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중구] 먹거리와 즐길거리가 풍부한 걷기여행, '인천둘레길 12코스'

2020-02 이 달의 추천길 2020-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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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방 투어야?

역사 기행이야?

'인천둘레길 12코스'

김정흠 여행작가


디찬 시베리아 기단이 한반도를 주기적으로 휩쓰는 겨울의 어느 주말. 아무리 추워도 집에만 있을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문득 머리를 스쳤다. 온몸을 연결하는 관절 마디마디마다 답답함을 호소하기에 이르렀던 탓이다. 집과 사무실만을 오가는 생활은 물론, 주말엔 집구석에 틀어박혀 영화만 보고 있으니 당연히 그럴 만도 했다. 친구들을 소집했다. 선발 기준은 이 겨울을 나처럼 집에서만 견뎌내고 있을 것만 같은 방구석 점령자들. 운동이 아닌, 식도락 나들이를 하러 나가는 것이라는 감언이설로 친구들을 꼬드겼고, 결국 설득에 성공했다.




우리가 탐험에 나설 곳은 인천둘레길 12코스였다. 적당히 오르막과 내리막이 공존하고, 길을 따라 먹거리와 볼거리도 가득하다는 점이 선정 이유. 친구들에게 말했다. "우리는 5km 남짓의 길을 걷는 게 아니야. 5km에 걸쳐 펼쳐져 있는 식도락 거리를 걸으며, 그 길 위에 있는 음식을 모조리 휩쓰는 먹방 원정대인 거지." 친구들은 환호했다. 그래, 이렇게라도 밖에 나가게 된다면야. 파업을 일삼던 관절들도, 심심해하던 입안 미각들도 활기를 되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인천둘레길 12코스는 그 목적에 가장 알맞은 길이었다.




우리는 아침도 거른 채 만났다. 만나자마자 배고프다는 말부터 나오는 건 당연했다. 동인천역 바로 앞에 있는 송현동 순대골목으로 향했다. 동인천역의 이름이 축현역이었던 시절 혹은 그 이전부터 이 길을 오갔던 사람들이 뜨끈한 국밥 한 그릇으로 허기를 채웠다는 곳이다. 여전히 여러 식당이 뜨끈한 김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냥 넘어가기에는 너무 아쉽지 아니한가. 그렇게 우리는 국밥 한 그릇씩을 가뿐히 해치웠다. 인천둘레길 12코스 먹방 투어의 서막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웨딩가구거리를 지났다. 낡은 건물이 많은 길이었지만, 그 사이사이 레트로한 감성의 펍이나 카페, 식당도 심심찮게 자리하고 있었다. 과거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랄까. 오전 시간대여서인지 문을 열지 않았다는 사실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인천 지역에서 처음으로 문을 열었다는 천주교회 '답동성당'도 둘러봤다. 아직 남아 있는 크리스마스트리가 왠지 모르게 정겨웠다. 인천둘레길 표지를 따라 걷고 걸었다. 신포국제시장이 보이기 시작했고, 일찌감치 문을 연 닭강정 집의 매콤 달콤한 향이 길 건너까지 퍼지고 있었다.


신포국제시장의 역사는 꽤 길다. 인천항이 문을 연 뒤, 인천에 들어온 외국인들을 상대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 장사를 했던 것이 그 시작이다. 물류가 오가는 중심지였던 터라 외국의 물건들이 쉽게 들어오기도, 나가기도 했단다. 외국의 음식들도 쉽게 접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이다. 예전만큼은 아닐 테지만 지금도 공갈빵, 중국식 만두 등 중국 전통 음식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매장들이 그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신포 닭강정과 신포 만두 등등 시장의 역사만큼이나 유명한 맛집들도 여전히 성업 중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어느 음식을 맛볼 것인지를 결정하기만 하면 됐다. 그게 제일 어려운 일이었지만. 우리의 선택은 두 가지였다. 우선 그 유명하다는 신포 닭강정, 그리고 산동 만두.


신포 닭강정은 오랫동안 바삭함이 살아있는 치킨 요리를 만들기 위한 주인장의 고민 끝에 탄생한 음식으로, 신포국제시장 최고의 스타다. 언제나 많은 인파가 몰리는 곳인데, 이제 막 문을 열었는지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신포 닭강정이 처음이라는 두 친구는 연신 엄지를 들어 올렸다. 매콤 달콤한 맛과 바삭한 식감이 어우러지는 조화가 훌륭했다.


신포 닭강정을 나온 직후 우리는 곧장 산동 만두로 직행했다. 중국인인 주인장이 직접 산동 스타일로 빚어내는 고기만두와 공갈빵 등을 판매하는데, 예부터 방송에 꽤 많이 등장했던 곳이란다. 불과 10분 전까지 신포 닭강정에서 닭 한 마리를 먹어 치운 친구들은 이곳에서도 만두 한 상자를 가볍게 해결했다. "어차피 걸을 테니까. 다 소화가 될 거야."라는 말을 남기고서.



신포국제시장을 빠져나온 뒤에는 자유공원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개화기 시절에 세워진 것처럼 보이는 건물들이 눈에 띄었다. 홍예문과 같은 근대문화유산도 등장했다. 인천 앞바다가 잘 내려다보이는 저택 중 몇 군데는 개화기 때 외국인들이 살았던 곳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을 따라 인천의 개항기 시절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이 고스란히 느껴지고 있었다. 자유공원 꼭대기에 올라 인천 앞바다 쪽으로 펼쳐지는 풍경을 감상한 뒤, 다시 길을 내려왔다.


드라마 '도깨비'의 촬영지로도 알려진 제물포구락부는 개항기 당시 국내 거주 외국인들의 사교 모임 장소였단다. 그도 그럴 것이 파티가 열리면 좋을 것 같은 내부 구조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말은 필요 없었다. 우리는 마치 외국의 한 파티장에 온 것처럼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기 시작했다. 스툴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고, 당시 이곳에 어떤 이들이 드나들었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장식품들도 감상했다.


"이제 차이나타운에 들어설 차례야." 어느새 가이드 역할을 하고 있는 내가 말했다. 차이나타운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짜장면 박물관을 빼놓을 수 없었다. 짜장면 박물관은 우리나라 최초의 짜장면을 만들었다는 '공화춘'의 옛 건물을 리모델링해 만든 박물관이다(지금의 공화춘과는 관련이 없다). 인천에서 짜장면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어떤 사람들이 즐겨 찾았는지, 짜장면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지금까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등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해주는 공간이다. 옛 공화춘 주방의 모습, 영업 중일 때 사용했던 현판 등도 찾아볼 수 있었다. 한 바퀴를 돌고 난 후에는 나도 모르게 짜장면이 당겼지만, 잠시 아껴두기로 했다. 일찌감치 인천둘레길 12코스의 대단원을 장식하기 위한 메뉴로 선정해 두었기에.





차이나타운은 여느 때처럼 활기가 넘쳐났다. 중화요리 전문점이 줄지어 서서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거대한 건물은 마치 중국에서나 볼 수 있음 직한 형태였다. 탕후루와 카스텔라, 공갈빵 등 중국이나 대만 등지에서 명성을 얻었던 디저트들도 가득했다. 차이나타운에 거주하고 있는 중국인들이 종종 찾는다는 도교 사원 ‘의선당’과 중국 느낌으로 단장한 중앙 계단 등이 눈에 띄었다.


우리는 모두 인천둘레길 12코스가 품은 다양한 풍경에 놀라고 있었다. 송월동 동화마을에 들어서자 놀라움은 더해져만 갔다. 이름처럼 동화 속 한가운데에 들어서는 듯한 느낌이 가득했다. 어릴 적에 보았던 여러 캐릭터가 인사를 건넸고, 우리 또한 반가운 마음에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다음 목적지로 향해야 한다는 사실은 잊은 채, 동화 속 세상을 한참이나 누볐다.


"이제 슬슬 다시 허기가 돌지?" 내가 물었다. "응, 이번엔 어떤 걸 먹으러 갈 거야?" 친구들은 여전히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다음 메뉴를 기대했다. 인천둘레길 12코스에서 잠시 벗어나기로 했다. 친구들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곳이 있어서였다. 인천 중구청을 중심으로 펼쳐져 있는 개항누리길이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과 중국 상인들이 모여 살았던 이곳에는 지금도 당시의 건축물이 꽤 많이 남아 있다.



팥을 주제로 여러 디저트 메뉴를 제공해주는, 카페 '팟알'에 들어섰다. 오래된 목조 건물은 인테리어마저 고풍스러웠다. 개항누리길 분위기와 왠지 모르게 맞아떨어지는 이곳은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건물이다. 1890년대 일본의 하역회사가 들어서 있던 건물이 지금껏 그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조선인 직원이었던 이들의 낙서가 곳곳에서 발견된다고.



카페를 슬쩍 둘러본 후, 우리는 추위를 좀 가시기 위해 팥죽과 유자차 등을 주문했다. 낡은 창문에서 햇볕이 새어 들어왔고, 팥죽은 따스했다.




개항누리길에 있는 몇 가지 박물관과 전시관을 더 방문했다. 근대건축전시관에서는 인천 곳곳에 있는 여러 근대 건축물의 모형을 볼 수 있었고, 인천개항 박물관에서는 개항 시기와 맞물리는 여러 유적의 모형을 만났다. 당시의 이야기를 들으며 인천의 옛 모습을 상상해보기도 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은 최근 문을 열었다는 한국 근대문학관이었다. 어두웠던 시기를 다독이거나, 비판하거나, 희망을 전했던 문인들이 차례로 소개된 전시는 왠지 모를 감동으로 이어졌다. 이곳에서 한참을 울고 웃었다.





또 하나의 '도깨비' 촬영지인 인천아트플랫폼을 지나 다시 차이나타운으로 향했다. 지치지도 않았는지, 아니면 배가 고팠는지 모두 잰걸음이었다. 마지막 만찬이 그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발걸음을 재촉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차이나타운에 쭉 늘어선 중화요리 전문점 중 하나를 골라 들어갔다. 짜장면과 찹쌀탕수육, 그리고 하얀 짬뽕이 우리의 선택지. 차이나타운답게 약간 대기를 해야 했지만, 이내 자리가 났다. "이제 짜장면이 단순한 짜장면으로 보이지 않아." 친구 M이 말했다. "그렇지. 왠지 우리나라 근대사의 한 중심축을 본 것 같다고 해야 하나." 내가 거들었다. "너무 개똥철학 아니야?" C가 초를 쳤고, 우리는 웃음을 터뜨렸다. 아무렴 어떠랴. 이제 우리에게 짜장면은 단순히 한 끼 때울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다. 서민과 노동자들에게 오랜 세월 사랑을 받아온, 역사와 문화 그리고 시대의 산물인 셈이지 않은가.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마지막 만찬의 마지막 디저트로는 차이나타운 거리에서 팔고 있는 탕후루가 선정되었다. 최근 인기 있는 디저트이기도 하고, 온종일 무거운 음식만 먹어서인지 가벼운 디저트를 즐기고 싶기도 했다. 사이좋게 탕후루를 하나씩 입에 물고, 인천둘레길 12코스의 마지막 장소로 향했다. 우리의 도보 여행. 아니, 먹방 여행은 그렇게 끝을 맺었다.


▶︎걷는 시간

2시간

▶︎거리

5km

▶︎걷기 순서

동인천역~답동성당~신포국제시장~홍예문~자유공원~차이나타운~송월동동화마을~제물포구락부~한국근대문학관~인천아트플랫폼~인천역

▶︎코스 난이도

쉬움


▶︎화장실

신포시장, 동인천역 등 화장실 4개소 및 자유공원 간이화장실

▶︎음식점 및 매점

동인천역, 인천역, 신포국제시장, 자유공원 일대 등 다수

▶︎교통편

- 간선 4, 6­1, 22, 24, 28, 29, 112, 306, 307 이용 지선 506번 버스 타고 동인천역 북광장 하차

- 전철 1호선 동인천역 4번 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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