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수원] 빌딩 숲에서 만난 여우길 수원 팔색길 四色 여우길

2020-10 이 달의 추천길 2020-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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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딩 숲에서 만난 여우길

수원 팔색길 四色 여우길

글, 사진: 노성경 여행작가



수원 구석구석을 연결하는 수원팔색길.

一色(일색)인 모수길부터, 지게길, 매실길, 여우길, 도란길, 수원둘레길, 효행길 화성 성곽길까지 수원이 내로라하는 매력들을 품고 있다.

길마다 고유의 매력이 진하게 묻어 있는데 길을 돌아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四色 여우길을 백미로 꼽는다.

수원 시민이 한마음 한뜻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안식처인 광교 저수지와 원천 저수지를 연결하는 여우길은 실제로 여우가 살았던 곳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하늘 높이 솟아있는 고층 빌딩들이 즐비한 지금이야 그 흔적조차 완전히 사라졌지만,

아버지의 아버지, 어머니의 어머니 세대에서 전해오는 이야기는 분명 실제 했던 사실이다.

더 이상 만날 수도 볼 수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상상을 통해 현재의 길 위에 과거의 모습을 상상하며 길을 나서본다.





여우길은 광교 공원에서 출발해 경기대학교, 광교 역사 공원, 원천 저수지, 여우골 숲길, 봉녕사, 경기대학교를 거쳐

다시 광교 공원으로 회귀하는 순환형 코스다.

총거리 10.6km로 다소 긴 편이긴 하나 청춘의 향기가 묻어있는 캠퍼스를 지나,

고층 빌딩들이 즐비한 사이로 맑디 맑은 하천을 따라 이어지는 도심과 자연이 어우러지는 풍경을 담고,

짙푸른 녹음이 하늘마저 빽빽하게 채우는 숲길을 거니는 등 코스가 다채로워 지루할 틈이 없다. 변이점마다 길을 알려주는 이정표도 알차다.

'나라면 이곳에 흔적을 남겨 둘 테야'라고 생각되는 곳을 살피면 더욱 손쉽게 찾을 수 있다.

이정표에 표시된 '여우길'이라는 이름은 몇 번을 만나도 여전히 반갑기만 하다.

여정 중간중간 쉴 수 있는 테이블과 화장실도 잘 조성되어 있어 부담을 줄여준다.


경기대학교 캠퍼스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청춘의 향기에 취하다.


여정은 광교산 남쪽에 있는 광교 저수지에서 시작된다. 높다란 빌딩들이 즐비한 도시에 있는 저수지에는 특별함이 있다.

한눈으로 담을 수 없는 커다란 저수지 주위로 짙푸른 수목이 완만한 능선을 이루고 있다.

수목 사이로 이어지는 산책로를 따라 오르면 해발 528m의 광교산으로 이어진다.

사시사철 진한 매력이 묻어 있는 광교 저수지는 백설이 수북이 쌓여 있는 겨울이 장관이다.

광교적설(光敎積雪)은 수원팔색 중 으뜸으로 꼽힌다. 잔잔한 저수지의 물결이 평화롭기만 하다.



광교 공원 공영 주차장 맞은편, 양평 해장국 우측으로 나있는 오르막길을 따라가면 <경기대학교 수원캠퍼스> 정문에 다다른다.

여우길은 특이하게도 캠퍼스 외각이 아닌, 내부를 지나 길이 이어진다.

벌써 10년도 더 된 추억이 캠퍼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무대.

지금은 방학이라 조용하고 평화롭지만, 기억의 편린이 더해진 캠퍼스의 모습은 활기가 넘칠 따름이다. 캠퍼스를 걷는 발걸음 역시도 가볍다.

시작부터 설렘으로 가슴이 뛴다.





캠퍼스 내 코스는 정문으로 들어간 뒤, 후문으로 나가면 된다.

(경기대학교 내에는 이정표가 없기 때문에 미리 코스 정보를 확인하도록 하자.)

정문으로 들어서자마자 우측으로 꺾어서 운동장 방면으로 향한 뒤, 운동장과 덕문관 사이에 있는 내리막길을 따라 쭉 가면 후문이 보인다.

후문으로 나와 신호등까지 직진을 하면, 여우길 이정표가 보인다.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에 귀를 기울인 채,

싱그러운 초록 길을 따라 걸어본다.




경기대학교 수원캠퍼스 후문으로 나온 뒤 약 10여 분 정도 도심을 걷고 나면, 하천 길가로 접어들게 된다.

<광교역 참누리 포레스트> 단지부터 시작되는 하천은 (시점은 광교 저수지로부터 발원하는 것으로 예상된다.) 여우길 코스의 중반인 광교 호수공원으로 합쳐진다. 졸졸졸 흐르는 하천을 따라 싱그러운 기운을 잔뜩 머금은 산책길이 있다.

한 여름,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초목들이 사람의 길과 자연 길의 경계를 허물고 있었는데 그 모습마저도 길의 매력으로 보였다.

생명을 잃고 떨어진 꽃잎들 마저도 예쁘기만 했다.

십수 년 최장기간 기록을 경신하는 장마의 영향으로 하늘엔 먹구름이, 하늘 아랜 후덥지근한 날씨가 발길을 무겁게 했지만,

길이 주는 매력마저도 가리진 못했다.





여우길 초반 코스의 백미는 하천을 가로지르는 다리 아래 형성되는 굴다리다.

앞서 캠퍼스에서 10여 전의 추억을 되살렸다면, 굴다리는 그보다 훨씬 더 이전의 추억을 불러온다.

글도 제대로 배우기 이전, 추억 속의 나는 부끄러움도 모른 채 팬티 한 장만 걸치고서는 수영도 하고, 개울가의 물고기도 잡고 했었다.

어두컴컴한 굴다리는 또래 남자아이들의 대표적인 아지트이기도 했다. 여름 방학이면 약속을 잡지 않아도 하나둘 모여들었던 곳이다.

굴다리를 지나는 동안, 가장 그리운 시절로 시간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다.




조선 태종( 太宗)의 아홉 번째 왕자

혜령 군 이지의 묘


전국의 이름난 여느 길이 그렇듯 여우길 역시도 역사의 흔적을 품고 있다.


멀리서 보이는 고색창연한 색을 따라 발길을 돌려본다. 가까이 다가서니 묘소가 보인다.

혜령 군 이지의 묘. 이지(태종 7년~세종 22년)는 조선 태종의 아홉 번째 왕자이자, 세종의 이북 동생으로,

호방하고 활달하여 무를 좋아하고 사냥을 즐겨 했다고 전해진다.

왕좌의 신분으로서는 무난한 삶을 살았지만 아쉽게 34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

처음에는 서원시 동문 안쪽에 위치했었다가, 세종의 장인 심온 선생 묘와 함께 나라에서 관리하길 원했던 세종의 명에 의해 옮겨졌다.

이지의 묘는 수원에서 유일한 왕자의 묘이기도 하다.



시은소 교회 앞 징검다리가 참으로 정겹다.



시온소 교회를 지나면 광교 신도시의 위용을 느낄 수 있는 주거 단지로 접어든다.

e 편한 세상, 오드카운티, 삼성래미안, 효성 해링턴 타워, 엘포트 아이파크, 힐스테이트 레이크 등

오늘날의 광교를 있게 만든 아파트 사이로 굽어지며 이어지는 길은 묘한 감흥을 불러일으켰다.

이처럼 독특한 풍경 사이로 펼쳐지는 길이 또 있을까 싶었다.

자연 모습 그대로의 하천길과 하늘 높이 솟아오른 아파트 단지들은 어울리지 못하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지극히 조화로운 모습으로 비쳐들기도 했다.






자연을 품은 이상적인 도심의 모습에 반하다

광교호수공원


약 3km의 하천 산책로는 광교호수공원으로 이어진다. 하천 끝에서 보이는 원천호수의 모습은 바다를 연상케 할 정도로 규모가 컸다.

호수에 다다르면 다시금 정비된 도시의 모습이 펼쳐진다. 넓은 호수를 따라 네모난 빌딩들이 줄지어 솟아있는 모습은 또 하나의 장관이었다.

자연을 품은 도심은 현대인이 가장 바라는 이상적인 모습의 다름이 아니었다.




호수 공원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네모난 빌딩들. 높다란 빌딩 아래로는 숲길과 물길이 함께 어우러진다.

파란 하늘에 새하얀 뭉게구름이 두둥실 떠다녔으면 더욱 좋았을 테지만 지금의 모습도 평화롭기 그지없다.

잔잔한 호수바람이 한여름의 무더위로 인한 땀을 씻어낸다. 호수바람에 갈대도 춤을 춘다.

호수 수면에 높은 빌딩들의 모습이 반영된다. 저 높은 빌딩마저도 쉽게 품은 호수의 규모에 감탄이 쏟아진다.













이방인의 신분으로 한 번 스쳐가야만 하는 상황이 아쉽기만 했다.

매일매일 호수 공원의 풍경을 마주할 수 있는 주민들이 한없이 부러웠다. 걸어왔던 길만큼이나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도심에서 삶을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공간에 없던 욕심마저 생겨난다.

'여우길'이라는 예쁜 이름과는 하나도 어울리지 않는 공간이라고 애써 자위하고 난 뒤에야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진한 숲내음에 깊은숨을 들이마시다

'여우골 숲길'




호수 공원을 벗어나면 숲길로 이어진다.  하천 산책로, 멋들어진 도심 한가운데에 위치한 호수 공원 길.

그리고, 초목으로 둘러싸인 숲길까지. 다채롭게 펼쳐지는 여우길은 지루할 틈이 없다.

수원팔색길 중 여우길을 백미로 꼽는 까닭이기도 하다.

진한 흙 내음과 풀 내음이 풍겨오는 여우골 숲길로 들어오고 나니 멋들어진 도심에서 살고 싶다는 욕망도 자연스레 지워지기 시작했다.

스스로가 생각해도 심한 변덕에 씁쓸한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마음만은 오히려 편안했다.

아무런 생각이 없이 근심마저 잊고 다시 여정을 이어가본다.





여우골 숲길은 약 2km 구간이다. 온통 초록으로 가득한 숲길은 완만해서 부담 없이 걷기에 좋다.

총거리 10km에 다다르는 여우길. 짧은 거리는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완만하게 이어지기 때문에 초보자라도 크게 무리가 없다.

무엇보다, 시점으로 돌아가는 순환길인데다

중간중간에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포인트도 있어 언제든지 여정을 끝낼 수 있다는 점도 여우길의 장점이다.



여우골 숲길 중간에 위치한 팔각정에 앉아서 잠시 여유를 가졌다.

어찌나 편안한지 잠시 앉아 있는 와중에 스르르 잠이 들 뻔.

사사사삭 바람에 흩날리는 잎사귀 소리가 평화롭다. 이마에서 내려오는 땀방울이 성취감을 더한다.

무더위에 체력이 두 배로 필요하지만, 그만큼 성취감도 크다. 힘들게 걸으면서 흘리는 땀은 스트레스마저 날려준다.

집으로 돌아가 샤워를 하기까지 찝찝함은 아무래도 좋아할 수가 없지만, 시원한 물에 샤워를 하는 상상을 하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숲 곳곳에서 보랏빛 감성이 일렁였다. 이름도 특이한 맥문동(麥門冬)이라는 꽃이다.

8월 여름을 대표하는 꽃 중에서 가장 예쁜 모습을 하고 있어 일부러 맥문동이 있는 곳을 찾는 사람들도 많다.

온통 초록색 사이에 피어있는 맥문동은 보석처럼 빛이 났다.

가던 길을 멈추고서는 쪼그려 앉아서 한참이나 사진을 담았다.



길을 걷는 중에 만난 노부부의 뒷모습에 미소가 지어진다.

주름진 두 손을 꽉 잡고 걷는 모습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한 발 한 발 걷는 걸음마저도 꼭 닮은 듯했다.

오랫동안 함께한 시간이 발걸음에도 묻어나 있었다.

도란도란 대화 소리가 고요한 숲속 산책길을 따뜻하게 품었다.


여우골 숲길 종반에 들어서는 초록의 터널이 마주했다.

강인한 생명력이 깃든 초록. 다채로운 계조의 초록에 숲이 살아있는 것만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그 모습에 오래전엔 여우가 살았다는 이야기가 절로 떠올려졌다. 상상은 이내 곧 호기심으로 이어졌다.

여우를 만날 수 있는 기대감은 조금도 들지 않지만 여행 종반, 지친 체력을 충전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여행에서 상상이 주는 가치는 이처럼 크다.






이정 팻말, 리본 표식, 화살표 표식 등 다양한 안내판이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있다.

경기대를 나와 하천 산책로로 들어서면 하천이 흐르는 방향을 따라 쭉 걸어가면 된다. 혹시나 하천이 두 갈래로 나누어지면 이정표를 찾아보자.

초보자들에겐 다소 긴 거리이긴 하나 전체적으로 완만하게 이어져서 걸을만하다.

각각 코스의 시점과 종점에서 대중교통으로 연결된다는 점도 부담을 줄여준다.



▶코스 경로: 원천호수 - 여우골 숲길 - 봉녕사 - 광교공원 - 경기대학교 - 광교역사 공원 - 광교중앙공원 - 원천호수 - 신대 호수 - 원천리천

▶거리 : 10.7km

▶소요 시간: 3시간 40여 분

▶코스 타입: 순환형

▶난이도: 보통

▶오시는 길: 신분당선 광교 중앙선 하차 후 경기대 정문까지 도보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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