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고성] 친구와 함께 그림 그리며 떠난 '해파랑길 46코스' 걷기여행

2019-09 이 달의 추천길 2019-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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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파랑을 품은,

해파랑길

'강원도 고성, 해파랑길 46코스'

김강은 여행작가



꿈꿔 왔던 길이 있다. 푸른 대서양을 끼고 그림 같은 풍경 속을 걷는, ‘산티아고 순례길 북쪽길’을 연상시키는 길. 바로 동해안을 따라 걷는 ‘해파랑길’이다. 해파랑길은 부산에서 고성까지 약 770k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최장 트레일이다. 800km를 걷는 순례길과 거리만 비슷한 것이 아니라, 새파란 바다를 벗 삼아 걷는 서정적 풍경이 무척 닮아있다.

해파랑길을 걸으며 그 길에서 마주한 풍경을 그림으로 담아보고 싶다는 꿈. 그 꿈을 실천하기 위해 해파랑길 46코스를 찾았다. 이른 아침 속초행 버스에 올라탔다. 이번엔 존뮤어트레일을 함께 걸었던 친구, ‘다나’와 함께다. 이른 새벽의 터미널, 미술도구를 담은 배낭, 어디론가 떠나는 시외버스, 그리고 함께 걸어줄 좋은 친구까지. 더할 나위 없다. 바쁜 일상에 치여 딱딱해졌던 심장이, 어느덧 따끈한 설렘으로 차올라 빠르게 뛰기 시작한다.

파란 눈의 해파랑꾼


46코스의 시작점은, 속초 장사항이다. 한적한 바람만이 옷깃을 스치는 길을 걷기 시작하며, 난데없는 호기심이 발동했다.

“오늘 우리 말고 또 다른 해파랑꾼을 만날 수 있을까?”

“내기해 보자. 나는 한 명 만난다에 한 표!”

“그럼 나는 두 명!”


누가 이 내기에서 이길까 아웅다웅하는 와중에, 파란 눈의 남자가 시야에 들어왔다. 꾸미지 않은 듯 소소한 행색, 편한 운동화, 등을 덮는 커다란 배낭을 보아하니 틀림없는 해파랑꾼이다. 예감은 적중했다. 남자는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벨기에에서 온 여자친구와 함께 해파랑길을 걷고 있다고 한다. 예정에 없이 방문한 한국이, 이 길이 무척 마음에 든다는 그들. 괜스레 뿌듯한 기분이다.


처음 만난 해파랑꾼이 하필 외국인이라니, 아이러니하지만 마치 해외의 트레일에 선 듯한 착각도 일었다. 히치하이킹을 시도할 거라는 두 사람과 헤어지며 크게 손을 흔들었다. 앞으로 이 아름다운 길 위에 더 많은 해파랑꾼들을 마주하며 서로 반갑게 인사 나누길 소망하면서.

파란 바다와 함께 걷는 길


장사항을 시작으로 30분쯤 걸었을까. 어디선가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짭짤한 내음을 태운 선선한 바람이. 해변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폭폭 빠지는 부드러운 모래 카페트를 밟으며 그 위에 얹어진 파란 바다, 멀리 보이는 아담한 섬 죽도를 차례대로 바라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건 시간문제. 날은 조금 흐렸지만, 흐리면 어떤가. 걷기엔 최고의 날씨가 아닌가! 선선한 바람이 말해주고 있다. 뜨거웠던 여름의 문턱을 지나고 있음을, 끝 여름을 몰아내며 가을이란 것이 조용히 다가오고 있음을.

 

길은 바다를 따라 계속 이어진다. 걸을수록 바다색이 더욱 아름다워지는 건 기분 탓일까. 천진항에 들어서자 파랗던 바다는 좀 더 맑은 에메랄드빛을 띄었고, 맑은 물빛에 두 눈이 다 상쾌할 지경이다. 늦은 휴가철 물놀이를 하는 사람들의 한가로운 한때를 바라보며 걸음을 이어나간다.


아름다운 쉼표, 청간정

길을 걷다 보니, 눈 마주치는 많은 사람들이 호기심 어린 인사를 건넨다.

“어디서부터 걸어오셨어요?”

“켄싱턴 해변에서도 걸어오시는 걸 봤는데, 걸어서 여행하시는 거예요? 우와, 멋지다!”

“힘내세요!”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선의의 인사말과 격려를 건네는 사람들. 덕분에 발걸음에 힘이 실린다.


바닷길을 따라 걷다가, 다시 내륙으로 이어지는 듯하더니 저 멀리 언덕 위 소나무 사이로 정자 하나가 보인다. 절묘한 곳에 위치해 있는 누각 정자. 설악산 골짜기에서 발원한 청간천과 동해바다가 합류하는 지점에 세워진 청간정으로, 관동 8경 중 하나다.

 


소나무가 멋들어지게 우거진 길을 걸어 청간정에 올라섰다. 흐르던 땀이, 후끈해진 몸의 열기가 청간정의 시원한 바람에 순식간에 날아가 버린다. 나도 모르게 가방을 내려놓게 되는 곳, 절로 웃음이 나오는 묘한 매력이 있는 곳이다.


청간정에서 묘한 색의 바다를 한참을 내다보며 이 순간을 만끽했다. 이보다 더 꿀 같은 휴식이 있을까. 땀을 흘리지 않았다면, 이 휴식이 이렇게 꿀처럼 달콤했을까? 이 달콤함을 맛본 자라면, 걷는 걸 포기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낭만 도보여행자



길은 다시 해변을 따라 이어진다. 청간해변을 지나 작고 통통한 오렌지빛 등대가 귀여운 아야진항에 도착했다.


그런데 웬일인지 등대 앞 한 암초 위에서 한 밴드가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마을 축제가 있는 것인지, 뮤직비디오 촬영이라도 하는 것인지. 파도를 타고 들려오는 음악소리가 아야진항의 정취를 한층 다채롭게 만들고 있었다.


목을 축이기 위해, 작은 가게에 들러 취향대로 마실 것을 골랐다. 시원한 음료를 벌컥 벌컥 들이키며 걷는 해파랑길은 한결 청량한 느낌이다. 식도를 타고 흐르는 청량한 음료 한 모금에 우리는 금세, 낭만 도보여행자로 변신했고 발걸음이 가벼웠다. 가벼워진 발걸음, 경쾌한 걸음걸이에는 리듬이 생긴다.

파란 숲길을 걷다


해변 옆을 걷던 길은 난데없이 숲으로 이어진다. 이 길이 맞나 싶어 표지판을 돌아보니, 해파랑길을 의미하는 주황 화살표가 이 방향이 맞다고 말하고 있다.

 

잘 깔린 나무계단길을 오를수록, 곧게 뻗은 적갈색의 소나무들이 빽빽하다. 해변 옆을 걸을 때와는 다른 공기, 온도, 향기…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우리를 둘러싼 소나무들이, 나무숲이 만들어 준 그늘 막이 상냥한 위로를 건네는 듯하다. 한 발짝 한 발짝, 파란 숲을 올려다보며, 깊은 호흡을 하며 우리는 그렇게 천천히 걸었다.


찰나의 오르막을 오르고, 다시 아래로 향하니 숲의 끝에는 ‘천학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천학정은 청간정과 같이 가파른 해안절벽에 자리 잡고 있는 정자다. 일출 명소로도 유명하며, 천학정 옆의 백도해수욕장, 자작도해수욕장까지 이어지는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도 갖추고 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쉼터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지. 천학정에 앉아, 다시 한번 숨을 고른다.

순수함 가득한 벽화길, 문암항길






문암항, 백도해수욕장을 지나 작은 골목으로 들어섰다. 차도 잘 다니지 않는 이 조용한 문암리 골목의 키 낮은 집 곳곳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


꽃밭, 나비, 옛날 펌프, 빨랫줄, 초가집, 장독대… 과하지 않은, 순수함이 담뿍 담긴 그림들이다. 따뜻한 색감과 감성에 바삐 가던 길도 잠깐 멈추게 만드는 벽화들. 어느덧 나도 모르는 사이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자리했다.


하늘은 조금씩 흐려지더니 채도가 낮은 푸른빛을 띠었다. 맑은 에메랄드빛을 머금던 바다는 어느덧 중후한 검은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바다색이 하늘색을 닮아가는 걸까?”

생각해보니 그렇다.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조금 더 희미해진 느낌, 하늘과 바다가 하나로 이어진 느낌.

“그래도 이런 날에 걸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걷기 좋은 날씨야.”

 

최상의 조건이 아니라도, 대단한 아름다움이 아니라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마음. 함께 걸으며 진솔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동행, 함께 걸어 좋다고 말해주는 친구가 내 곁에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내 마음 속에 저장! 해파랑길을 그림으로 담다.

우리의 해파랑길은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끝을 알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빗방울이 호드득 호드득 떨어지기 시작했고, 자작도 해변가에 있는 카페로 황급히 피신했다. 짧지 않은 거리, 15km의 길을 걸어온 우리들. 그런 우리에게 달콤한 간식으로 포상을 내리기로 했다. 옛날식 유리그릇에 담뿍 남겨져 나온 옛날식 팥빙수. 숟가락을 든지 10분도 채 되지 않아 빈 그릇으로 만들어버리는 기지를 발휘했다.


빙수로 속차리고 나선 자작도 해변은 비가 그치고 후덥한 열기가 한결 꺾여 있었다. 시원한 공기, 상쾌한 몸과 마음 덕분인지 자작도 해변이 한층 아름다워 보인다. 이 기세를 몰아 이 순간을 마음속에 저장하기로 했다.



이 순간을 특별하게 기억하는 나만의 방법은 바로 그림으로 담기. 파도가 찰박거리는 해변가 모래 위에 아무렇게나 앉아, 팔레트를 펼쳤다. 작은 종이와 연필과 붓도 꺼냈다.


날은 조금 흐렸지만, 내가 느낀 해파랑길의 감성, 그리고 청량한 기분을 담뿍 담았다. 길에서 만난 푸른 해변들, 파란 숲, 선선한 바람, 두 해파랑꾼에게 건네는 사람들의 기분 좋은 격려. 비록 더위가 가시지 않은 여름날이었지만, 해파랑길을 떠올릴 때면 “시원한, 짙은 파란색"이 떠오를 것 같다. 그림으로 담은 이 행복한 순간은 내 기억 속에 오래오래 잊히지 않을 것이다.





▶︎걷는 시간

4시간 30분 (쉬엄쉬엄 사진 찍으면서)

▶︎걷는 거리

15km

▶︎걷기 순서

장사항~(6.5km)~청간정~(3.7km)~천학정~(1.0km)~능파대~(3.8km)~삼포해변

▶︎코스 난이도

중하

- 오르막이 거의 없는 해변길이다.

- '천학정' 가기 전 아주 작은 숲과 오르막이 있음.


▶︎걷기 TIP

- 해변길이기 때문에 모자나 선크림은 필수.

- 해파랑길 표시나 표지판 확인이 잘되지 않는 구간이 많다. GPS 지도를 수시로 확인할 것.

- 코스 내에는 돌길이나 오르막이 없는 편이니 트레킹화나 운동화로도 충분히 걷기 가능하다.

▶︎화장실, 음식점 및 매점

곳곳에 편의시설과 공용 화장실이 있다.

▶︎교통편

속초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시내버스 9번 이용, 속초고교입구 정류장에서 하차 후 도보 이용

▶︎길 상세보기

글, 사진 : 김강은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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