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강화] 염하 따라 돈대에 서린 호국정신을 밟다

2017-06 이 달의 추천길 2017-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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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진진과 이어진 좌강돈대. 거대한 원형경기장을 연상시키며 염하와 김포 일대 조망이 뛰어나다.

 


강화도는 ‘역사의 땅, 눈물의 섬’으로 통한다. 바다를 통해 서울로 입성할 수 있는 지정학적 요충지인 덕분에 외세의 침략을 가장 먼저 받았다. 또한 육지와 섬 사이의 염하(鹽河)라는 천혜의 자연방어선과 드넓은 농토가 있었기에 전란의 시대에는 늘 피난지 역할을 했다. 강화나들길 2코스 호국돈대길은 갑곶돈대를 시작으로 염하를 따라 초지진까지 이어지는 해안길이다. 몽골과의 항쟁에서부터 조선시대 신미양요에 이르기까지 국난극복의 의지가 서린 전적지를 두루 거친다. 

 

 

강화전쟁박물관 앞에서 출발

 

출발점인 강화전쟁박물관 앞. 강화나들길 마스코트 발밤이가 반긴다.

 

 

호국돈대길의 출발점은 강화대교와 가까운 강화전쟁박물관이다. 박물관 입구에 호국돈대길을 알리는 조형물과 스탬프가 있다. 조형물에는 사람이 걷는 형상이 있는데, 강화나들길의 마스코트 ‘발밤이’다. 발밤이 이름은 ‘발밤발밤’에서 따온 것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걷는 모양’을 가리키는 우리말이다. 혼자 걷는 사람들은 중간중간 만나는 발밤이가 무척 반갑다.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대가 상륙했던 갑곶돈대.

 

 

출발에 앞서 박물관과 그 옆에 자리한 갑곶돈대를 살펴보는 순서다. 강화전쟁박물관은 선사시대부터 근·현대까지 강화의 아픈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특히 3전시실에서 ‘어재연장군 수자기’를 볼 수 있다. 어재연장군은 신미양요 때 광성보에서 미군과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했고, 미군은 어재연장군의 대장기인 수자기를 전리품으로 빼앗아 갔다. 2007년 문화재청은 미국 애나폴리스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이 소장하던 이 깃발을 장기 임대 조건으로 대여받았으며, 지금 강화전쟁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다. 

박물관 오른쪽에 자리한 2층 정자인 이섭정에 오르면 염하가 내려다보인다. 염하는 강화와 김포 사이의 약 20㎞ 길이의 해협을 말한다. 예로부터 염하는 해상교통과 외세를 막는 군사적 요충지였다. 조선시대에 삼남지방에서 서해를 북상해 온 세곡선이 염하를 통해 한양으로 들어갔고, 개항기 때에는 병인양요(1866년)와 신미양요(1871년)를 치른 격전지였다. 

 

 

호국돈대길은 염하를 따라가는 길로 갈대와 갯벌이 어우러진다.

 

 

이섭정 아래에 갑곶돈대가 있다. 군사적 요충지인 강화도에는 숙종 때에 이르러 군사 시설인 5개의 진, 7개의 보, 53개의 돈대를 설치했다. 돈대는 해안가에 돌이나 흙으로 쌓은 소규모 방어시설이다. 병인양요 때 갑곶돈대로 프랑스 극동함대 600여 명 병력이 상륙했다. 프랑스군은 강화성 일대를 점령했지만, 양헌수 장군의 부대에게 패하여 달아났다.

전쟁박물관 입구에서 본격적으로 호국돈대길을 잇는다. 한동안 염하 옆 호젓한 둑길이 이어진다. 더러미 장어마을을 지나면 오른쪽으로 용진진이 보인다. 용진진은 1656년에 축조됐으며 101명의 병력이 주둔했다고 한다. 1999년에 복원한 문루를 따라 성벽을 오르면 좌강돈대를 만난다. 거대한 원형경기장 같은 좌강돈대에 서면 염하와 건너편 김포 등이 한눈에 잡힌다. 

 

 

좌강돈대와 이어진 용진진.

 

 

다시 길을 나서 산길로 접어들면 용당돈대가 나온다. 널찍한 돈대 가운데에 참나무 한 그루가 고고하게 우뚝 서 있다. 참나무 아래는 온통 흰 토끼풀 꽃이 가득하다. 초여름의 돈대는 쓸쓸하고도 아름답다. 이어지는 화도돈대는 생김새가 사각형이라 특이하고, 거친 돌을 원형으로 쌓은 오두돈대는 로마의 원형경기장 같은 느낌이다. 

 

 

토끼풀 꽃이 흐드러진 모습이 쓸쓸하면서도 아름다운 오두돈대.

 

 

오두돈대를 지나면 ‘강화외성’ 이정표가 보인다. 해안에 쌓은 외성 일부가 남아 있다. 강화외성은 1233년 몽골의 침입에 맞서기 위하여 강화의 동쪽 해안 방어를 위해 염하를 따라 적북돈대부터 초지진까지 쌓은 성이다. 둘레는 무려 23km에 이르며 문루 6개소, 암문 6개소, 수문 17개소를 설치했다고 한다. 

 

 

성벽과 소나무에 남긴 상처, 초지진

 

호국돈대길을 걷는 동안에 갯벌을 볼 수 있다. 갯벌에 놓인 재미있는 조형물들.

 

 

강화외성부터 이어지는 해안길에는 갈대가 서걱거리고, 길섶에는 붓꽃이 펴 정겹다. 해안길 끝 지점에 광성보가 자리한다. 광성보는 신미양요 때 미국의 아세아함대를 맞아 어재연 장군 휘하 전 수비군이 장렬하게 전사한 역사적 장소다. 안해루를 통해 안으로 들어서면 광성돈대가 나오고, 신미양요 때 순국한 무명용사들을 기리는 ‘신미양요순국무명용사비’와 전사자들의 합동묘인 ‘신미순의총’을 지나면 용두돈대를 만난다.  

 

 

오두돈대 아래의 복원된 강화외성.

 

 

용두돈대는 강화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돈대로 꼽힌다. 용머리처럼 바다로 툭 튀어나온 지형을 따라 쌓아 곡선미가 일품이다. 돈대 앞을 흐르는 염하가 손돌목이다. 손돌이라는 지명은 이곳에 있던 뱃사공의 이름에서 나왔다. 광성보를 나와 길을 이어나가면 덕진진에 닿는다. 덕진진은 1679년에 축조된 용두·덕진 등 2개 돈대와 1874년에 축조된 남장·덕진 등 2개 포대를 관할하는 강화해협에서 가장 강력한 포대였다. 1871년 신미양요 때는 치열한 포격전 끝에 미국함대를 격퇴했지만, 초지진에 상륙한 미국해병대에 의하여 점령당하는 비운을 맞았다. 

 

 

희미한 보름달이 뜬 초지진의 야경.

 

 

덕진진을 나와 다시 호젓한 해안길을 따른다. 초지진선착장을 지나면 종착점이 초지진으로 들어선다. 1656년 세워진 초지진은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그리고 1875년 침공한 일본 군함 윤요호를 맞아 치열한 전투를 벌인 격전지다. 윤요호의 침공은 1876년 강압적인 강화도 수호조약의 체결을 불러와 일본 침략의 문호가 개방되었다. 지금도 초지진 성벽과 ‘초지진 소나무’에는 전투 때 포탄에 맞은 흔적이 그대로 남아 아픔을 전해준다. 시나브로 해가 기울고 초지대교에 가로등이 들어오는 걸 바라보며 걷기를 마무리한다. 

 

 

코스 요약

강화전쟁박물관(갑곶돈대) ~ 용진진 용당돈대 화도돈대 오두돈대 광성보 용두돈대 덕진진 초지진
(17km, 5시간 30분)

 

교통편

대중교통

가는 편
1.서울 신촌 또는 영등포, 인천, 일산 등지에서 강화터미널행 버스 탑승.
2.강화대교를 건너서 바로 강화 청소년수련관 버스 정류장에서 하차. 
2-1.또는 지하철 5호선 송정역에서 강화행 버스로 환승하여 강화 청소년수련관 버스 정류장에서 하차. 
3.버스 정류장 앞 횡단보도를 건너서 왼쪽으로 약 600m 정도 가면 강화전쟁박물관. 

오는편
1.2코스 도착지인 초지진에서 해안관광 순환버스(1번)를 타고 강화터미널에서 하차.

 

TIP

 

화장실 

강화전쟁박물관, 오두돈대 앞, 광성보, 덕진진, 초지진 등.

 

식사 

더리미 장어마을의 장어 요리가 있지만, 부담 없이 먹기에 적당치 않다.

도시락을 준비하는 게 좋다. 

 

길 안내

안내판과 이정표가 잘 설치되어 있다. 전쟁박물관 매표소에서 강화나들길 지도를 받을 수 있다.  

 

코스 문의 

사단법인 강화나들길 032-934-1906

 

 

글, 사진: 진우석(여행작가, mtswam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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