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중구] 드라마 도깨비 촬영지 '인천둘레길 11코스'

2019-11 이 달의 추천길 2019-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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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도깨비 촬영지,

사람과 예술이 담긴 길

'인천둘레길 11코스'

이채빈 여행작가



든 게 용서되는 계절이 있다면 가을이 아닐까 싶다. 딱 좋은 온도와 습도, 적당하다는 말이 딱 맞을 만큼의 햇빛과 바람. 날씨 참 좋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모두가 사랑하는 계절 가을.

친구들로부터 “집 밖으로 좀 나와. 혹시 너 아담(사이버 가수)이야?”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집순이인 나조차도 헐렁한 티셔츠, 재킷을 걸치고 제법 닳은 스니커즈를 신고 집 밖으로 나오는 계절인 가을이 왔다.

날이 유난히 좋았던 날. 침대에 누워 사람들은 뭘 하고 사나 SNS를 둘러보다 친구의 연락을 받았다.

‘트렌치코트를 입는 것도 눈치 싸움이야’라는 친구의 연락.

가을은 유난히 짧고, 이 계절은 기다려주지 않는다고. 날 좋은 날의 특권인 트렌치코트는 조금 있으면 뒷방 옷장에 갇힐 신세라고.

어쩐지 이 시간이 너무나 아까워져 옷을 챙겨 입고 가까운 인천으로 떠났다.

길의 시작은 사람으로부터


 

아뿔싸. 시작부터 예감이 좋지 않았다. 출발 전 갈증 때문에 잔뜩 마셨던 물 때문인지 화장실이 급했는데, 개찰구에서 카드를 찍고 나오니 개찰구 밖에는 화장실이 없었다. ‘이럴 거면 전 역에 내려서 화장실부터 다녀올걸’하고 후회를 해도 이미 지나버린 시간. 지나가다 보이면 가야지라는 마음으로 역에서 50m쯤 걸었을까, 또다시 안 일했다는 생각과 함께 급하게 지도 어플을 켜서 주변 카페를 살펴본다.

신호등을 건너서 몇 십 미터 앞, 핀에 찍힌 곳으로 걸어가다 보니 그전에 나오는 카페. 부랴부랴 들어가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하고 카드를 내미니, 아직 가오픈 기간이라 카드기가 없다며 “오늘은 무료로 드릴게요. 다음에 찾아주세요!”라는 주인분의 말씀. 생각지도 못한 공짜 커피를 받게 된 것도 죄송한 마당에 염치없이 화장실을 물으니 귀여운 아이 두 명이 근처 공용 화장실로 데려다줬다.

시원하게 속을 비우고 나와 민망한 마음 반, 감사한 마음 반을 담아 감사하다 인사를 하니 주인분의 말씀.

“괜찮아요. 다음에 또 방문해주세요. ”

아, 이 동네에 다시 올 이유가 시작부터 생겨버렸다.

삶의 흔적이 켜켜이 쌓여온 길




보통 도보 여행이라면 푸릇푸릇 한 자연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대한민국의 걷기 좋은 길들을 꽤나 걸어봤다 자부하는 나도 지금껏 걸어왔던 길들은 대부분 울창한 숲이나, 호숫가를 둘러싼 길 그러니까 숲속의 맑은 공기를 마시거나 탁 트인 바다나 호수를 보며 자연 생태 지를 걷는 게 도보 여행이라는 생각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번 여행은 그 시작부터 달랐다. 낡은 간판이 늘어져있는 길. 길 건너편엔 청과물 시장이 있다는 걸 알리는 빛바랜 간판이 보였다.

노랗게 물들어가는 은행나무 아래의 버스 정류장. 사람들이 줄지어 버스에 올라타는 모습을 보며 앞으로 나아가니 작은 골목 어귀가 나왔고, 우뚝 솟은 표지판이 새천년로 5번 길을 알려주고 있었다.

골목을 따라 걸어가니 언뜻 봐도 연식이 30년은 훌쩍 넘어 보이는 집들이 야무지게 늘어져있다. 어쩐지 도로명과는 선뜻 어울리지 않는 이 골목이 왜 ‘새천년로’가 된 걸까. ‘새천년엔 동네 사람들이 더 잘 살길, 동네가 더 부흥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지었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검색을 해봤더니 '새천년에 모든것을 이룩하라’라는 상징적인 의미로 지어졌다고 했다.

꽤나 비슷한 답변을 내놓은 스스로의 추리력에 만족하며 계속해서 걸었다.

마음을 데우며 걷는 길


우각로 문화마을에 접어들면 '미세스 캅'의 촬영지였던 현대 슈퍼 사거리, 그러니까 현대 슈퍼가 길의 안내자처럼 맞이해준다. 그리고 이곳이 드라마 미세스 캅과 보이스의 촬영지였다는 표지판이 자랑스럽게 세워져있다. 수사물, 스릴러물의 촬영지라면 음침하고 꽤나 무서울 거라는 편견이 우스울 만큼 거리는 따뜻하고 정겨웠다.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는 할머니들, 햇볕을 쬐며 산책을 하는 노부부, 종종걸음으로 걸어가는 아이들, 주렁주렁 열려 탐스럽게 익어가는 감나무까지 바쁘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이곳만 안단테의 속도로 흘러가는 것 같았다.





 

알록달록한 빛깔의 집들을 지나고 나니 인천 세무서가 보였다. 길의 1/3즈음을 걸었다.

아! 완연한 가을. 왜 이제서야 이 길을 알았는지, 왜 이제서야 이 길을 걸었는지 스스로를 책망하며 가을을 느꼈다.


지금껏 지나치며 봐왔던 모든 가게의 간판들과 길의 풍경에 쏙 빠졌지만, 유난히 마음에 들었던 ‘세영 유통’. 그 앞에 앉아 사진을 남겼다. 빛이 바랜 간판, 따스한 햇살, 내가 사진을 찍고 있다는 걸 알고 가던 길을 멈춰주던 노부부. 눈에 담기는 모든 것들이 따스히 마음에 와닿는다.


걷다 보니 작은 초가집 모형이 보였다. 따스하고, 삶의 내음이 잔뜩 풍기는 이 동네와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인천둘레길 11코스를 잘 따라 걷고 있다는 증거.


반쯤 걸었을까, 이번 길에서 가장 보고 싶었던 드라마 도깨비 촬영지 ‘한미 서점’을 가기 위해 걸음에 속도를 높이던 중 파란 간판과 천막으로 눈을 사로잡는 카페가 있었다. 홀린 듯이 가게 앞으로 걸어가니 ‘자화상,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는 전시가 진행 중이었다.


전문적으로 ‘잘’그린 그림은 아니지만, 안으로 들어가니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들이 그린 그들의 자화상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중 내 발길을 가장 오랫동안 머물게 한 자기소개서.

“맏며느리 아닌 맏며느리로, 맏딸로 바쁘게 살아가고 삶의 여유를 찾기 위해 나를 그려본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나를 온전한 나로 살아가게 하는 건 꼭 커다랗고 대단한 일이 아니라는 것. 하지만 그 커다랗고 대단치 못한 일은 나를 온전한 나로, 그래서 더 크고 대단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 줄 수 있다는 것.

작지만 많은 생각이 드는 전시회를 뒤로하고, 길을 걸었다.


헌책방 거리로 걸어가니 제일 먼저 도깨비의 촬영지였던 한미 서점이 보였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그 서점이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내 사랑을 지울 수 있을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날 기억하지 못할 거란 사실을 알면서, 그리고 내가 죽을 거란 사실을 알면서도 그 사람을 위해 날 던질 수 있을까. 그리고 내 삶에서 그런 불나방 같은 사랑이 찾아올 수 있을까. 드라마 때문에 괜히 센티해진 것 같지만 괜한 생각이 오가는 길이었다.

 





배다리 역사 문화 마을을 따라서는 플리마켓이 열렸다. 플리마켓은 길의 끝까지 이어져 있었다. 주민들이 직접 만든 수제품들이 잔뜩 늘어진 길. 이곳에서 살아 숨 쉬는 사람들의 손길이 간 제품들이 꽤나 매력적이어서 몇 번을 멈춰서 구경을 했다. 예쁜 팔찌, 직접 만든 청과 인형들. 발길을 자꾸만 멈추게 하는 길이다.

이제야 이 길이 다 끝났구나. 휴. 더는 내 발길을 멈추는 곳이 없겠구나 싶었는데 웬걸, 골목 어귀에 있는 카페엔 사이좋아 보이는 부자가 책을 읽고 있고, 구석구석 잘 숨어있는 카페엔 사람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다. 꽤나 많은 사람들이 모인 걸 봐서는 토론을 하는 작은 모임 같아 보였다.

“아, 저 모임에 끼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며 발걸음을 또 옮겨본다.





다시금 골목이다. 또 따뜻한 기운이 몸을 감싼다. 따뜻한 햇볕 아래 바싹 마르고 있는 빨래들, 빛을 반사하는 나무들, 아름다운 시간.



이제 길이 거의 끝났다. 동네 주민들이 자주 찾는 것 같은 길이 나왔다. 작은 놀이터. 잘 꾸며진 산책로. 인라인을 탈 수 있는 스케이트장도 보였다. 중간중간 잘 꾸며진 쉼터들이 있었고, 한 할아버지가 핸드폰으로 영어 공부를 하고 계시는 모습이 보였다.

삶을 공부하는 그 모습이 어찌나 멋져 보였는지. 또 한 번 걸음을 멈춰서 그 모습을 한참을 바라보다 내려왔다.



조금 더 사람 내음을 맡으며 길을 걷다 보니 5.2km의 길이 끝이 났다. 길을 걷는다라는 말보다, 길을 느꼈다는 게 더 잘 맞는 것 같은 길이었다. 길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걸음걸음에 삶의 향이 잔뜩 풍겼다. 완주라고 할 것도 없지만 완주를 하고 나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참 등잔 밑이 어두운 사람이구나.

‘등잔 밑이 어둡다’라는 말이 있다. 가까이 있는 것일수록 더 보지 못한다는 말.

나는 종종 나의 등잔 밑을 돌아보지 못했다. 사랑하는 가족, 막역한 친구들 같은 것들. ‘우리 사이에 무슨 말이 필요해?’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꽤나 오랫동안, 그리고 무심코 나의 등잔 밑을 바라보지 못했던 것 같다.

조금 웃긴 말일지도 모르지만, 이번 길을 걸으며 나는 나의 등잔 밑을 떠올렸다. 서울 근교 인천을 여행하며, ‘이렇게 가까운 곳에 이렇게 좋은 곳이 있다니?’라는 생각을 하다 보니, 나의 가까운 사람들이 떠올랐다. 오히려 너무 가까워서 그 진가를 잊고 살던 것들.

올가을, 나는 나의 등잔 밑을 걸었으니 나의 등잔 밑을 챙겨 볼 생각이다. 더 따뜻하고, 더 인간미 넘치게 또 행복하게, 나의 사람들을 챙기며 다가올 추운 겨울을 잘 맞이해 볼 생각이다.


▶︎걷는 시간

2시간

▶︎걷는 거리

5.2km

▶︎걷기 순서

도원역 - 우각로문화마을 구 전도관 – 인천세무서 – 금창동주민센터 – 창영초등학교 – 배다리 헌책방거리 – 송현근린공원 –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 - 동인천역

▶︎코스 난이도

어려움


▶︎화장실

도원역, 금창동 주민센터, 송현근린공원

▶︎음식점 및 매점

세영유통, 현대슈퍼, 세븐일레븐 편의점

▶︎교통편

지하철 서울 1호선 도원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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