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진주] 임진왜란 진주성 전투 역사탐방 길, 진주에나길 01코스

2019-06 이 달의 추천길 2019-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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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강과 진주성. 사진 아래 발굴현장이 진주성 외성 흔적이다. 현재 진주성은 내성에 해당한다

진주에서 진짜 길을 걷다

'경남 진주시 진주에나길 1코스'

김영록 여행작가



남강과 진주성. 사진 아래 발굴현장이 진주성 외성 흔적이다. 현재 진주성은 내성에 해당한다.

주에는 진짜 길이 있다.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살아온 오래된 도시 진주의 속살을 아낌없이 보여주는 길이다. 진주시 서쪽으로 들어와 진주 시내를 가르며 흐르는 물길이 남강(南江)이다. 남강이라는 이름은 진주 남쪽을 흐른다고 얻었다. 북쪽에는 진주의 진산인 비봉산이 든든하게 받치고 있다. 비봉산과 남강은 진주를 지키는 두 축이고, 길은 비봉산 줄기와 남강을 두루 누비면서 이어진다. 남강 가에 우뚝한 진주성은 임진왜란 진주성 싸움 현장이다. 진주성을 한 바퀴 돌아보는 것으로 걸음을 시작한다. 진주가 보여주는 다정한 풍광이 길손을 기다린다. ‘에나’라는 말은 진주 토속어로 ‘참, 진짜’라는 뜻이다. 진주에나길... 진주가 마련해 둔 진짜 길이다.

아! 진주성


진주성 공북문. 현재 진주성 정문 역할을 한다.

일본 전국시대를 마감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1537~1598)는 조선과 명나라까지 넘보는 헛된 꿈을 꾼다. 정명가도라는 명분을 앞세워 조선을 압박한다. 정명 가도(征明假道). ‘명을 치려고 하니 조선은 길목을 트라’는 황당한 요구였다. 조선은 단호하게 거절했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전쟁을 시작한다. 1592년 음력 4월 13일. 일본군 20만여 명이 조선을 침략한다. 임진왜란이었다. 부산포로 상륙한 일본군은 한양을 향해서 파죽지세로 북진했다. 전쟁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던 조선은 두 달도 못 버티고 전 국토를 일본군에게 짓밟혔다. 조선 임금 선조는 한양도성을 버리고 평양으로, 의주로 도망가기에 바빴다.


진주성 영남포정사. 경상남도 관찰사 청사 정문으로 사용되었다.

일본군은 안정적인 군량미 확보를 위해서 호남을 손에 넣어야 했다. 일본 수군은 남해와 서해를 통해 바닷길로 북진하는 작전을 세운다. 그러나 바다에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버티고 있었다. 잘 훈련되고 준비된 조선 수군 앞에 일본 수군은 속수무책이었다. 연전연패를 당한 일본 수군은 돌파구가 없었다.


진주성 북장대. 진주성 북문 지휘 장대로 진주성 내성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다.

바닷길이 막힌 일본군은 육로를 통해 호남으로 진출하려고 했다. 그 노선 상에 진주가 있었다. ‘진주가 없으면 호남도 없다’(무진주 무호남 無晉州 無湖南)라는 말은 당시 진주의 중요성을 말해준다. 삼만 명에 달하는 일본군이 진주로 밀려왔다. 조선 병력은 3,800여 명이었다. 8배나 되는 일본군들은 조총을 앞세워 거침없이 쳐들어왔다. 남강이 흐르는 남쪽을 제외한 동, 서, 북쪽 삼면에서 공격해온 것이다. 조선군도 필사적으로 맞서 싸웠다. 민과 군이 힘을 합친 진주성은 난공불락이었다.


진주성 호국사. 고려 말 승병 양성을 위해 창건하였고, 임진왜란 때는 승군의 근거지였다.

1592년 음력 10월 10일. 운명의 날이었다. 일본군은 모든 병력을 모아 공격하기 시작했고, 조선군도 치열하게 반격했다. 진주성 곳곳에서 처절한 사투가 벌어졌다. 그때 성안으로 들어온 왜군과 싸우던 김시민 장군이 이마에 유탄을 맞고 쓰러졌다. 민과 군이 힘을 합쳐 싸운 덕분으로 왜군은 싸움에 지고 물러갔으나, 진주목사 김시민 장군은 음력 10월 18일 눈을 감고 말았다. 장군의 나이 39세였다. 김시민 장군 시호도 충무공이다.


남강 변에 우뚝한 촉석루.


진주성 촉석루. 진주성 누각이자 군대를 지휘하던 남쪽 장대였다.

조선 육군은 임진왜란 발발 이후 계속 밀리고 졌다. 진주성 싸움은 조선 육군이 대규모 육상전투에서 완벽하게 이긴 최초 전투다. 민과 군이 합세하여 진주성을 지키고, 외곽에서는 각 지역 의병들이 일본군 후방을 교란하는 등 모든 사람들이 힘을 합쳐서 싸운 결과였다. 조선군은 800여 명이 전사했고 일본군은 1만여 명이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순신 장군의 한산대첩, 권율 장군의 행주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첩으로 꼽는다.

비봉산 품속으로


진주교회. 근대 인권운동인 형평운동 배경이 된 곳이다.


비봉루. 비봉산 자락에 있는 누각이다.

진주성을 돌아 다시 공북문 앞에 선다. 이제부터는 진주 도심 구간이다. 오래된 도시답게 곳곳에서 옛이야기를 만난다. 임진왜란 진주성 싸움에서 왜군 침공을 막아내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연못 대사지. 경남에서 가장 큰 시장이고 역사가 130여 년이나 되는 진주중앙유등시장. 근대 인권 운동인 형평운동 배경이 된 진주교회. 고려조 충신 포은 정몽주 선생 흔적이 남아있는 비봉루 등 골목을 하나 돌 때마다 이야기 하나가 마중 나온다. 시내 구간을 벗어나면 비봉산 품속이다.


비봉산 숲길. 조붓하고 부드럽게 이어지는 편안한 길이다

비봉산(138m)은 진주 시내를 북쪽에서 안고 있다. 유순하고 나지막한 산이지만 오랜 옛날부터 진주의 진산으로 대접과 사랑을 받아왔다. 진주 시내를 포근하게 감싼 모습이 마치 날개를 활짝 편 봉황 형상이어서 비봉산(飛鳳山)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전해진다. 비봉산 숲길로 들어선다. 잠깐 오르막을 지나면 부드럽게 흐르는 능선길이다. 길이 편하고 걸음이 가벼워지니 마음은 풍선을 탄다. 당연히 진주 시내를 걷던 리듬과는 달라진다. 안단테... 안단테...

갈림길. 한쪽은 계단, 다른 한쪽은 슬그머니 돌아가는 오솔길이다. 무엇에 끌리듯 조붓하게 이어지는 오솔길로 들어선다. 비탈에 선 나무들은 모두 갸우뚱 기울어져 자랐다. 길가 경사면을 온통 덮고 오른 마삭줄이 싱그럽다. 이 오솔길로 가는 것이면 좋을 텐데... 작은 소망을 담아 가야 할 길을 확인한다. 그럴 줄 알았다. 계단으로 가야 한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계단을 오른다. 그래, 항상 꽃길일 수는 없다.


비봉산 느티나무. 넉넉한 그늘은 훌륭한 쉼터다.

비봉산 꼭대기. 정수리 부분에 소나무 한 그루가 우뚝하다. 소나무 주위로 단풍나무, 배롱나무, 느티나무 등이 호위하듯 서 있다. 소나무가 모든 나무 중에서 으뜸이라는 이야기가 실감 나는 모습이다. 언덕 같은 비봉산 정상을 내려오면 말안장처럼 평평한 고갯마루다.

고갯마루 한쪽에 듬직한 느티나무가 널찍한 그늘을 만들고 있다. 그늘로 들어간다. 벤치에 배낭을 벗어놓고 신발 끈도 풀어버린다. 세상 편한 자세로 눈을 감는다. 바람이 느껴진다. 어디선가 달큼한 향이 바람을 타고 날아든다. 이 아찔한 냄새는 알 것 같다. 아카시 꽃 내음. 바야흐로 봄이 깊어가는 중이다.

고갯마루는 네거리다. 여태껏 걸어온 능선길과 교차하는 고갯길이 있다. 비봉산 남쪽 진주 시내와 비봉산 북쪽 하촌동과 집현면을 잇는 고개다. 예전 장꾼들도 이 느티나무 그늘 덕을 보았으리라. 장을 보러 가는 사람도, 장을 보고 오는 사람도... 어쩌면 곰방대에 봉초를 한 줌 재어 맛나게 피우면서, 받쳐놓은 지겟가지에 걸린 자반 한 손을 흐뭇한 미소로 바라보았을지도 모른다. 내일 아침 아버님 진짓상에 올릴 것을 생각하며...

대봉정 그리고 선학산 전망대


대봉정 가는 길도 걷기 편한 오솔길이다.


언덕 위에 날렵하게 앉아있는 대봉정. 비봉산 옛 이름이 대봉산이다.

고갯마루에서 작은 언덕을 넘으면 두 갈림길이다. 어떤 길로 가도 나중에는 만나게 되지만 오른쪽 길로 가야 한다. 왼쪽 길은 임도, 오른쪽 길은 그늘 좋은 오솔길이다. 중간중간 시야가 터지는 곳에서 만나는 진주 시내 풍광은 대봉정 그림 예고편이다. 대봉정까지 기분 좋은 숲길이 계속된다.


대봉정에서 보는 진주 시내와 남강.


대봉정에서 보는 진주 시내 야경.

오솔길이 끝나는 언덕에 날아갈 듯 올라앉은 큼직한 정자가 있다. 대봉정이다. 2018년 11월 준공된 새 건물이다. 정자 이름은 비봉산 옛 이름인 대봉산에서 가져왔다.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 집인데 팔작지붕을 얹었다. 대봉정으로 오른다. 거칠 것 없이 일망무제로 펼쳐지는 풍광에 눈 맛이 시원시원하다. 남강과 진주 시내 모습은 물론이고, 진양호와 그 너머 지리산 줄기까지 한눈에 잡힌다. 새로운 진주 팔경을 정한다면 한자리는 떼어 놓은 당상이다.


선학산 숲길

바람도 좋은 대봉정을 내려와 임도를 따라간다. 고개 위에 다리가 걸렸다. 마티고개를 가로 지른 봉황교다. 봉황교를 넘어서면 선학산(135m)이고 다시 숲길이다. 선학산도 높은 산은 아니라서 길은 여전히 부드럽게 이어진다. 숲으로 들어서니 봄이 익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연둣빛 아기 새순이었던 나뭇잎들은 점점 자라서 훤칠한 청년들이 되었다. 이파리 색깔도 점점 짙어져간다. 푸른빛으로 온 세상이 환해졌다. 이즈음 숲에서는 바람도 푸른색이다.


선학산 전망대에서 본 남강과 진주성

숲길이 끝나는 곳에 선학산 전망대가 있다. 이곳 전망대 풍광도 대봉정 못지않다. 대봉정 풍광이 진주 시내 전체를 담고 있다면 선학산 전망대는 남강과 진주성 주변의 풍광을 잘 보여준다. 선학산 전망대에서는 일출과 일몰을 같이 볼 수 있다. 진주 동쪽에 있는 월아산 방향에서 떠오르는 해와 남강 너머 지리산 쪽으로 지는 해를 볼 수 있다.


선학산 전망대에서 본 지리산 일몰

지리산 줄기 위로 걸린 해가 한 뼘쯤 남았다. 한 시간 정도 지나면 일몰일 것이다. 갈 길은 아직 멀지만 자리를 털고 일어나기는 싫다. 이런 모습을 언제 또 마주할 수 있을까? 마음을 느긋하게 먹는다.


제일 뒤로 지리산 줄기가 보인다.

남강에 붉은빛이 돈다. 남강 너머 첩첩한 산그늘이 짙어진다. 저 멀리 지리산 줄기 위로 노을이 진다. 해는 넘어갔는데 노을은 선연하게 붉어진다. 어둠 속으로 사위어 가기 전 마지막 불꽃인가. 이제는 일어날 시간이다.

남강 푸른 물에


남강변 대숲 사이로 보이는 남강과 진주성.

진주에나길은 선학산 동남쪽 줄기를 타고 길게 우회하지만, 선학산 전망대에서 바로 남강으로 내려오는 길이 있다. 전망대 아래로 산길을 잠깐 내려오면 남강 변이다. 진주성 앞에서 진주교를 건너 남쪽 강변으로 간다.


강 건너에서 본 진주성 촉석루와 의암.


불이 들어온 진주성 촉석루와 의암.

진주시 서쪽으로 들어와 진주 시내를 가르며 흐르는 물길이 남강(南江 186km)이다. 진주 남쪽을 흐른다고 남강이고 낙동강 제1지류다. 남강은 백두대간이 지나는 남덕유산 남쪽 계곡에서 발원한다. 작은 물줄기로 시작한 남강은 함양, 산청, 의령, 진주, 함안 등을 에두르고 휘돌아 가며 고을마다 서려있는 수많은 사연들을 합쳐 낙동강에 풀어놓는다. 남강이 감고 흐르는 진주성을 촉석성 혹은 촉성으로 불렀기에 남강도 촉석강이나 촉성강이라고도 한다. 해가 지고 나면 진주성에는 불이 들어온다. 아름다운 진주성 야경을 가장 멋지게 감상할 수 있는 곳이 촉석루 맞은편이다.


진주성 촉석루, 의암. 제일 오른쪽 건물이 촉석문이다.

온 나라가 왜군들에게 짓밟히던 임진왜란 때.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마음을 가진 여인이 있었다. 논개(論介).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남강 물결 속으로 스러져간 여인 이름이다.

진주성 싸움에서 크게 승리한 이듬해. 1593년 6월 제2차 진주성 싸움이 벌어진다. 1차 진주성 싸움에서 참패를 당한 왜군들이 명운을 걸고 진주성을 재차 침략한 것이다. 조선 병력은 의병을 합하여 5,800명이었다. 이들은 성안에 있던 백성들과 힘을 합쳐, 10만여 명 대군으로 쳐들어온 왜군들과 결사적으로 싸우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7만여 명 조선 사람들은 모두 산화한다.


남강에 홀로 떨어져 있는 네모난 바위가 의암이다.


진주성 촉석루, 의암, 촉석문 야경.

이때 산화한 백성들 중에 논개가 있었다. 그녀는 잔치나 술자리에서 노래나 춤으로 흥을 돋우던 기생이었는데 진주목에 속한 관기였다. 논개는 2차 진주성 싸움에서 간신히 살아남았지만, 처참한 진주성 참상을 보고 자기도 죽으려는 결심을 한다. 곱게 단장한 논개가 승리를 자축하는 왜군들 앞에 나서자, 술에 취한 왜장이 논개를 희롱한다. 때를 놓치지 않은 논개는 왜장을 껴안고 남강으로 뛰어든다. 거룩한 분노였다. 이후 논개를 ‘의로운 기생’이란 뜻으로 의기(義妓)라고 했고, 논개가 강물로 뛰어들었던 바위를 ‘의로운 바위’ 의암(義岩)이라고 부른다.

불 밝힌 진주성이 그림처럼 곱다.


▶︎걷는 시간

4시간 30분 (순 걷는 시간. 답사 시간, 쉬는 시간 등은 제외)

▶︎걷는 거리

15km / 순환형

▶︎걷기 순서

진주성 관광안내소 ~ 중앙유등시장(1km) ~ 진주교회(1.6km) ~ 비봉루(2.4km) ~ 봉산사(2.8km) ~ 비봉산 정상(3.5km) ~ 봉황숲생태공원 입구(4km) ~ 대봉정(5.6km) ~ 봉황교(6.5km) ~ 선학산 전망대(7.8km) ~ 진양교(11km) ~ 남가람문화거리 공연장(12km) ~ 남가람공원(13.2km) ~ 진주성 관광안내소(15km)

*선학산 전망대에서 송원사쪽으로 내려오면 남강변으로 바로 갈 수 있다.

▶︎코스 난이도

보통


▶︎화장실

진주성, 진주성 공북문 앞, 비봉루 입구, 가마못공원, 비봉산등산로 입구, 비봉산 삼림욕장 운동시설,

봉황숲생태공원 관리사무소, 대봉정, 봉황교, 선학산 전망대, 남가람문화거리 강변공원, 남가람공원 중앙광장,

▶︎음식점 및 매점

진주성~진주교회 구간은 음식점과 매점 밀집지역, 진주시청~진양교 구간은 음식점과 매점 밀집지역,

남가람문화거리와 남가람공원 부근에 음식점과 매점

▶︎숙박 업소

진주성 부근과 진주시청 부근은 숙박업소 밀집지역

▶︎진주성 입장료

어른 2,000원 (단체 1,400원) / 청소년 군인 1,000원 (단체 600원) / 어린이 600원 (단체 400원)

▶︎교통편

- 찾아가기 : 진주 시외버스터미널에서 900m 정도 걸으면 진주성이다. 진주역에서 131번 버스를 타고 농협중앙지점 버스정류장에서 내린 후 500m 정도 걸으면 진주성이다.

- 돌아오기 : 찾아가기의 역순이다.

 

- 주차장 : 진주성

 

▶︎ 코스 문의

진주시청 관광진흥과 관광시설팀 055-749-5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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