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예천] 역사·문화와 함께 걷는 길, 경북 예천 '십승지지 금당실길'

2019-09 이 달의 추천길 2019-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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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뜬 연꽃 마을을 걷다

'경북 예천군 예천 십승지지

금당실길'

김영록 여행작가


름은 기세가 꺾였다. 온 대지를 태울 듯 이글대던 태양도 많이 순해졌다. 저물어 가는 여름 뒤에는 하늬바람 앞세운 가을이 기다리고 있다. 아직 햇살은 따끔해도 그늘로 들면 다른 세상이다. 훨씬 높아진 하늘, 물기 없는 바람에 기분이 좋아진다. 어디론가 떠나야 한다. 그런데 어디로 가나. 가을을 앞둔 들판 사정도 궁금하고, 돌담장 위에서 익어가는 늙은 호박 안부도 궁금하다. 그런 곳이 어디 있더라.

그래 있다. 예천 금당실마을...


동구 밖에 나그네를 내려놓은 버스는 꽁무니를 보이며 저만치로 사라졌다. 길에는 나그네 혼자만 덩그러니 남았다. 방향을 챙기고 큰 길을 벗어난다. 마을길로 접어들면 풍광이 확 바뀐다. 앞으로 흐르는 냇물은 금곡천이다. 금곡천 건너 숲에 첫 번째 목적지 병암정이 있다.


병풍바위에 앉은 정자


금곡천을 건너 너른 들판을 보면서 걷는다. 아직 병암정은 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커다란 나무들에 가렸다. 나무들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지만 정자 아래 연못 둑 위로 올라서야 진면목을 보인다. 좋은 정자는 두 가지를 만족시켜야 한다. 멀리서 보는 정자 모습이 그림 같아야 하고, 정자 안에서 보는 주변 풍광이 좋아야 한다. 일단 한 가지는 갖췄다. 연잎 가득한 못 뒤로 두툼한 바위 절벽에 올라앉은 정자 모습이 그만이다. 연못 둑길을 따라 정자로 향한다. 주차장에서 바로 언덕을 오르면 뒷문으로 들어가게 된다. 정문으로 가려면 둑길을 에둘러야 한다.


둑 위에는 나이가 제법 되어 보이는 왕버들이 자리 잡았다. 왕버들은 우리나라 토종식물이다. 이름에서 짐작하듯이 버드나무과에 속하고 키는 20m까지 자란다. 둥치는 아름드리가 넘게 커지고 가지도 굵고 튼튼하다. 수명도 수백 년을 넘겨 산다. 고목으로 자란 왕버들은 우람하고 장한 수형을 가진다. 이런 이유로 버드나무 중의 왕, 왕버들로 부른다. 왕버들은 물기를 좋아해서 습지나 냇가에서 주로 자란다. 이곳 왕버들도 장하게 자랐다.



연못 둑 끝까지 가면 정자로 오르는 길이 있다. 병암정으로 들어선다. 앞면 5칸 옆면 2칸 팔작지붕집이다. 마당으로 나가면 담장이 앞을 막지만 담장 아래 댓돌이 있다. 댓돌로 올라서면 눈맛이 시원해지는 풍광이 펼쳐진다. 또 하나를 갖추는 순간이다. 아름다운 병암정은 예천 지역 독립운동가인 권원하 선생과 관련이 있는 건물로 소개하고 있다. 뒷문으로 나가면 예천 권씨 사당이 있다.


하늘이 내린 땅 예천

이곳 예천군(醴泉郡)을 신라 시절에는 수주현(水酒縣) 이라고 했다. 예천은 단술이 나는 샘이라는 뜻이다. 수주현이라는 이름도 물과 술이다. 어쩌면 이곳은 술 빚기 좋은 물이 많이 나고, 마치 단술처럼 물맛이 좋아서 수주니 예천이니 하는 이름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봉황은 신령한 새다. 온 세상 날짐승을 거느리는 왕이다. 수컷을 봉이라고 하고 암컷을 황이라고 한다. 봉황은 암수를 같이 이르는 말이다. 봉황은 아무 데나 머물지 않고 아무것이나 먹지 않는다. 봉황은 오동나무에 깃들어 살며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는다고 한다. 또 봉황은 예천에서 나는 물이 아니면 마시지 않는다. 그래서 예천은 상서로운 새 봉황이 사는 길한 동네다. 실제로 예천군에는 봉황마을이 있다.


정감록 같은 예언서나 도참설, 풍수지리설 등을 신봉하는 술사들이 이야기하는 것 중에 십승지지(十勝之地)라는 것이 있다. 천재지변이나 전란이 일어나도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열 군데 땅을 이르는 말이다. 자료마다 조금씩 이견은 있다. 대개 경북 영주 풍기, 경북 봉화 춘양, 충남 공주 유구와 마곡, 충북 보은 속리산, 전북 남원 운봉, 전북 무주 무풍, 전북 부안 변산, 경남 합천 가야산, 강원 영월 정동, 그리고 경북 예천 금당을 꼽는다.

금당실 가는 길

예천 금당실. 십승지지이며 봉황이 머무는 곳이고 단술이 나는 땅이다. 금당실마을을 중심으로 아름다운 정자 두 곳을 이어서 낸 길이 ‘예천 십승지지 금당실길’이다. 병암정은 금당실길을 시작하는 곳이다. 병암정을 내려오면 앞으로 보이는 들판을 지나 금당실마을로 간다.


들판을 가로지르는 농로는 직선으로 뻗어있어 걷는 재미가 없다. 조금 돌아가더라도 길에 운율이 있는 산기슭 길을 따라간다. 들판 건너로 금당실마을이 보인다. 싱싱하게 자란 벼는 벌써 이삭이 팼다. 아직은 싱그러운 푸른색이지만 살짝 누런빛이 어렸다.


작고 조용한 복천마을을 지난다. 복천(福泉). 복 있는 샘 마을. 이곳에는 오래전부터 우물이 있었다.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고 물맛이 좋아 복천이라고 했다. 마을 이름은 이 샘물에서 왔다. 복 있는 샘. 복천은 예천으로 통한다. 복천마을을 지나 금곡천에 걸린 성현교를 건너면 금당실마을 동구다.

물에 뜬 연꽃마을 금당실


금당실마을 본격 산책은 용문면사무소부터다. 면사무소 앞에 그늘 넓은 느티나무가 있다. 수령이 500년이 넘었다. 나무에 걸린 금줄을 보니 금당실 마을을 지키는 당산나무다. 나무 그늘 속에 들어앉아 금당실 마을 지도를 살펴본다. 금당실은 윗금당실(상금곡리)과 아랫금당실(하금곡리)을 합쳐 부르는 이름이지만, 보통은 윗금당실을 가리킨다. 우리 걸음도 윗금당실로만 이어진다. 금당실마을은 찬찬히 둘러보려면 한나절 가지고도 모자란다. 주어진 시간에 돌아볼 수 있는 동선을 찾아낸다.

금당실마을 뒤에 오미봉이라는 200m 정도 되는 산이 있다. 다섯 가지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는 봉우리라고 한다. 오미봉 오른쪽에서는 금곡천이 흘러들고, 왼쪽에서는 선리천이 흘러 마을 앞에서 합쳐진다. 마을에서는 금곡천을 앞내, 선리천을 뒷내라고도 부른다. 이런 형국이 풍수지리에서 이야기하는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으로 연꽃이 물에 떠 있는 형상이며 명당이라고 한다. 오미봉은 화심(花心) 바로 꽃술자리라는 것이다. 금당실은 예사롭지 않은 마을이다.



금당실 골목 여행을 시작한다. 제일 먼저 나그네를 반기는 것은 나지막한 돌담이다. 자연스럽게 구부러지는 길을 따라 돌담도 같이 휘어지고 펴진다. 돌담 아래에는 알록달록한 백일홍이 한창이다. 좀처럼 보기 힘든 연분홍색 상사화, 주홍빛 능소화도 마지막 정열을 불태우고 있다.





전통가옥도 여러 채 만나게 된다. 살림을 하고 있는 집이 대부분이어서 조심스럽다. 낮은 담장 너머로 실례가 되지 않을 만큼만 즐긴다. 이곳 전통가옥들은 으리으리한 고대광실은 아니다. 외려 소박하고 정겨운 집들이다. 울안에 있는 감나무며 대추나무에는 가지가 휘어질 정도로 열매들이 실하게 달렸다. 마당에 널어놓은 고추는 따가운 햇볕과 바람에 잘 말라가고 있다. 한갓지고 평화로운 풍경이 계속되는 금당실 마을이다.


오미봉 기슭에 자리한 금곡 서원을 지나 금당실 송림 숲으로 든다. 잘 생긴 소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금당실 송림은 마을 숲으로 조성됐다고 한다. 금곡천 범람을 막고, 겨울철 북서풍을 막아주는 방풍림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금당실 솔둥지라고 부른다. 천연기념물 제469로 지정되었다. 소나무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가능한 느릿한 걸음으로 걷는다. 솔숲을 떠나기는 싫지만 갈 길이 남았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남기고 솔숲을 나온다.

예천권씨 초간종택 그리고 초간정


금당실 솔숲을 나와 다시 금곡천을 넘는다. 죽림리 들판을 지나면 예천권씨 초간공파 종택이 산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종택은 나지막한 산기슭 경사진 터에 자연스럽게 앉혔다. 조선 중기 문신인 초간 권문해(1534∼1591) 선생 할아버지가 지었다고 전해온다. 임진왜란 이전에 지은 주택은 드물어서 학술적 가치도 높다고 한다.


종택 영역으로 들어가서 처음 만나게 되는 건물이 예천권씨 초간종택 별당 건물이다. 축대를 한 단 쌓고 그 위에 앞면 4칸 옆면 2칸 팔작지붕 집을 앉혔다. 별당 왼쪽 뒤로 ‘ㅁ’자형 본채를 지어 연결했다. 별당 오른쪽 뒤에는 사당이 자리하고 있다. 별당 축대 앞 화단에는 지금은 소용없어진 맷돌 아래짝이 풀숲에 숨어 있다. 종택 건물은 국가민속문화재 제201호이고, 별당은 별도로 보물 제457호로 지정되어 있다.

종택을 떠나 나지막한 산들 사이로 이어지는 농로를 따라 초간정으로 향한다. 급할 것 없는 걸음이지만 혼자 걷다 보면 아무래도 빨라진다. 2.5km 정도 유유자적하고 나면 앞으로 소나무 숲이 보인다. 저 숲속 금곡 천변에 곱고 아름다운 정자 초간정이 있다.


초간정은 원림이자 정자 이름이다. 원림(園林)이란 자연을 거역하거나 훼손하지 않으면서 일부 공간에 집이나 정자를 배치한 것이다. 초간정은 금곡천이 살짝 돌아나가는 계곡 바위 위에 앉힌 정자다. 주변 잘 생긴 소나무들과 더불어 기막힌 풍치를 보여준다. 초간정 원림은 명승 제51호이고, 초간정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75호다.


초간정 원림은 조선 선조 때 학자인 초간 권문해(1534~1591) 선생이 만든 곳이다. 오랜 관직생활을 벗어나 고향에 돌아온 선생이 자연을 즐기기 위해지었다고 한다. 선생은 우리나라 최초 백과사전이라고 할 수 있는 ‘대동운부군옥’ 20권을 지은 분이다. 정자는 1582년(조선 선조 15년)에 처음 지었다. 이후 임진왜란으로 불에 탔고, 고쳐 지은 정자는 병자호란에 다시 불탔다. 지금 있는 건물은 1870년(고종 7년) 선생 후손들이 새로 지은 것이다.


초간정 정자에 먼저 오르고 나서, 정자 건너편 금곡천 계곡 언덕으로 나온다. 수려한 계곡과 늘씬한 소나무들이 바위 위에 앉은 초간정과 기막히게 어울렸다. 사진 몇 장 찍고 나서 소나무 밑 벤치에 자리 잡는다. 한참 동안 그곳 그림과 하나가 되었다.


▶︎걷는 시간

2시간 30분 (순 걷는 시간. 답사 시간, 쉬는 시간 등은 제외)

▶︎걷는 거리

8km / 편도형

▶︎걷기 순서

용문면 하금곡 버스정류장~병암정(0.7km) ~ 용문면사무소(2.7km) ~ 금당실 마을 ~ 금곡서원(3.5km) ~ 금당실 송림 ~ 예천 권씨 초간종택(5.2km) ~ 초간정(7.7km) ~ 용문면 원류(초간정) 버스정류장(8km)

▶︎코스 난이도

쉬움


▶︎화장실

병암정, 용문면사무소, 금당실 송림, 초간정

▶︎음식점 및 매점

상금곡리 버스정류장 부근 매점과 음식점. 용문면사무소 앞 매점. 상금2리 마을회관 부근 매점과 음식점.

▶︎숙박 업소

금당실마을 민박, 초간정 민박

▶︎교통편

- 찾아가기

: 예천시외버스터미널 근처 그랜드 모텔 앞에서 버스를 타고 병암정 근처 하금곡 버스정류장에서 내린다. 하루에 15회.

- 돌아오기

: 원류(초간정)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용문정류장에서 내린다. 하루 7회. 버스를 환승하여 예천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내린다. 하루 15회

- 주차장

: 병암정, 용문면사무소, 초간정

▶︎코스 문의

예천군 용문면사무소 054-655-8301 / 금당실 전통마을 054-654-2222

▶︎길 상세보기

글, 사진 : 김영록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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