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강릉] 대관령 너머길 1코스 대관령옛길

2019-04 이 달의 추천길 2019-06-02
조회수511

선조들의 삶과 애환이 담긴

대관령 고갯길

태원준 여행작가


한민국 구석구석에 실핏줄처럼 얽히고설킨 걷기 길은 저마다 다양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그 유명한 제주의 올레길처럼 수려한 풍경이 이어지는 길이 있고, 양평의 물소리길처럼 듣는 즐거움이 극대화된 길도 있다. 하지만 보고 듣는 즐거움을 넘어 걷는 것 자체로 큰 의미가 있는, 선조들의 역사가 담긴 길도 존재한다. 대관령 너머길 1코스에 해당하는 대관령옛길이 바로 그렇다. 영동과 영서의 관문역할을 하던 이 길은 신사임당이 어린 율곡의 손을 잡고 넘던 길이며, 송강 정철이 관동별곡의 영감을 받고, 또 김홍도가 풍경에 취해 산수화를 그리던 유서 깊은 옛길이다. 이 길은 국가지정 명승 74호이기도 하다.

여전히 겨울인 코스의 초반


코스의 시작점인 대관령휴게소


대관령휴게소 앞에 자리 잡은 압도적인 크기의 풍력발전기

3월도 절반 이상이 지난 시점이었기 때문에 봄의 기운이 가득한 산길을 상상하며 코스의 시작점인 대관령 휴게소에 도착했다. 하지만 웬걸! 휴게소 너머로 보이는 산은 녹색이 아닌 흰색이었다. 문자 그대로 내일모레가 ‘춘분’인데 하얀 눈으로 가득 덮인 산을 바라보며 이곳이 강원도임을 실감했다. 험난한 여정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사시사철 꽃길만 걸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휴게소 앞에 있는 거대한 풍력발전기 두 대가 힘찬 바람을 내뿜으며 내 등을 떠밀었다.


3월 중순의 강원도는 여전히 설국이다.


3월 중순 현재 코스 초반은 눈길과 진흙길이 이어져 힘든 구간이다.


대관령 영웅의 숲의 모습


산길에 접어들자 미끄러운 빙판길과 눈길이 총공세를 퍼부었다. 둘의 공격은 조심조심 피할 만했으나 눈이 녹아 엉망진창이 된 진흙길은 피할 수가 없었다.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등산화의 절반가량이 진흙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전체 코스가 14킬로미터가 넘는 산길이다 보니 마음은 급했으나 질퍽질퍽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겨우 늪 같은 구간을 벗어나니 ‘대관령 영웅의 숲’이 나타났다. 2번의 실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불굴의 의지로 평창 동계올림픽을 유치해낸 영웅들을 기념하는 숲이다. 나 역시 불굴의 의지로 이후에 다시 길을 막는 눈과 얼음과 한참 동안 씨름을 했다. 혼자 엉덩방아를 계속 찧으며 몸 개그를 하다 보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아마도 이글이 3월 말쯤부터 공개될 것 같은데 개인적인 생각으론 4월 초까지는 눈이 완전히 녹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가급적 4월 둘째 주부터 발걸음을 하시는 게 좋을 것 같다. 만약 그전에 이 길을 찾게 되신다면 아이젠 등의 월동장비와 방수 등산화를 챙기시기를 바란다.

대관령 산신을 만나고 오르막도 만나고


국사성황당은 강릉 단오제의 주신인 범일 국사를 모시는 곳이다.

다행히 한 박자 쉬어갈 곳이 등장했다. 눈과 얼음, 진흙의 삼중고를 뚫고 초반 약 2.5킬로미터의 구불구불한 산길을 통과하자 국사성황당이 모습을 드러냈다. 깊은 산속에 자리 잡은 이곳은 유네스코 세계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강릉 단오제의 주신인 범일 국사를 모시는 곳이다. 그 곁엔 산신당도 함께 자리하고 있는데 여기서 모시는 대관령 산신은 김유신 장군으로 알려져 있다. 매년 음력 4월 15일엔 두 신을 기리는 대관령국사성황제와 대관령산신제가 함께 열린다. 흥미로운 지역 민속자료를 훑어보며 잠시 쉬어간다. 영동지방의 수호신으로 인식되는 두 신에게 안전한 산행이 되게 해달라 빌며 다시 눈밭을 뚫고 발걸음을 재촉한다.

국사성황당을 지나면 계단과 오르막이 이어진다.

국사성황당부턴 제법 긴 돌계단길이 이어진다. 초반엔 가파르나 다행히 갈수록 완만해진다. 하지만 이후에도 오르막이 기다리고 있어 코스 전체에서 가장 거친 숨을 내뱉을 수밖에 없는 구간이다. 무릎 연골에 기름칠 좀 해주어야 할 곳이니 투덜거림보단 무념무상의 자세로 한 걸음씩 차근차근 발걸음을 내딛는 게 바람직하다. 또한 여전히 코스 초반이기에 컨디션 조절도 필요하다. 오르막 정점을 찍고 나면 다소 지루한 꼬부랑 내리막길이 2킬로미터가량 펼쳐진다. 물론 시기상 쌓인 눈을 피하느라 지루할 틈은 없었지만. 이후에 이어지는 구간부턴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다.

김홍도와 신사임당이 넘나들던 대관령 고개


반정으로 넘어가는 길은 영동고속도로 구간이니 주의를 요한다.


반정은 대관령을 오가는 사람들이 쉴 수 있도록 마련된 주막이 있던 곳이다.

가볍게 한 고개를 넘고 나면 ‘반정’이 기다리고 있다. 대관령을 오가는 사람들이 쉴 수 있도록 마련된 주막이 있던 곳이다. 대관령은 많은 사람이 오가기는 했으나 길이 험난하고 먹을거리가 부족해 겨울이면 얼어 죽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강릉부의 향리 기관 ‘이병화‘가 사재를 털어 대관령 중턱인 이곳에 주막을 설치했다고 전해진다. 그의 따뜻한 마음에 감동하기 위해선 반정 바로 앞의 영동고속도로 지나야 한다. 고속도로 위를 걸어서 건너야 한다는 소리다! 코스의 연결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부득이하게 건너야 하니 극도의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반정으로 안전하게 넘어오면 전망대가 있어 앞으로 이어갈 대관령 고개의 전망을 볼 수 있다. 이다음이 코스의 하이라이트이자 진정한 대관령 옛길이라 할 수 있는 곳이다.


김홍도가 그린 대관령 그림

구불구불한 산길이 끝없이 이어진다.


신사임당의 시가 적힌 안내문

다행히 반정 이후엔 양지바른 길이 이어져 시야에서 눈이 사라지고 싹을 틔우고 있는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단 몇 시간 만에 겨울에서 봄으로 건너온 느낌이었다. 내리막길을 조금 걸으니 김홍도의 대관령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대관령의 아름다운 산세와 구불구불한 산길을 화폭에 옮긴 작품으로 김홍도가 관동팔경과 금강산을 여행한 뒤 완성한 ‘금강사군첩’에 수록된 그림이다. 김홍도의 직인과 함께 그림 위에 대관령이 한자(大關嶺)로 표기되어 있다. 조선 시대 최고의 화가가 보던 풍경을 나도 보고 있다는 생각에 괜스레 감동스러웠다. 하지만 감동을 모두 소진하기엔 아직 일렀다. 곧이어 신사임당의 시가 새겨진 커다란 그림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대관령을 넘으며 친정을 바라보다’라는 시엔 노모를 강릉에 두고 한양으로 떠나는 신사임당의 애틋한 마음이 담겨있다. 아마도 어린 율곡이 신사임당의 곁을 지켰을 것이다. 그들이 힘겹게 넘던 고개가 아주 먼 훗날 ‘이달의 걷기길’에 선정된 것 또한 감동이다. 김홍도와 신사임당을 차례로 만나고 나면 ‘주막터’가 나타난다. 실제로 조선 시대에 주막이 있던 자리에 전통초가집을 복원해 놓았다. 초가집은 물론 여유롭게 쉴 수 있는 평상과 연못도 함께 조성되어 있으니 등산객들에겐 완벽한 쉼터라 할 수 있다.


코스 전반적으로 쉴 곳이 적은 편이니 쉼터가 나오면 잠시 휴식을 취하는 것이 좋다.


옛 주막터에 복원된 초가집


주막터 이후에 이어지는 평탄한 길

개구리가 알을 품고 다람쥐가 뛰노는 마지막 구간


어느 순간부터 오른쪽으로 계곡물이 흐르기 시작한다.


계곡물 위에 설치된 다리


물 위로 고개를 내민 개구리


알을 품은 개구리의 모습

주막터까지 8킬로미터에 가까운 험준한 산길을 타야 했기에 약간의 피로감이 몰려왔다. 그러나 주막터를 지나면 든든한 지원군이 나타난다. 바로 오른 편으로 펼쳐지는 계곡물이다. 겨우내 꽁꽁 얼어 있다가 살얼음을 깨고 졸졸 흐르는 물줄기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발걸음에 힘을 더해준다. 물길을 따라 걷다 보니 멀리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개구리가 포착된다. 신기한 마음에 가까이 다가간다. 맙소사, 개구리 알이 물 위에 가득이다. 낯선 침입자로부터 알을 보호하기 위해 개구리들이 단체로 뛰어나와 개굴개굴 울기 시작한다. 이제야 진짜 봄이구나 싶다.


다람쥐가 쉴 새 없이 주변을 오간다.


싹을 띄운 노란 꽃

막 꽃망울이 터트린 노란 꽃나무도 눈에 들어오고 도토리를 들고 바지런히 나무 사이를 누비는 다람쥐도 보인다. 청명한 새소리는 또 어떠한가! 흐뭇한 마음으로 코스 종반을 향해 전진한다.


우주선을 본떠 만든 공중화장실


산길이 끝나면 펜션촌이 나타난다.

산길을 완전히 벗어나면 펜션촌이 나타난다. 그리고 이곳에 마지막 볼거리가 숨어있는데 다름 아닌 ‘우주선 화장실’이다. 등산객을 위한 공중화장실로 둥근 우주선 모양을 하고 있다. 안으로 들어서면 우주처럼 푸른 조명에 우주인의 사진이 걸려있고 공상과학영화의 음악으로 사용될 법한 신비로운 음악까지 흘러나오니 볼일을 보다가 우주로 날아갈 것만 같다. 화장실을 지나면 농촌건강장수마을인 어흘리부터 보광리까지 이어지는 약 5킬로미터의 길이 이어진다. 이미 대관령 고개는 넘은지라, 또 거리가 제법 긴지라 사족처럼 느껴지는 구간이지만 한적한 시골 마을의 정취를 느끼며 정리 운동하듯 마지막 스퍼트를 하니 코스의 끝에 다다른다.


코스 막판 어흘리에서 보광리까지 한적한 시골길이 이어진다.

시기적인 특성으로 인해 눈이 쌓인 코스 초반이 힘겨웠을 뿐 전체적인 여정을 돌이켜보니 역사 속 위인들의 흔적을 따라 걷는 것만으로 충분한 매력이 넘치는 걷기 길이었다. 또한 대관령 고개에 숨겨진 풍성한 자연과 그 속을 채운 동물은 가산점을 주고도 남을 풍경이었다. 완벽한 등산 장비 외에도, 수백 년 전 대관령을 쉼 없이 넘나들던 선조들의 삶과 애환까지 아우르는 마음을 준비한다면 훨씬 더 즐거운 산행길이 될 것이다.


▶걷는 거리

14.3km (대관령 하행휴게소 ~ 바우길 게스트하우스)

▶걷는 시간

6시간

▶걷는 순서

대관령 하행휴게소 - 풍해조림지 - 국사성황당 - 반정 - 옛주막터 - 우주선화장실 - 어흘리 - 바우길 게스트하우스

▶난이도


▶화장실

대관령 휴게소, 국사성황당 앞 공중화장실, 반정 옆 휴게소, 우주선 화장실 등

▶음식점 및 매점

코스 시작점인 대관령 휴게소에 푸드 코트와 편의점이 있다. 이후 반정까지 약 5km 구간엔 아무런 편의시설이 없으니 대관령 휴게소에서 물과 간식 등을 미리 구입하는 것이 좋다. 반정 옆에 간이매점이 있으며 어흘리 마을에 식당과 슈퍼가 드문드문 있다.

▶숙박업소

코스 막바지인 우주선화장실을 지난 뒤에나 펜션과 게스트하우스 등이 있다. 강릉 시내의 숙박업소를 이용하고 아침 일찍 코스 시작점으로 이동하는 편이 효율적이다.

▶교통편

코스의 시작점이 국도의 휴게소이다 보니 대중교통을 이용한 접근이 쉽지 않다. 서울에서 출발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동서울터미널에서 횡계행 시외버스를 타고(첫차는 오전 06시 40분, 막차는 20시 20분에 출발하며 약 2시간 15분이 소요된다. 하루 12편 운행) 횡계 시외버스 공용정류장에서 내린 뒤 대관령 양떼목장행 66번 버스를 타는 것이다.(약 15분 소요) 66번의 종점이 코스 시작점인 대관령 휴게소다. 횡계 시외버스 공용정류장에서 택시 이용시 약 10분 소요, 8천 원 정도의 요금이 나온다.

* 자가 차량 이용시 대관령 휴게소 주차장에 주차가 가능(무료)하다.


- 이 달의 추천길 다른글 보기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