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인제] 날 것의 내음이 가득한 강원도 오지 숲길, '둔가리약수숲길 1코스 서바수길'

2020-08 이 달의 추천길 2020-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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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것의 내음이 가득한

강원도 오지 숲길

둔가리약수숲길 01코스 서바수길

글,사진: 유튜버 여행자메이(김미희)



날 것의 무엇을 사랑한다. 인위적으로 조성된 완벽한 야경보다는, 우연히 발견한 불빛에 마음을 쉬이 빼앗기며, 잘 다듬어진 예쁜 말보단 서툰 진심을 선호한다. 그런 내게 날 것의 내음이 가득했던 강원도 둔가리약수숲길은 마음을 빼앗기기에 충분했다. 홍천군에 위치한 삼둔(달둔, 살둔, 월둔)과 인제군에 위치한 4가리(아침가리, 적가리, 명지가리, 연가리)를 연계하고 주위의 약수를 이어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둔가리약수숲길'. 어쩐지 걷고 나면 건강해질 것만 같은 늬앙스를 팍팍 풍기는 이 길은 인제군 기린면에서 시작된다.


길의 시작


동서울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2시간 20분을 달려 현리시외터미널에 도착했다. 내리자마자 방태산부터 음봉산까지, 양옆을 둘러싼 산의 절경에 길이 시작되었음을 실감했다. 터미널 앞에는 식사가 가능한 음식점들이 줄지어 서있다. 앞으로 16km를 내리 걸어야 하게이, 먼저 배를 채우기위해 백반집에 들어갔다. 참고로 미리 이야기하건대 이건 최고의 선택이었다. 강원도 오지를 걷는 이 길에서는 터미널 근처를 제외하곤 길 도중에 마땅한 편의시설이 거의 없어, 시작점에서 든든히 식사해두는 일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기 때문이다.




소박하면서도 푸짐한 한 그릇을 해치우고는 둔가리약수숲길 안내센터로 향했다. 터미널에서 이 길의 공식출발점인 안내센터까지는 도보로 약 10분 정도가 걸린다. 안내센터에서부터 출발하면 다시 그늘 하나 없는 뙤약볕 길을 되돌아와야 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터미널에서 바로 길을 시작하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백두대간트레일 안내센터라고 쓰여진 곳이 곧 군가리약수숲길 안내센터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내가 도착했을 땐 이미 점심시간이라 문을 닫았고, 나는 어쩔 수 없이 특별한 안내 없이 오늘의 길을 시작했다.


그렇게 5분쯤 걸었을까, 현리 벽화마을이라는 곳이 나왔다. 둔가리약수숲길은 우측 큰길을 따라가야 하는데, 좌측에 있는 벽화마을이 더 예뻐 보일 건 뭐람. 나는 잠시 경로를 이탈해 걸을까 망설였지만, 오늘만큼은 온전히 정해진 길을 따라보기로 한다. 나는 벽화 마을의 사진을 몇 장 담고는 본래 길로 되돌아왔다. 돌아오자 잘 왔다고 반겨주는 양 활짝 피어있는 능소화들이 햇살을 받아 반짝였다. 참으로 능소화가 예쁜 계절이다.


조금 걷다 보니 편의점이 나왔다. 이 길을 걷는 모든 이에게 전하건대, 이 편의점은 이 길에서 당신의 마지막 구원자가 될 테니 결코 이 편의점을 지나치기 말기를.. 나는 이곳에서 물과 간식거리를 사 배낭에 넣었다.

리틀 포레스트의 한 장면처럼







덕교를 건너 우측의 작은 길로 빠지면 그때부터 하천(방태천)을 따라 걷는 산책로가 시작된다. 그런데 이 작은 길은 그리 눈에 띄지 않았으므로, 모르고 지나치지 않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아무쪼록 산책길에 들어서니 푸른 잎의 나무가 줄지어 있고, 이윽고 흙과 돌로 된 길이 시작되었다. 신발 밑창과 흙의 마찰이 퍽 반갑다. 그래, 이게 숲길이지- 나는 되뇌며 밭에 온 감각을 집중시켰다.





이윽고 소양강 내린천을 따라 걷는 아름다운 길이 펼쳐졌다. 내린천의 돌 위에는 이름 모를 새들이 가득했고, 그들의 울음소리가 물소리, 바람소리와 어우러져 꽤 예쁜 배경 음악을 자아냈다. 굳이 이어폰을 꽂을 필요가 없었다. 이 즈음부터 길의 안내판 역할을 하는 빨간색, 파란색의 천이 휘날리는 것을 중간중간 만날 수 있어, 길 찾기는 어렵지 않다. 산티아고 순례길, 제주도 올레길을 떠올리게 하는 이 표식에 나는 잠시 향수에 빠져들었다.




서호교를 건넌다. 양옆의 내린천이 햇살을 받아 반짝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논밭길이 펼쳐졌다. 그늘 하나 없는 뙤약볕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지만, 다채로운 풍경에 힘들어할 새는 없었다. 끝없이 펼쳐진 논은 바람결에 춤을 출 때마다 색이 뒤바뀌곤 했고, 좌측 도랑에는 우렁이가 가득했다. 나도 모르게 군침을 삼켰던 건 비밀로...


그렇게 걸으며 옥수수, 고추, 자두까지 다양한 농작물을 만났고, 소위 말하는 인생샷이란 것도 몇 장이나 건질 수 있었다. 마치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주인공이 되어 바쁜 도시 속 골치 아픈 모든 것에서 해방된 듯한 자유감을 나는 마음껏 만끽했다.


내린천을 따라 말 없이 걸었다.



쉴 곳이 없다. 정자 같은 게 나오면 바로 앉아 쉬어야지 생각한 게 벌써 한 시간 째다. 농사짓는 분들을 제외하곤 단 한 명의 관광객도 만나지 못했다. 그만큼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숲길이란 뜻이기도 할 터이다. 나는 내린천 옆으로 그늘이 넓게 펼쳐진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물을 마시며, 잔잔한 음악을 틀었다. 사람 하나 없는 이곳에서 그저 살랑이는 바람이 앞머리를 간질이는 일에만 집중할 뿐이었다.




그렇게 잠깐의 휴식을 취하고 다시 내린천을 따라 말없이 걸었다. 하늘이 내린 계곡이라는 별칭이 있는 인제 8경 내린천이 눈에 익어가는 느낌이 퍽 좋았다. 그렇게 오늘만큼은 걷는 사람이 되어, 내리 걸었다.


왜골교를 지나기 전 짧은 등산로를 만났다. 짧은 오르막에 그리 어려운 길은 아니지만, 길의 폭이 좁고, 수풀이 무성해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어 보인다. 나도 한 차례 수풀 더미에 발이 걸려 넘어질 뻔하여서야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걸었다. 짧은 산행이 끝나고, 왜골교를 건너고 나서 왜골민박이라는 곳이 보였다. 지나온 작은 민박 중에서는 가장 정겹고 괜찮아 보여, 오늘 이곳에서 쉬다 내일 마저 걸을까? 잠시 고민하다 다시금 길을 재촉했다. 왜골 민박을 지나 용포교를 건너기 전, 우측을 보면 간이 화장실이 있고, 용포교를 건넌 후에는 해장국집이 하나 있으니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이 길의 거의 유일한 식당이라고 할 수 있다.)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강원도 오지 생태


단조로울 만하면 변화하는 길의 모습에 지루할 틈이 없다. 내린천을 끼고 걷는 길을 지나 끊임없는 오르막이 펼쳐졌다. 오르는 도중 현리전투위령비라는 곳을 만날 수 있다. 설명문 속 '승리가 아닌 쓰라린 패배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눈이 멈췄다. 간단히 관람 후, 바로 앞에 의자도 있으니 쉬어가는 것을 추천한다.


꽤 높은 곳으로 올라가니 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오두막이 나왔다. 사설 공간인 듯했는데, 이 안에 잘 익은 오디와 시원하게 보관된 맥주 한 캔을 발견했다. 내가 올 것을 알고 미리 준비된 선물이라면 얼마나 좋으랴- 맥주 한 모금이 몹시 간절해졌다.


그 후론 방태산의 한 자락을 걷는 산길이 이어졌다. 소나무와 천연림이 어우러진 모습을 보며, 쉬지 않고 걸었다. 그런데 그때, 무언가 스쳐 가는 그림자에 고개를 돌렸다. 뱀! 뱀이었다. 다행히 독사로 보이지는 않아, 나는 뱀이 유유히 멀어지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이곳은 오지 트레킹 코스인만큼 뱀이 종종 발견된다고 하니, 산길을 걸을 때는 유의하는 것이 좋겠다. 확실히 이곳은 사람이 많이 다니는 트레킹 코스에 비해, 무성하고 스산한 느낌이 있었다.

 




걷다 보니 계곡을 만났다. 가산동 마을과 미기동 마을이 물을 끌어가는 절골인 모양이다. 정말이지 물이 몹시 맑아, 목이 마르면 떠 마셔도 될 정도였다. 손을 담가보니 내내 뜨거웠던 온몸에 찬기가 돌았다. 그렇게 몇 도쯤 내려간 체온을 느끼며 기분 좋게 길을 재촉했다. 다만 이쪽 길은 바위에 이끼가 많이 붙어있어 미끄러우니 조심해야 한다.


산길이 끝났다. 쉬엄쉬엄 걸어서인지 어느새 오후 여섯 시 반. 길을 시작한 지 여섯 시간이나 흘렀고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옆으로는 밭과 산의 조화로운 풍경이 펼쳐졌는데, 농사짓는 아주머니께 여쭤보니 두부 콩밭이라 답해주셨다. 콩밭에서 은은하게 풍기는 비료 내음이 썩 나쁘지 않았다.


하루 더 머물고 싶은 곳


얼마나 왔을까 뒤를 돌아보는데 깎아내린 듯한 절벽의 경치가 일품이다. 앞에는 군데군데 야생화의 향기로 가득하고, 저 멀리 보이는 산봉우리에는 운무가 잔뜩 끼어있다. 마지막 선물인 걸까? 지도를 보니 거의 다 끝이 났다. 미기교 앞. 그런데 미기교에 도착했지만, 도착을 알리는 어떤 표지판도 없다. 뭐, 대단한 끝을 바랐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16km의 마지막을 만끽하기엔 조금 허무한 감이 있었다. 아쉬운 대로 바닥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모아 끝이라는 글자를 만들어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람결에 사라질 글자인 건 알지만, 그래도 내 뒤를 따라온 누군가에게 토닥여줄 수 있기를..





▶TIP:

-인제시외버스터미널에서 현리터미널 (1일 9회)

-현리터미널에서 인제방향, 홍천 방향 (1일 9회)

-코스 내(현리터미널 이후)에 매점 없음, 식수나 간식 준비

-산길의 경우 수풀이 우거진 편이며 벌레도 많으므로 긴바지 필수

▶코스 경로: 약수숲길 안내센터 - 서바수 - 수로입구 - 용포교 - 가산동 - 하남리 절골 - 미기교

▶거리 : 16km

▶소요 시간: 6시간

▶코스 타입: 비순환형

▶난이도: 보통

▶편의시설

화장실 : 기린면 현리 공용주차장, 용포교 앞

식수: 기린면 현리시외버스터미널 근처 편의점에서 미리 준비

식당: 기린면 내린천로 매화촌해장국 (용포교 건넌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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