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마포] 서울의 발자취가 담긴 서울 하늘공원 '마포난지생명길 1코스'

2019-12 이 달의 추천길 2019-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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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발자취가 담긴

희망을 주는 길목

'마포난지생명길 1코스'

이채빈 여행작가



숨에 들어오는 공기가 참으로 차다. 며칠 전만 해도 얇은 재킷 하나만 입고도 충분했던 것 같은데 요즘엔 내 몸에다 테트리스를 하듯이 옷을 차곡차곡 껴입는다. 바지 안에는 레깅스, 니트 안에는 티셔츠, 코트를 입고도 추우면 안에 경량 패딩 한 겹 더 껴입기. 갓 스물이 되었을 땐 추운 겨울에도 살색 스타킹에 짧은 치마를 입고도 잘만 쏘다녔던 것 같은데 지금의 나에게 패션은 ‘멋’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가 되어버렸다.

때문인지 언제부턴가 나에게 겨울은 도피의 계절이 되어버렸다. 한파가 찾아오기 전에 동남아로 떠나서 돌아오지 않는다던가, 웬만큼 중요한 약속이 아니면 잡지 않는다던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한 해를 마무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추위를 호환마마보다 무서워하는 나로선 내 ‘생존권’을 지켜내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포장마차에서 먹는 뜨끈한 국물과 소주, 친구들과 떠나는 스키장 여행, 호호 불어가며 먹는 호떡, 붕어빵과 같은 겨울과 관련된 모든 것들과 멀어졌는데, 문득 내 선택임에도 불구하고 겨울에만 느낄 수 있는 낭만을 모조리 뺏긴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올해는 이 추위를 온몸으로 맞이해 보겠다고. 황홀한 불빛으로 수놓아진 서울의 거리도 걸어보고, 포장마차를 찾아가 뜨거운 국물로 속도 데워보고, 주머니 속에 현금을 넣고 다니며 붕어빵도 사 먹어 보겠다고.

“올해부턴 이열치열이 아니라 이냉치냉이다!”

소울 있는 서울의 길



며칠간 코와 귀가 똑떨어질 만큼 춥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날이 풀렸다. 화창한 날씨와 따스한 햇볕,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경쾌한 음악. 삼박자가 잘 어우러져 들뜬 발걸음을 더더욱 들뜨게 만든다.

월드컵 경기장 역으로 나오니 함성 소리가 제법 크게 들린다. 서울 FC의 경기가 있는 날인지 평소보다 훨씬 많은 인파가 월드컵 경기장을 채우고 있었다.

월드컵 공원으로 향하는 길목엔 나들이 가는 가족들, 데이트하는 커플들,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놀러 나온 아이들이 참으로 많았다. 햇살 좋은 주말에 나들이를 나오는 사람들이라니. 이런 주말엔 넷플릭스와 배달음식, 잠옷이 기본인 나에겐 꽤나 충격적이고 신기한 광경이다. 유니콘을 실제로 본 기분이랄까. 늘 바쁜 서울의 삶 속에서 멋진 쉼표를 찍을 줄 아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참으로 낭만적이다.




서울 살이도 햇수로 7년이 다 되어가는데, 월드컵 공원은 처음이었다. 어디든 여행을 떠난다면 그 도시에서 가장 큰 공원에 가보는 걸 좋아하는데, 정작 내가 사는 도시의 공원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니. 역시 여행자와 현지인의 차이인 걸까. 심지어 늦가을의 억새와 흐드러진 나무들은 전 세계 그 어떤 공원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멋진 풍경이었다.


벤치에 앉아 음악을 듣고, 자전거를 타고, 손을 잡고 길을 거니는 사람들을 지나쳐 하늘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또 하나의 징검다리를 건너고, 아직 붉은빛을 뽐내는 단풍나무들 사이를 지나다 보면 나무로 만든 월드컵 육교가 나온다.

월드컵공원 육교를 건너면 일명 하늘계단이라 불리는 291개의 계단이 나오는데, 여기서부터가 하늘공원의 시작이다.

희망을 주는 길목에서




난지도는 본래 난꽃이 자라던 아름다운 섬이었다고 한다. 그 아름다운 섬은 1977년 제방이 만들어지면서 산업폐기물과 쓰레기를 가져다 버리는 쓰레기 매립장으로 변모하게 되었는데, 그 양이 무려 9200만 톤, 95m 높이의 쓰레기 산이 두 개나 되었다고 했다.

그 후 심각한 환경 오염과 생태계 파괴를 우려해 1993년부터 쓰레기 반입을 중단했고, 현재는 그 쓰레기 산을 되살려 동쪽 봉우리는 하늘공원, 서쪽 봉우리는 노을공원으로 완전히 탈바꿈했다.





이 멋진 생태공원을 거닐며 그 과거를 떠올리니, 문득 전후의 한국과 난지도가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민 지배와 내전의 아픔을 딛고 일어나 강국이 된 한국과 쓰레기 매립지라는 오명을 벗어내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생태공원이 된 난지도.

언젠가 내 삶에도 힘든 일이 닥쳐오는 날이 찾아온다면, 그때 이 멋진 공원과 사랑하는 국가를 떠올려야겠다. 한 나라가, 그리고 하나의 공원이 귀감과 희망이 될 수 있다니. 참으로 멋진 일이다.



하늘공원에서 내려와 노을공원으로 가는 길목에선 메타세콰이어가 사람들을 반긴다. 울긋불긋하고 울창한 나무들이 마치 도심 속 작은 숲 같다. 힐링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잘 어울리는 곳이 있다니. 왜 진작 오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밀물처럼 밀려온다. 모든 계절을 다 걸어보고 싶은 길. 다음 계절이 기대되고 또 다음 계절이 기대되는 참으로 아름다운 길이다. 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초겨울의 바람마저 산뜻하고 시원하다.

이 여유를 조금 더 즐기고 싶지만, 해가 빨리 저무는 겨울이니만큼 아쉬운 발걸음을 재촉해본다.



오르막길을 걷고 또 걸어 마포 난지 생명길의 세 번째 공원, 노을공원에 도착했다. 탁 트인 잔디밭과 잘 조경된 나무들, 멋진 조각품 그리고 그 속에 어우러진 사람들. 한걸음 한걸음 옮길 때마다 여유가 채워진다.


매점에서 산 음료를 들고 전망대로 갔다. 저 멀리 보이는 한강과 도심이 꽤나 근사하다. 눈부시게 저물어가는 노을에 괜스레 코끝이 찡해진다. “나 요즘 나이 들었나 봐.. 별것도 아닌 거에 자꾸만 눈물이 나려 그래..”라는 친구 수현의 말에 매번 “주책이야 진짜.”라며 무시로 일관했던 나인데, 어쩐지 수현의 말이 이해되는 순간이다. 이렇게나 아름다운 도시에 내가 살고 있었구나. 새삼 익숙했던 서울이 새롭게 느껴진다.



네 번째 공원인 난지천공원에 들어섰다. 하늘 공원이 산책과 데이트를 위한 곳이고, 노을 공원이 노을 감상과 캠핑을 위한 곳이라면 난지천 공원은 정말 근처에 살고 있는 시민들을 위한 공원 같은 느낌이 꽤 강하게 들었다.

가을바람에 떨어진 낙엽이 밟히는, 가을 향이 잔뜩 묻어나는 길을 걸으며 아까 노을 공원에서 봤던 노을을 떠올려 본다. 음원 사이트에 들어가 서울을 검색해본다. 서울을 주제로 한 노래들이 우수수 쏟아진다. 사랑스럽기도, 외롭기도, 슬프기도, 희망차기도 한 곡들. 걸음걸음에 삶이 담긴다.

 

마포 난지생명길 1코스의 마지막 구간인 야트막한 도심 속의 산인 매봉산. 얼마 오르지 않았음에도 자동차가 지나다니는 도시와 확연히 다른 공기에 역시 산은 산이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슬슬 어둑해지려는 하늘을 보며 위로, 더 위로 올라가다 보니 금세 전망대가 나오고 정상이 나온다.

얼마 오르지도 않은 것 같은데 내려다보이는 풍경이 꽤나 근사하다.

산에서 내려오니 5시간 만에 끝나지 않을 것 같던 14.4km의 길이 끝이 났다. 익숙한 도시의 재발견. 늘 바쁘고 어지러운 서울 생활에 휴식 같은 시간이 아니었을까. 참으로 쉼표 같은 길이었다. 고개를 들면 파란 하늘이, 좌우를 살피면 늘어진 나무들이, 아래를 내려다보면 멋진 도심의 풍경이 길을 빼곡히 채워줬다.


삶이 언제나 봄 가을처럼 맑으면 좋으련만, 그럴 수 없다는 걸 안다. 뭐든 내 마음대로 될 것 같았던 어린 나이를 벗어나니, 밥상의 반찬조차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걸 서서히 받아들여가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동시에, 겨울이 지나면 봄은 온다는 것 또한 배워가고 있다.

한때 쓰레기 매립지였던 난지도가 생태공원으로 바뀌고, 식민 지배와 내전이 끝난 후 황폐했던 한국이 눈부시게 발전을 했듯이, 우리도 살면서 다가오는 시련들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며 그 경험을 토대로 더 강한 사람이 될 것이라 믿는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듯, 삶에도 언제나 봄날은 돌고 돌아올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걷는 시간

4시간

▶︎걷는 거리

약 14.4km

▶︎걷기 순서

월드컵경기장역→월드컵공원전시관→평화의공원→서울에너지드림센터→하늘공원→자원순환테마전시관→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노을공원→ 난지천공원→매봉산→월드컵경기장역

▶︎코스 난이도

보통


▶︎화장실

월드컵공원 전시관, 에너지드림센터, 자원순환테마 전시관, 노을공원 화장실 등 이용

▶︎음식점 및 매점

곳곳에 매점 및 편의점이 있음

▶︎교통편

지하철 6호선 월드컵 경기장 역 2번 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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