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하동] 섬진강을 따라가는 '박경리 토지길 01코스'

2019-10 이 달의 추천길 2019-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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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연한 가을날

문학 속으로

박경리 토지길 01코스

박산하 여행작가

음 바르게 서면 세상이 다 보인다_박경리 작가의 시 <마음>의 한 구절이 오랫동안 잊히지 않는다. 경남 하동, 작가의 흔적이 남겨진 길을 걸으며 마음을 느끼고 세상을 보고 싶었다. 그 마음은 작가의 무수한 작품 안에 담겨 있었다.

박경리 선생이 <토지>를 집필한 기간은 25년. 소설을 통해 우리나라 역사를 일상의 삶 속에 녹여냈고, 틈틈이 쓴 시를 통해 자신이 걸어온 길을 나지막이 이야기했다. 삶을 담담하게 바라보는 법, 마음을 바로 세우는 법을 가을이 불어오는 길 위에서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가을엔 최선을 다해 걸어야 한다. 바람이 끌어주는 발걸음은 더없이 가볍다. 책 한 권 손에 들고 떠나는 길은 마음까지 넉넉해진다. 좋아하는 박경리 선생의 흔적을 만나러 가는 길, 설렘이 몇 배 크다. 박경리 선생이 태어난 통영, 대하소설 <토지>를 집필했던 원주 그리고 <토지>의 배경이 되었던 하동 등의 도시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그중 가을이면 황금빛 들판이 너울진다는 하동의 평사리로 향했다.

이번 여행엔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박경리 유고 시집을 골랐다. 소설가로도 유명하지만 ‘희망을 잃지 않았던 것을 어쩌면 남몰래 시를 썼기 때문인지 모른다.’라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틈틈이 시를 쓰며 소설을 이어나갈 힘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하동은 지리산과 섬진강, 남해를 품고 있는 도시다. 산과 강, 바다를 모두 가지고 있는 도시는 그 자체로도 풍성하다. 그중 섬진강을 따라 34㎞에 이르는 토지길이 나 있다. 소설 <토지>의 주 배경이 된 하동을 천천히 걸을 수 있는 코스다. 모든 구간에서 섬진강을 볼 수 있는 것이 특징인데, 2코스는 섬진강변을 따라 화개 장터로 향하는 길, 3코스는 십 리 벚꽃길에서 시작, 쌍계사를 지나 볼일폭포까지 이어진 길이다.

이번에 걸은 1코스는 최참판댁과 박경리문학관에서 시작해 조씨고가, 취간림을 지나 평사리 들판을 걸어 동정호에 이르는 길이다. 최참판댁에서 조씨고가로 가는 길은 작은 마을을 두루 지나는데 구불구불 언덕으로 이뤄진 시골길이다. 취간림부터 평사리 들판을 지나 동정호에 이르는 길은 악양천을 끼고 논 사이를 걷는 코스로 가슴이 탁 트이는 풍경이 펼쳐진다. 쉬고 싶을 땐 의자나 바위에 걸터앉아 박경리 선생의 시들을 마주하다 보면 또 나아갈 힘이 생긴다. 그렇게 약 11㎞에 이르는 4시간의 길을 가을볕과 바람, 시 구절로 조금씩 나아갔다.

소설 <토지>의 배경, 최참판댁의 가을 풍경




박경리 토지길 1코스는 최참판댁에서 시작한다. 대하소설 <토지>는 하동 평사리를 무대로 5대째 대지주였던 최참판댁과 그 소작인들의 이야기다. 동학농민운동부터 개항과 일본의 세력 강화, 갑오개혁 등 우리나라 근대사 속 민중의 삶을 그려내고 있다. 주인공 최서희를 중심으로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인물들이 각자의 개성으로 삶을 향해 나아가는 이야기를 인상 깊게 담은 소설로 책을 접하지 않았더라도 드라마로 만났을 터였다.

박경리 작가가 <토지>를 쓴 건 1969년. 25년 동안 책으로는 20권, 드라마로 3번이 방영되었다. 흑백 TV였던 시절, 1979년 KBS에서 처음으로 드라마로 제작되었다. 그 후 <명당> <미스터 선샤인> <궁합> 등 수많은 영화 드라마를 이곳에서 촬영을 했다. 최참판댁은 2001년 영화 드라마 세트장으로 만들어진 곳이다.

최참판댁

위치: 경남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전화번호: 055-880-2960

관람시간: 09:00~18:00

관람요금: 어른 2,000원/ 청소년 및 군인 1,500원/ 어린이 1.000원


하동의 만석꾼이었던 최참판댁은 집 자체도 웅장하며 단아하다. 지리산 능선에서도 완만한 자락 위에 자리한 마을은 섬진강 물줄기를 따라 넓은 평야를 앞마당 삼아 넉넉한 아름다움이 깃들여진 곳이다. 최참판댁에서 바라본 평사리의 들판은 바라보고 있어도 가슴이 탁 트일 정도로 드넓다.

이 평사리를 <토지>의 배경으로 삼은 까닭은 민족적으로 상처를 안고 있는 지리산과 우리 국토의 혈맥인 섬진강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또 통영 출신 작가가 경상도 방언을 잘 풀어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이 욕망으로 일그러졌을 때 진실은 눈멀고

해와 달이 없는 벌판 세상은 캄캄해질 것이다

<마음> 중

박경리문학관엔 선생이 생전에 썼던 재봉틀과 사전, 책상, 안경, 만년필 등 41점의 유품을 볼 수 있다. 작가가 썼던 오래되어 노랗게 변한 원고지 위 첩첩하게 들어선 글자들에서 마음의 진정성을 엿볼 수 있었다. 문학관 한 면에 걸려있는 <토지>의 등장인물의 세밀화가 꽤나 인상적이다. 인물의 성격이 훤히 드러나는 세세한 그림은 오래도록 보게 된다.

박경리 작가는 통영에서 태어났다. 통영에 가면 박경리기념관과 묘소가 자리한다. 통영의 좁은 골목을 따라 그가 남긴 글귀들을 읽을 수 있다. 그 후 토지를 집필한 건 원주, 원주엔 박경리 작가의 생가와 문학공원이 만들어져 있는데 이곳에서도 작가의 포근한 마음이 느껴진다.

마을과 마을을 잇는 소담한 길

박경리문학관을 나서 그 뒤로 이어진 토지길을 걷는다. 차가 다니기 좁은 시골길이 구불구불 이어진다. 입석마을을 지나 상신마을로 접어드니 1시간은 쉴 새 없이 걸어온 듯하다.




상신마을엔 조씨고가가 자리한다. 화사별서가 정식 명칭인 옛집은 조선 후기 상류층의 전통 가옥의 모습을 보여준다. 동네 사람들은 ‘조부자집’ ‘조씨고가’라고 불리는데 조선 태조, 정종, 태종 3대에 걸쳐 영의정으로 지낸 조준의 직계손 화사 조재희의 별서였던 곳이다. 조재희는 중앙의 세도 싸움에서 밀려났지만 하동에서는 쟁쟁한 세도가였다. 이런 연유로 소설 <토지> 최참판댁의 실제 모델이 되었다. 진짜 최참판댁을 만났다고 생각하니 대문 앞에서 설렜다. 동학농민운동과 6·25전쟁으로 불타 현재 안채와 사랑채만 덩그러니 남아있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정원엔 아직도 꽃나무 한 그루가 꽃을 떨구지 않은 채 꿋꿋하게 심어져 있다. 안채 마루엔 할아버지 두 분이 도란도란 말씀 중이셨다. “그땐 대단혔지. 여기보다 넓은 집은 없었어.” 마을의 버팀목이기도 했던 조씨고가를 여전히 소중히 여기시는 듯했다. 안채 뒤엔 녹차의 고장답게 자그마한 녹차밭이 소담하게 자리한다. 싱그러운 가을이다.




조씨고가를 나와 취간림으로 향하는 길. 악양천이 길 곁을 동행하며 발걸음이 더욱 신이 났다. 취간림에 들어서자 갑자기 깊은 숲으로 들어선 것 같은 짙은 풀 내음이 느껴진다. 둥치 두툼한 나무들이 진한 그늘을 만들고, 책을 펼치고 잠시 쉬어갈 여유가 생긴다.

‘기차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혹은 배를 타고 그런 여행은 아니었지만,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끼는

그런 여행은 아니었지만, 보다 은밀하게 내면으로 내면으로 촘촘하고 섬세했으며 다양하고 풍성했다’

<여행>

박경리 선생에게 여행은 다른 의미였다. 마음과 글로 끊임없이 여행을 하곤 했다. 머릿속에 <토지>의 배경지인 하동부터 도쿄, 만주 등 그 모든 곳이 여행지였던 것이었다. 길과 시집도 끝무렵으로 향해간다.

평사리의 황금빛 들판과 아담한 동정호



발걸음이 더없이 가볍다. 노랗게 물들어가는 벼 사이로 걷는 길은 따사로운 가을 볕 아래 호사다. 저 멀리 반기는 두 그루의 소나무인 부부송은 하동 사람들에겐 나침반과 같은 랜드마크나 마찬가지다. 부부송이 가까워질 때마다 마지막 코스인 동정호가 가까워짐이 느껴진다.



동정호는 물빛이 그윽하다. 오래된 역사를 지닌 호수는 백제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의자왕 20년( 660년) 나당 연합군이 백제를 침략할 때 당나라 소정방이 이곳에 와 당나라의 동정호와 비슷하다 해 ‘동정호’라 불렀다고 전한다. 동정호는 두꺼비 보호 지역으로 호수 둘레 1㎞을 산책할 수 있다. 호수 한 바퀴를 도는 것으로 코스를 마무리한다.



악양루에서 잠시 쉬었다 다시 걸음을 옮기니, 뜻밖의 선물처럼 바람에 한들거리는 핑크 뮬리가 심어져 있다. 수놓는 듯 글을 썼다는 박경리 선생의 마음을 따라, 오랜 시간 동안 담담하게 글을 썼다는 그 변함없는 마음을 따라 걸었던 하루였다. 소설을 완성할 땐 엄숙한 모습으로, 시를 쓸 땐 물 흐르듯 써 내려갔던 작가의 만년필을 오래도록 생각하게 되는 완연한 가을날이다.


▶︎걷는 시간

3시간

▶︎걷는 거리

11km

▶︎걷기 순서

최참판댁입구-최참판댁-조씨고가-취간림-평사리들판-부부송-동정호-악양루

▶︎코스 난이도

보통


▶︎걷기 TIP

- 논밭을 지나는 길이 많이 있습니다. 그늘이 없으니 모자와 물을 준비하세요.

- 인적이 드문 시골길이 있으니 누군가와 동행하세요.

- 최참판댁과 박경리문학관 등을 들르다 보면 시간이 늘어납니다. 너무 늦지 않게, 넉넉하게 시간을 잡고 출발하세요.

▶︎화장실

최참판댁, 취간림

▶︎음식점 및 매점

최참판댁 근처에서 음식점과 카페 등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교통편

하동 시외 버스터미널에서 하동-쌍계사, 하동-의신, 하동-범왕 등 버스 탑승, 16개 정류장 이동 후 최참판댁 하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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