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담양] 일러스트 그림 그리며 떠나는 걷기여행, 오방길 2코스 산성길

2019-06 이 달의 추천길 2019-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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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산성길 따라

오롯한 시간을 선물 받는 길

'담양 오방길 2코스 산성길'

김강은 여행작가


산에서 출장을 마치고 담양으로 넘어가는 길, 오늘은 담양에서 걷기여행을 할 요량이다. 담양은 메타세쿼이아길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 길만 있는 것은 아니다. 꼭 유명한 곳만 걸으라는 법도 없다. 내가 향하는 곳은 바로 담양 오방길. 다섯 가지 문화생태탐방로로 조성된 오방길 중에서도 2코스는 담양 금성산성을 따라 산길을 걷다가 담양호를 따라 내려오는 “산성길”이다.

짐을 바리바리 싼 묵직한 배낭을 메고 올라선 가볍지 않은 길이지만, 마음만큼 그 어느 때보다 가벼운 것은 새로운 지역, 새로운 길, 새로운 풍경을 만날 생각 때문이겠지? 언제나 새로운 길을 만나러 가는 길은 새로운 인연을 만나러 가는 것처럼, 묘한 긴장과 설렘을 가져다준다.

요새를 찾아서

담양군 금성면과 전라북도 순창군의 경계를 이루는 금성산에 있는 금성산성은 호남의 3대 산성 가운데 하나로 뽑힌다. 험준한 자연지형을 최대한 이용하여 성벽을 쌓았는데, 가파른 능선과 암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내부는 분지 형태로 수천 명이 생활하고도 남을 만큼 풍부한 물과 넓은 활동 공간을 갖추고 있다. 또 주변에는 높은 산이 없어 성안을 들여다볼 수 없어 요새로서 완벽한 요건을 갖추고 있는 금성산성. 동학농민운동 때 성안의 모든 시설이 불타 없어졌지만, 성곽 복구 사업으로 현재는 4개의 문을 복원하였고, 산성길이란 산책길이 조성되어 있다.

임진왜란 때 의병이 거점이 되었고, 동학농민운동 때는 치열한 싸움터가 되었던 금성산성은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요새를 찾는 것으로, 나의 걷기 여행은 시작되었다.



 

시작점은 담양리조트. 리조트 주차장에서 표지판을 따라 약 300m 정도 올라가면, 안내판이 산성길의 시작을 알린다.

헐떡 헐떡, 숨을 토해내다



요새는 괜히 요새가 아니었던 것일까. 임도를 살짝 걷다가, 산성길 표지판을 따라 들어선 산길은 초장부터 제법 오르막이다. 홈페이지에 난이도 상이라고 적혀있던 것을 그냥 콧방귀 뀌며 지나치는 게 아니었는데. 오랜만에 숨이 가쁘다. 마치 몸속에 있는 모든 것들을 토해내듯이, 깊은숨을 들이 내쉬어야 하는 길이다.


풀숲은 우거져있고, 길은 한 사람이 지나갈 정도로 폭이 아담하다. 이따금씩 나타나는 키 큰 소나무들은 좋은 공기만 마시고 살아서 그런지, 색이 참 곱다.


숨을 헐떡이며 약 20분쯤 올랐을까. 꽤 평탄하고 널찍한 길이 나타난다. 비 오듯 땀을 쏟아내는 내게, 승복을 입은 두 남녀 신자가 다가와 말을 붙인다.

“어디로 올라오신 거예요?”

“담양 리조트에서요.”

“아이고, 거기 힘든데. 이쪽에서 올라오면 좋은데!”

“네. 그런데 오방길 2코스를 걸어보려고요.”

“아 그렇구나. 잘 왔어요. 동자암으로 가면, 꽃이 아주 예쁘게 피어 있어. 사진도 찍고 꽃 냄새도 맡고 해봐요.”



별것 아니지만 오가는 한마디가 훈훈하다. 처음 보는 이의 안위를 살피며 살갑게 말 붙이는 심성이 따뜻하다. 한결 뭉근해진 마음으로 잠시 흐르는 땀을 식히고, 숨을 고르고, 다시 보국문으로 향한다.

켜켜이 쌓인 세월과 역사, 탁 트인 경치 보국문과 충용문


보국문 표지판을 본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길에 돌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시야를 가리는 깃 바윗길 끝, 예상치 못한 것이 나타났다. 금성산성 외남문, 보국문이다!


 

켜켜이, 그리고 견고하게 쌓인 성곽. 그리고 그 단단한 성곽 사이에 자리한 보국문. 알알이 차곡차곡 쌓아진 돌이 세월을,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만 같다. 보국문 위에서는 담양 시내와 담양호가 한눈에 바라다 보인다. 날씨는 살짝 흐릿하지만, 여전히 시원하고 가슴이 탁 트이는 풍경이다.


 

보국문 안으로 들어서니 산허리를 따라 성곽이 길게 이어져있다. 그리고 오래 지나지 않아, 약 5분 거리에 금성산성 내남문인 충용문이 보인다. 충용문에서 내다보이는 보국문과 그 너머의 풍경 역시 근사하다. 한참을 머물게 되는 풍경이다. 그곳에서 잠시 나는 작은 파렛트를 펼쳤다. 살랑이는 바람을 맞으며, 충용문에서 바라다보이는 보국문을 작은 화폭에 담아본다. 

 

다시, 꽃내음으로 가득


 

축용문과 보국문을 지나니, 동자암과 보국사터로 향하는 표지판이 보인다. 그리고 난데없이 향긋한 꽃향기가 코를 찌른다. 곳곳에 이름 모를 하얀 꽃이 피어있고, 보국사 터 옆길로는 시선을 사로잡는 보랏빛 붓꽃이 그득하다. 바닥에는 꽃잎이 떨어져 길을 장식하고 있다.

 

보국사 터를 지나서부터 길은 더더욱 향긋해진다.

숲은 깊어지고, 다람쥐가 인기척에 놀라 뛰어간다.

딱따구리가 푸드득 날아가기로 한다.

대나무 숲속에서는 한 노인이 죽순을 캐고 있다.


아름답게 피워내고, 져서도 향기를 길을 가득 채우는 꽃들.

그리고 짙은 숲의 냄새.

헐떡이며 내 안에 모든 숨을 토해낸 빈 공간에 산성길의 초록이, 그리고 향긋함이 가득 채워진다. 

서문, 바람이 불어오는 곳으로


향기에 심취해 깊은숨을 들이쉬며 걷다 보니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바람의 끝에 서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성문 터만 남은 서문에 올라서니 과연 지리적 요건을 갖춘 요새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파른 능선과 바위를 따라 지어진 성곽들이 내다보였다. 서문은 계곡보다 훨씬 높은 위치에 양옆으로 축단을 쌓았 가운데는 성문을 배치한 것 같다.



바람에 풀잎이 흔들리고 성문 사이, 아래로 이어지는 산성길을 계속 이어 걸었다.

담양호를 따라 선물 받은 오롯한 나의 시간



서문부터는 하산길이다. 조금 미끄러운 자갈길이 이어지기 때문에 등산화나 밑창이 미끄럽지 않은 운동화를 신어야 할 것 같다. 약 30분간 가파른 하산길을 내려오면, 이제 마음이 편안해지는 임도길이 시작된다.



10키로의 절반 정도는 금성산성의 성곽길을 걷고, 절반은 담양호 둘레를 따라 임도를 걷는 길. 가파르게 올라 내 안의 공기를 솎아낸 후, 편안한 마음으로 걷는 길이라니, 적절한 조화다.

임도길은 별다른 볼거리가 없고 그저 가끔, 담양호의 모습이 나타날 뿐이었다. 그렇게 쭉 담양리조트까지 평탄한 길이 이어진다.

누군가는 이 길이 지루하다고 말할 것이다. 재미를 원한다면 혼자보다는 친구와, 연인과, 가족과 걷는 것이 좋겠다. 하지만 금성산성을 둘러보고 난 후 조용히 걷는 이 시간이 선물같이 느껴졌다. 얼마나 바쁘고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내왔던가. 이 얼마 만에 맞는 홀로 걷는 시간이던가. 해가 뉘엿뉘엿해지는 이 길 위에서 조용히 음악을 틀어놓고, 천천히 걸어나가는 이 길이 내게는 더할 나위 없는 사색의 길이었다.





바삐 살아온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걸은 좋은 공기과 좋은 향기로 내 몸을 가득 채워주는 담양 오방길 2코스, 산성길은 소중한 순간순간들을 놓치지 말라고 나긋 나긋 다독여주는 것만 같다.


▶︎걷는 시간

3시간 (쉬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걷는 거리

10.5km

▶︎코스 난이도

초반에 보국문까지는 가파르고 난이도가 있지만, 이후부터 난이도는 중.

임도길이 나타나고부터는 난이도 하.

▶︎화장실

코스 시작하자마자 간이 화장실 위치 및 임도길 시작될 때 오른쪽에 위치.

▶︎음식점 및 매점

코스 중간에는 마땅한 편의시설이 없어, 개인이 준비해야 한다.

▶︎식수

동자암 내 약수터

▶︎쉼터

곳곳의 벤치, 보국문과 충용문 성루, 임도길 시작한 후 500m 이내 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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