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안성] 내 혼자 여행하기 좋은 곳 영남길 8코스 '죽주산성길'

2019-06 이 달의 추천길 2019-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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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길의 거점을,

안성의 중심을 거닐다

경기도 안성 영남길 8코스

'죽주산성길'

김정흠 여행작가


갈하게 펼쳐둔 논, 그 위로 물이 찰랑거리는 게 어느새 모내기 철이 한창이라는 사실을 알려온다. 갓 자란 개구리들이 뜻 모를 노래를 불러대고, 일정 간격을 두고 도열한 볏모들은 그 소리에 맞추기라도 하는 것처럼 몸을 흔든다. 오랜만에 보는 파란 하늘과 그 사이를 유영하는 솜사탕 구름이 차례로 찾아오니, 정말이지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한 장면이라도 재현해 놓은 것 같은 풍경이다. 여기는 경기도 영남 길 8코스 ‘죽주산성길’의 시작점, 황새울 마을 입구다.

신발 끈을 조이고 배낭을 다잡았다. 안내 지도를 숙지하고는 씩씩하게 길을 나섰다. 약 13km 길이의 죽주산성길은 이 농촌의 한가운데를 따라 걷다가, 숲으로 접어드는 형태의 트레킹 코스다. 절반은 푸른 평야를 곁에 두고, 나머지 절반은 짙은 초록빛의 숲을 유영하는 셈이었다. 적당한 온도와 봄꽃이 전하는 향긋한 공기가 사방에 가득했다.

길은 조금 지루해 보였지만, 사색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아무 생각도 없이 걷다가 우연히 마주친 강아지 한 마리에 시선을 빼앗기기도 하고, 조금 촉촉한 흙길을 걷기도 하고, 어찌어찌 시멘트벽 틈새에서 자라난 들꽃 한 송이에 말을 걸어보기도 하면서.

  
 

서두를 이유라고는 없었다. 오늘 하루만큼은 오롯이 이 길 위에 두 다리를 내맡기기로 했잖은가.


길 중간 지점 즈음 나타난 ‘한택식물원’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왕 자연을 즐기기로 했으니, 그냥 지나치기에는 아쉬웠다.

  
  



길에서 잠시 벗어나기로 했다. 입장권을 구매해 식물원으로 들어서는 순간. 세상에, 이토록 초록빛으로 가득한 숲이라니. 여태껏 걸어왔던 피로감은 숲이 건네는 여유와 함께 씻은 듯 사라졌다.

 
 







한택식물원은 우리나라 1세대 격인 식물원이다. 이택주 원장이 1970년대부터 우리나라의 자생식물을 한데 모아 가꿔 일궈낸 결과물이다. 아니, 결과물이라고 하기에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란다. 한택식물원은 1만여 종의 식물을 섞어 실제 자연환경을 재현하는 ‘생태조경’을 표방한다. 매년 새로운 식물을 도입하고, 희귀종을 살리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기도 한다니, 단순히 ‘예쁜’ 식물원만인 것은 아닌 셈이다.

 





식물원이라기보다는 숲에 가까웠던 곳. 그래도 나름대로 구분 지어 둔 서른여섯 개의 주제원을 단숨에 돌았다. 아니, 들어온 지 두 시간이 훌쩍 지났으니 ‘단숨’으로 표현하기에는 조금 어폐가 있으려나. 어쨌든 그만큼 식물원의 매력에 빠져버렸다는 뜻이다. 죽주산성길의 하이라이트까지는 아직도 절반을 더 걸어야 하는데, 식물원에 마음을 빼앗기고야 말다니. 자책하기에는 숲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한택식물원

- 위치: 경기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한택로 2

- 전화번호: 031-333-3558

- 관람시간: 09:00~일몰 시까지 (매표 마감은 17:00) / 연중무휴

- 관람요금: 어른 9,000원 / 어린이 및 청소년, 경로 6,000원

마음을 다잡고 다시 죽주산성길로 방향을 틀었다. 본격적인 오르막길의 시작. 지통암 입구부터는 비봉산 구간으로 접어드는 등산로다.

경사가 유난히 가팔랐다. 높지 않은 산이라며 코웃음을 쳤던 게 무색했다. 지통암에서 만난 스님과 소소한 인사말을 나눌 때 잠시 쉬었을 뿐. 급격한 오르막은 비봉산 정상까지 계속되었다.





 



드디어 정상이다. 계단을 따라, 밧줄을 부여잡고 올랐다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야트막한 해발고도 372m의 비봉산. 탁 트인 한쪽으로는 안성의 드넓은 평야가 펼쳐진 풍경이 눈에 띈다.


마침 그 자리를 바라보고 있는 의자 하나. 죽주산성길 최대 난코스를 통과한 자에게 선사하는 하나의 작은 휴식과도 같았다.

 

하산길은 비봉산 정상에 올라왔던 길과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이어졌다. 빼곡한 나무 사이로 새어드는 햇볕이 길 위에 감성을 더했고, 나뭇잎의 필터를 통과한 바람들은 한껏 무거워진 등을 살포시 밀어주었다. 아무도 없는 숲이었음에도 왠지 모르게 편안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내리막길과 오르막길이 몇 번을 더 반복해서 등장했다.

  
  



 

 

  
  
 
 

끝이 다가오고 있었고, 아침부터 고생한 두 다리는 조금 지쳐 있었다. 나무와 흙, 숲만 이어지던 길에 난데없이 돌을 쌓아 만든 성벽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죽주산성이다. 삼국 시대부터 안성 일대를 방어했던 요새. 유라시아 대륙을 발아래에 두었을 정도로 무시무시했던 몽골군이 결국 넘지 못했던 성. 그만큼 견고했던 성. 여전히 그 흔적이 강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죽주산성은 요새이기 전에 한양과 부산을 잇는, 오늘날로 따지면 경부고속도로 격의 대로였던 ‘영남길‘의 거점이기도 했다. 죽주산성에서 갈라진 길은 조령이나 추풍령으로, 혹은 한양으로 향했다. 자연스레 사람이, 물자가 모였다. 시장도 있었단다. 신라가 북진 과정에서 쌓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 이 성은 이후 천 년도 넘게 이 자리에서 사람들의 터전이 되어주었던 것이다.

성벽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오래된 성의 아름다운 풍광이 사방에 가득했다. 비봉산 구간 내내 머리를 뒤덮고 있던 숲이 하늘을 보여주었고, 이내 안성의 드넓은 평야까지 내보였다. 저 아래에 몽골군이, 영남길을 오가던 삶들이, 그리고 한반도의 역사만큼이나 기나긴 곡창지대로서의 모습이 이어지고 있을 터였다.

 

기성벽 위로 오동나무 한 그루가 멋들어지게 사방으로 가지를 쏟아내고 있었다. 잠시 쉬어가라는 듯이 곁을 내주면서. 기꺼이 그 요청에 응하기로 했다. 기둥에 몸을 기댄 채, 죽주산성 아래로 펼쳐지는 절경을 한동안 응시했다.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 해는 어느덧 저물어가고 있었고, 오동나무를 스치듯 흐르는 바람은 한껏 지친 두 다리를 살며시 두드려주었다.

 





죽주산성에 남아있는 포대의 흔적 / 고려 때 세워졌다는 매산리 석불입상 (유형문화재 제37호)

 




죽산리 봉업사지 당간지주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89호) / 봉업사지 오층석탑 (보물 제435호)

이제 돌아갈 시간. 종점인 죽산시외버스터미널까지는 3km 남짓 남았다. 성을 내려와 마을 방향으로 들어섰다. 매산리 석불입상, 봉업사지 오층석탑, 당간지주 등 불교와 관련된 유적이 차례로 반겨주었다. 안성은 팔만구암자가 있을 정도로 불교가 흥했던 지역이라는 이야기를 안내판에서 찾았다. 그래, 곳곳에 불교 유적들이 눈에 띄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할 정도였다. 소원을 들어준다는 미륵불 앞에 잠시 멈추어 섰다. 작은 소원 하나를 빌며.


▶︎걷기 TIP

- 논밭을 지나는 구간에서는 그늘을 만나기 쉽지 않습니다. 모자를 꼭 준비하세요.

- 비봉산에서는 등산 스틱을 지참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 죽주산성 구간은 도보여행을 하기 좋지만, 중간에 한택식물원까지 가는 길은 인도가 별도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차량 통행이 꽤 있는 편이니 이동 시 유의하세요.

 

▶︎음식점 및 매점

구간 내에 물을 수급할 수 있는 곳이 마땅치 않습니다. 식수를 충분히 챙기세요. (한택식물원 내에서 구매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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