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화천] 잠시 숨어버리고 싶을 때, 비수구미생태길

2020-08 이 달의 추천길 2020-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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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숨어버리고 싶을 때

비수구미생태길

여행작가 김정흠


근 몇 주는 단 하루도 쉬지 못했다. 친구 하나는 나더러 넋이 나가 있는 것 같다고도 했다. 일이 몰려들었고, 이사를 해야 했으며, 미뤄두었던 회의가 물밀 듯이 밀려왔다. 그러는 와중에 교통사고 당했으니 그렇게 보이지 않는 게 더 이상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에게 "이번 일만 끝나면 잠시 사라질 거야."라고 버릇처럼 말했다. 그렇게 며칠이 더 흘렀고, 겨우 시간이 났다.

그간 마음에 두었던 곳, 비수구미로 떠나기에 이보다 더 좋은 시간은 없었다.



불과 이틀 전까지만 해도 비가 쏟아져 걱정했는데 다행히 날이 개었다. 비구름은 온데간데 없었다. 그저 화창한 날씨가 나를 맞아주고 있을 뿐이었다. 비가 조금씩 내린다면 더욱더 운치가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만, 이 맑은 날씨에 그만 반해버리고 말았다. 역시 여기까지 오길 잘했잖아. 파란 하늘 사이로 새하얀 뭉게구름이 흘렀다.

 



 

비수구미생태길의 시작점인 해산령휴게소에 도착했다. 해발고도가 높아서인지 한낮임에도 꽤 선선했다. 채비하고 길을 나섰다. 비수구미 마을까지는 줄곧 내리막길이다. 마을에서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는 교통편도 전무했던 터라, 결국은 왕복을 해야 했다. 그래도 반환점까지는 이 길을 충분히 즐길 수 있을 터였다. 오르막길을 걸어 돌아와야 하는 상황은 두어 시간 후의 내게 오롯이 맡기기로 했다.

인간이 만들어내는 소음 같은 건 없었다.


화천의 숨겨진, 청정 계곡이라는 비수구미 계곡이 길을 따라 이어지고 있었다. 계곡이 흐르는 소리가 귓불을 간지럽혔다. 경쾌한 소리가 걷는 내내 곁을 맴돌았다. 거기에 끊임없이 지저귀는 새들, 여름을 맞아 시원하게 샤우팅을 내지르는 매미들의 울음소리가 더해졌다. 그뿐이었다. 들려오는 소리라고는 그게 전부였다. 인간이 만들어내는 소음 같은 건 없었다. 그 고요하고도 비밀스러운 공기가 숲속을 흐르고 있었다.


작은 물줄기 하나가 아무렇지 않게 사람들이 오가는 길 위를 가로지른다. 당연하다는 듯이. 골짜기 깊숙한 곳에 새로운 터전이랍시고 마을을 조성했던 화전민들이, 그토록 오랜 세월 지르밟았을 길이라는 점은 그 물줄기에게는 그리 중요치 않았겠지. 숲에게 그 정도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가볍게 뛰어넘었다.




발걸음을 옮기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짙은 숲이 품은 비경이 하나 같이 오묘해서다. 화전민들이 어쩌다 이곳까지 흘러들어왔는지 궁금해질 만큼, 깊고도 우거진 숲이 비수구미생태길을 감싸고 있었다. 진한 풀 내음이 온몸에 스며들고 있다는 느낌이 들자, 나도 모르게 절로 큰 숨을 들이마셨다. 실로 오랜만에 느끼는 여유이질 않은가. 달콤했다. 길가엔 때때로 그늘이 나타났고, 종종 이름 모를 야생화와 새들이 인사를 건네오기도 했다.

드디어 찾았다.


드디어 찾았다.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을 말이다. 한동안 소리만 들려주더니 이제야 모습을 드러냈다. 바위에 걸터앉아 신발을 벗었다. 양말도 벗어 신발 안에 꾸겨 넣기까지 했다. 자유로워진 두 다리는 계곡물 속으로 입수. 차디찬 물이 발바닥은 물론, 발목까지도 치고 돌아갔다. 온몸에 계곡물의 청량감 가득한 촉감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시원했다. 알게 모르게 몸에 쌓였던 피로까지도 싹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어느새 비수구미 마을에 가까워졌다. 남아 있는 건물이 많은 건 아니지만, 사람들은 이곳에서 여전히 살아내고 있었다. 예전처럼 화전을 일구고 살아가지는 않아도, 이곳을 오가는 관광객이 많아 그럭저럭 먹고 살 수 있는 듯했다. 계곡 옆 나무 그늘에 자리를 잡고는 피서를 즐기는 이들, 비수구미생태길을 오르내리는 등산객들을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마을을 그대로 지나쳤다. 마을 어귀에는 구름다리가 있는데, 이게 사람들을 오갈 수 있게 해주었다. 한때는 배로만 오갈 수 있는 비수구미에는 신문물이지 않나 싶었다. 다리를 건너자 절벽을 따라 산책로가 이어졌고, 이내 파로호에 닿았다.

 




파로호는 잔잔했다. 몇몇 사람들이 작은 보트를 타고 비수구미 마을을 오가는 모습이 눈에 띄기는 했어도, 대체로 그랬다. 파로호 주변을 감싸고 있는 산세가 왠지 모르게 이국적이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유난히 푸른 하늘과 새하얀 구름이 주변 풍경과 어우러지며 비현실적인 풍경을 지어내고 있었다. 한동안 자리를 뜰 수 없었던 이유다.


되돌아가는 길. 해산령휴게소까지 올라가야 했으니, 이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는 셈이었다. 오르막과 평지가 번갈아 나타나기를 여러 차례. 내려올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 숲에 그득했다. 한창 맑았던 하늘은 어느새 먹구름으로 가득했다. 햇볕이 사라진 숲은 도리어 더욱더 짙은 녹음으로 뒤덮였다. 이제는 촉촉한 공기와 선선한 바람이 나를 응원했다. 아까 발을 담갔던 계곡이 다시 나타났지만, 잘 참아냈다. 해가 지고 있어서였다.


인근 추천 관광지: 평화의 댐




비수구미 마을과 함께 둘러볼 만한 곳으로 평화의 댐 일원이 있다. 평화의 댐은 북한에서 흘러 내려오는 북한강의 길목을 막아둔 댐으로, 홍수를 대비하기 위해 건설했다. 1986년, 북한에서 수력 발전용으로 건설한 임남댐이 무너질 경우, 화천을 비롯한 북한강 유역이 물에 잠길 것을 우려해 건설한 것.


현재는 이 평화의 댐을 중심으로 평화를 주제로 한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평화의 댐 하부 공간에 있는 국제평화아트파크에서는 전차 등을 재료로 만든 예술 작품들이 여행자를 맞이한다. 비둘기들이 탱크를 하늘로 끌어 올리는 듯한 작품, 평화를 상징하는 심볼 등으로 꾸며진 작품 등등 평화를 이야기하는 수준급의 작품들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평화의 댐에 그려진 세계 최대 크기의 트릭아트도 놓치지 말자.




평화의 댐 상부로 올라가면, 비목공원과 스카이워크, 평화의 종 등이 기다리고 있다. 6·25전쟁 이야기를 주제로 가사를 쓴 국민적인 가곡 '비목'이 탄생한 곳이 바로 이곳이라고. 평화의 댐을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스카이워크가 무료로 운영 중이기도 하다. 남북대결의 역사를 넘어 평화를 기원하고자 하는 '평화의 종'도 이곳에서 설치되어 있다.





▶TIP:

① 비수구미생태길 입구인 해산령휴게소(쉼터)에 갈 수 있는 대중교통편은 전무하다. 화천공영버스터미널에서 비수구미 인근 관광지인 평화의 댐까지 오가는 버스편이 있지만, 사실상 비수구미생태길까지 걸어서 이동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개인 차량을 이용하는 것이 사실상 유일한 이동 방법. 단체 여행객의 경우에는 편도로 비수구미생태길을 걷고, 차량은 그 반대편에서 기다리게 하는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② 식수, 선크림, 모자, 운동화, 벌레퇴치제 등을 챙기자. 중간에 화장실이 없으니 해산령휴게소 또는 비수구미 마을에서 볼일을 해결할 것.

③ 자가용 차량을 이용해 비수구미에 방문했다면,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평화의 댐도 함께 둘러보자. 평화의 댐을 중심으로 국제평화아트파크, 평화의 종이 있는 비목공원, 스카이워크 등이 조성되어 있다.

▶코스 경로: 해산터널 - 비수구미 선착장

▶거리 : 6km

▶소요 시간: 2시간

▶코스 타입: 비순환형

▶난이도: 보통

▶편의시설

화장실 : 해산터널 부근, 중간부근 화장실은 사용이 중지되었음

식수: 식수보급처가 없으니 매점에서 구입하거나 사전준비

매점: 해산터널지나 해산령 휴게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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