다란 길들을 걸으며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산방산을 빙 두른 길을 다 걷고 ‘썩은 다리 탐방로’라는 이상한 이름의 표지판이 길을 안내한다. 갈대밭과 데크가 있는 길을 따라 쭈욱 올라가도, 어쩐지 썩어 보이는 다리는 보이질 않아서 검색을 했더니 오름의 이름이 썩은 다리였다. 시간다리 오름이라고도 불리는 이 오름은, 풍화작용으로 깎인 바위의 지층이 마치 썩은 다리처럼 보여서 그렇게 이름이 지어졌다고.

앞을 바라보며 길을 걷자


드디어 도착한 10코스의 시작점. 제주올레 안내소 앞에서


9코스로 향하는 길을 안내하는 주황색 화살표와 10코스로 향하는 길을 안내하는 파란색 화살표



해가 저물어가는 화순 금모래 해변

썩은 다리 오름에서 내려오니 어느덧 도착점인 화순금모래해변이 눈앞에 보였다. 17.5km라는 짧지 않은 거리를 걸어온 터라 다리는 후들거리지만 파란 컨테이너 박스를 보는 순간 그간의 고생이 눈 녹듯 사라지는 기분이다. “힘들었어.”라고 말을 하고 있지만 언니의 얼굴에도, 그리고 언니가 바라본 내 얼굴에도 이 길을 다 걸어냈다는 뿌듯함이 잔뜩 서려있다.

중간중간 조금만 쉬어 갈까? 쉬어 갈까?라는 마음이 들 때도 쉬지 않고 앞으로 걸어갈 수 있었던 건, 눈앞에 보이는 산방산 덕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눈앞에 보이는 산이 조금씩 가까워질 때, 저 산만 지나면 정말 끝이다!라는 생각에 지친 발걸음을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옮길 수 있었다.

아마 살아가는 것도 그런 게 아닐까 싶다. 힘들어도, 지쳐도 앞을 바라보고 한 걸음 한 걸음 걷다 보면 언젠가 목표한 곳에 도착할 수 있지 않을까.


▶︎걷는 시간

4-5시간

▶︎거리

약 17.5km

▶︎걷기 순서

화순금모래해변 → 퇴적암 지대 → 산방연대 → 설큼바당 → 사계포구 → 사계화석발견지 → 송악산 휴게소

→ 송악산 입구 → 알뜨르비행장 → 하모 해수욕장 → 모슬포항

▶︎코스 난이도

보통

 


▶︎화장실

화순 금모래 해변(시작점) 부근 부터 화장실 총 8개

▶︎매점

코스 내 편의점 및 마트 다수 있음

▶︎교통편

제주시에서 온다면- 제주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서부 관광도로(평화로 경유) 버스를 타고 화순리에서 내린다.

바다 쪽으로 10분 정도 걸어간다. *시작점 확인 요함

서귀포시에서 온다면: 서귀포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제주-서귀포 서회선 일주도로 시외버스를 타고 화순리에서 내린다.

바다 쪽으로 10분 정도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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