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울진] 신록으로 샤워를 한 여름날 하루, 자연이 자연 그대로인 생명의 길을 걷다

2017-07 이 달의 추천길 2017-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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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친근한 나무다. 수없이 많은 나무 종이 우리 산하에서 자라지만 소나무는 각별하다. 옛사람들은 소나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일생을 살았다. 먼저 온통 소나무로 만든 집에서 태어났고, 금줄에 숯과 고추나 종이와 함께 생솔가지를 끼워 세상에 났음을 알리고 무병장수를 기원했다. 걷기 시작하면서 등 굽은 소나무가 지키던 뒷동산에 올라 뛰어놀았고, 소나무 장작이나 솔가지로 불을 지펴 밥을 하고 난방도 했다.

 

 

금강소나무숲길 들머리에서 만난 패랭이꽃. 빛깔이 너무 곱게 펴 있었다.

 

 

솔잎은 우리 조상들에게 있어 생활밀착형 소재였다. 취사할 때 불의 힘을 조절하기에 가장 좋은 재료였고, 싱싱한 솔잎을 따 송편을 만들어 먹고, 소나무 꽃에서 채취한 가루인 송화는 여러 음식의 재료와 훌륭한 약재가 되었다. 그래서 이름을 솔갈비로까지 치켜 올려 불렀다. 소나무로 만든 숯은 겨울철 최고의 실내난방용 연료였고, 소나무 껍질은 송기떡을 만들어 먹는 등 훌륭한 구황식물이었다. 가을날 소나무 아래서 솟아나는 송이는 식품가치가 매우 높아 궁중 진상품에 이름을 올릴 만큼 귀한 대접을 받았다.

이처럼 온 생을 소나무와 가까이 살다가 죽어서도 소나무로 짠 관에 묻혔다. 이는 그만큼 우리 산하에 소나무가 흔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소나무가 가진 여러 이로운 효능을 일찍부터 알아 생활 전반에 가까이 두는 때어난 안목 덕분이기도 했다그러나 안타깝게도 최근 들어 소나무가 우리 땅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다. 솔잎혹파리와 이상 기후, 여러 요소들로 인해 소나무 서식지가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한때 산 전체를 푸르게 뒤덮었던 소나무는 참나무를 비롯한 생명력 강한 활엽수들과의 경쟁에서 밀리며 산등성이로 자꾸만 몰리고 있다. 그래서 요새 산에서 건강한 소나무 군락지를 만나면 동지섣달에 꽃을 만난 듯 반갑기 그지없는 것이다.

 

 

출발지에서 본 내성행상불망비. 주변 바위와 어우러진 모습이 한 폭의 동양화다.

 

 

금강소나무 1번지, 울진

 

소나무가 아름답기로 나라 안에서 으뜸으로 꼽히는 곳이 울진이다. 신라의 김유신 장군이 빽빽한 숲이 많음을 보고 이름 붙였다는 울진엔 아름드리 금강소나무로 울창한 무인지경의 숲이 허다하다. 금강소나무숲길은 울진에서도 가장 오지로 통하는 북면 두천리와 금강송면 소광리 일대를 가로지른다.

 

 

선질꾼비라고도 부르는 내성행상불망비. 특이하게 철로 만들었다.

 

 

이 길은 조선시대부터 구한말까지 보부상들이 이용하던 동서무역로 중 일부다. 하루에 다녀올 수 있을 정도의 거리를 두고 형성되어 있던 시장을 돌면서 각지의 물화(物貨)를 유통시키던 보부상은 보상(褓商)과 부상(負商)을 총칭하는 말. 보상은 값비싼 사치품이나 세밀한 기술을 요하는 고급품을, 부상은 일상적인 용품을 주로 취급했다. 보자기에 싸서 들거나 질빵에 걸머지고 다니며 판매하던 보상을 봇짐장수’, 상품을 지게에 얹어 등에 짊어지고 다니며 판매하던 부상을 등짐장수라고도 불렀다. 이 길을 이용하던 보부상들은 울진의 흥부장과 죽변장, 울진장에서 미역과 소금, 어물을 구매해 쪽지게에 지고 십이령을 넘어 봉화장과 주변 시장에 가서 담배나 의류, 잡화, 곡식 등과 바꾸거나 구매해 돌아왔다고 한다.

금강소나무숲길 1구간 출발지인 두천1리 원두막주차장에서 남대천 상류 개울을 건너자 오른쪽에 작은 비각 하나가 눈길을 끈다. 비각 안에 철로 만든 두 개의 비가 보인다. ‘울진내성행상불망비. 십이령 길을 이용하던 보부상 무리의 두령인 접장 정한조와 고문인 반수 권재만의 은공을 기리고자 세운 것으로 선질꾼비라고도 부른다. 입구부터 예사롭지 않은 유적을 만나고 보니 이 숲길에 대한 기대감이 한층 더 커진다.

 

 

개울을 건너며 시작되는 금강소나무숲길 1구간. 보부상들이 애용하던 십이령고갯길이기도 하다.

 

 

비각 옆 장승을 지나며 본격적으로 금강소나무숲길이 시작된다. 첫 번째 작은 고개를 앞둔 오르막에서 우리를 안내하던 숲해설가 전용운씨가 길 한복판에 놓인 시커먼 물체를 가리킨다.


 

이것은 동물의 배설물인데 자세히 보면 털만 수북하죠. 우리나라에 몇 안 남은 육식동물 중 최상위에 있는
삵의 배설물입니다. 오늘 여러 번 만나실 겁니다. 그만큼 이 숲의 생태계가 잘 보존되고 있다는 증거죠.

 

 

내성행상불망비에 얽힌 선질꾼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숲해설가 전용운씨. 길은 장승 옆으로 이어진다.

 

 

국제적 멸종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 제217호로 지정된 산양도 많이 살고 있다며 그의 울진 자랑이 이어진다.

 

울진은 삼다와 삼욕의 고장입니다. 삼림욕과 온천욕, 해수욕을 즐기기에 그만이고, 금강소나무와 송이, 대게가 많이 나죠. 그이것들은 또 삼출의 품목이어서 금강소나무는 한양의 궁궐로, 송이는 일본으로, 대게는 영덕으로 나갔습니다.


바닥에 눈깔사탕만한 초록색 열매 하나가 보인다. 돌배다. 고개를 드니 커다란 돌배나무 두 그루가 탐스런 열매를 주렁주렁 달고 있다. 가을엔 이 길이 무척 향기롭겠다. 출발한 지 1시간쯤 지나 닿은 첫 고개 바릿재. 바람이 시원하다.

 

무거운 짐을 지고 오르던 보부상들에게도 이 고개가 얼마나 반가웠겠습니까? 그러나 값비싼 물건을 진 지게가 혹 넘어질까 봐서 지게를 내리지도 못하고 선 채로 쉬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그렇게 서서 쉰다고 보부상들을 ‘선질꾼’이라고 불렀습니다. 또 주로 소금을 지고 다녔기에 ‘등금쟁이’라고도 했어요.

 

흥미진진한 그의 이야기에 일행의 귀가 더욱 쫑긋해진다.


 

금강소나무숲길에서 자주 만나는 이정표. 아무런 설명이 없이 절제된 그림으로 마무리한 담백함이 돋보였다.

 

 

최고의 식물원과 최고의 해설가


바릿재를 내려선 곳에서 임도를 만난다. 갈림길마다 나타나는 예쁜 이정표. 단단한 통나무판에 꼭 필요한 정보만 새겨 담은 담백함이 눈길을 끈다. 임도를 따라 조금 오르자 오른쪽에 공사 중인 건물이 보인다. 서울에서 왔다는 이가 부근에 수만 평의 땅을 매입해 울타리를 두르고 정원을 꾸미며 집을 짓고 있다고. 무인지경일 것이라 여겼는데, 예상치 못했던 풍광에 모두들 의아해 한다.

 

 

바릿재를 내려서서 만난 메밀밭.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에 나오는 것처럼 ‘소금을 뿌려놓은 듯한 풍광이다.

 

 

그 집 앞 고갯마루의 밭이 온통 하얗다. 가까이 가서 보니 메밀꽃이다. 보통은 8월에서 10월께나 볼 수 있는데 6월에 메밀꽃이라니, 신기하면서도 기분 좋다. 서울에서 왔다는 그 이가 숲길을 걷는 이들을 위해서 심었다고 한다.

 

 

앞으로 넘어야 할 샛재를 가리키는 숲해설가 김동극씨.

차라리 보지 말 것을…. “가노 가노 언제 가노~” 까마득하다.(왼쪽) /

참꽃겨우살이라고도 부르는 꼬리진달래. 한여름에 피는 꽃으로, 질달래와 달리 겨울이 되어도 잎이 떨어지지 않는다.

 

 

야콘이 자라는 밭을 지나자 이내 차단봉이 설치된 고갯마루다. 출발 후 2킬로미터 지점이다. 여기서부터 숲해설가가 김동극씨로 바뀐다. 탐방객이 적은 평일은 한 구간을 몇 개의 소구간으로 나눠 여러 명의 숲해설가가 해설을 한단다. 인사를 나누고 잠시 쉬었다가 출발하려는데 김동극씨가 까마득히 보이는 능선의 한 곳을 가리킨다.


저 멀리 능선에서 살짝 패인 부분이 샛재입니다. 금강소나무숲길 1구간에 포함된 십이령 네 고개 중 두 번째 고개죠.
점심을 먹고 저 고개를 오를 겁니다.

 

산을 다니다보면 어떤 지점이 보기보다 멀거나 가까울 때가 있는데, 후자의 경우이기를 바라며 걸음을 재촉한다.



바릿재를 내려와 만난 임도가 한동안 이어진다. 이 구간에서는 땡볕을 피할 수 없다.(왼쪽) /

금강소나무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 김동극씨. 금강송 둥치는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때깔을 가졌다.

 

 

길은 그 어떤 식물원도 비교가 안 되는 풍성한 식생을 보여준다. 산수국과 나리꽃, 꽃망울만 맺은 비비추와 삽주, 참꽃겨우살이라고도 부르는 꼬리진달래에 껍질의 독성을 이용해 고기를 잡았다는 가래나무와 산초나무, 머루, 다래덩굴까지, 김동극씨의 맛깔난 해설이 곁들여지며 숲은 흥미를 더해간다.

 

 

이 날 종일 이런 하늘 아래로 걸었다.

옷을 쥐어짜면 푸른 물이 뚝 뚝 떨어질 만큼 신록으로 샤워를 한 하루였다.(왼쪽)/

가래나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껍질에 독성분이 있어서 빻아 물에 풀어 고기를 잡았다고 한다.

 

개울에 놓인 기분 좋은 돌다리. 이런 개울을 꽤 많이 건넌다.

 

 

까치수영과 익모초, 층층나무, 엉겅퀴, , 쉼 없이 등장하는 숲의 주인공들을 살피느라 걸음이 조금씩 느려지나 싶더니 땡볕이 내리쬐는 임도를 벗어나 계곡으로 들어선다. 햇볕 한줌이 들지 않을 만큼 빼곡한 숲길, 머리 위론 녹색의 차양을 덮어둔 듯 온통 신록의 이파리로 가득하다. 신록으로 샤워를 하는 길. 반짝이는 그 푸름이 마음속의 모든 찌꺼기까지 다 씻어내는 듯 상쾌하다.

 

 

이토록 맛있는 비빔밥이 6000원이라니!


잘 생긴 금강소나무. 어른 두 명이 안아야 팔이 닿을 만큼 굵다.(왼쪽) /
‘황장봉산(黃腸封山) 동계표석(東界標石)’. 개울 건너편 바위 아래에 새겨져 있다.


이윽고 만난 아름드리 금강송. 어마무시한 굵기와 하늘을 찌를 듯 치솟은 수형에 모두 감탄을 금치 못한다. 잘 생겼다는 말로는 설명이 턱없다. 옛날엔 이 정도의 나무가 흔해빠졌다는데, 일제가 좋은 소나무를 다 베어 나간 통에 지금은 수령 삼사백 년짜리 특급 소나무를 보기 힘들어졌단다. 일제의 만행은 이렇듯 우리 땅 구석구석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길옆에 뜬금없는 안내판이 보인다. ‘황장봉산(黃腸封山) 동계표석(東界標石)’에 대한 것이다. 계곡 건너편의 임도 절벽 아래에 황장봉산(黃腸封山) 동계조성(東界鳥城) 지서이십리(至西二十里)’라고 새겨져 있단다. 풀이하면 황장봉산의 동쪽경계는 조성으로부터 서쪽으로 이십 리라고. 황장봉산 제도는 양질의 소나무인 황장목을 확보하기 위한 조선시대의 산림보호 정책으로, 이 일대에서 두 곳의 황장봉표가 발견되었다. 이곳 금강소나무숲의 가치가 어떠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울창한 숲을 빠져나오는 일행. 덕분에 자외선에 대해서 잊고 지낸 하루(왼쪽) /
찬물내기 쉼터에 세워진 금강소나무 숲길 안내판. 전 구간에 대한 친절한 개념도다.


소나무는 여러 종류로 나뉜다. 먼저 바닷가에서 주로 자라는 해송과 내륙지방에서 자라는 육송으로 구분된다. 육송 중에서도 경상북도 북부지방과 강원도, 금강산 등지에서 나는 소나무는 특히 재질이 우량하여 춘양목(春陽木)이라 불리며 귀중한 목재로 취급되어 왔다. 춘양목은 나무의 굵기가 굵은 반면 나이테의 너비가 좁고 고르며 결이 곱고 광택이 있어 이용가치가 높았다. 왕실 또는 귀족들의 관재로 삼기 위해서 소나무숲이 보호된 바 있는데, 굵게 자라서 안쪽의 심재가 황적색을 띤 것을 황장목(黃腸木)이라 하였다.



찬물내기 쉼터에서 먹은 점심. 제철채소와 지역 산나물로 차려낸 산채비빔밥이다.
아침에 캐서 삶아 온 햇감자는 후식이다.


잠시 후 만난 찬물내기’. 그늘 쉼터와 화장실까지 갖추고 있다. 금강소나무숲길 1구간의 점심 장소다. 마을주민 한 분이 준비한 식사를 차량으로 싣고 와 배식준비까지 마치고 기다리고 있다. 메뉴는 제철채소와 이 지역의 산나물로 차린 야채비빔밥. 그야말로 꿀맛이다. 오늘 캐서 삶았다는 감자와 달콤 시원한 감주를 후식으로 내놓는다.

기분 좋은 식사를 마치고, 물통을 채운 후 다시 출발한다. 안내를 하는 숲해설가도 여기서 키가 훤칠한 김동구씨로 바뀐다. 15분 후에 형형색색 예쁜 바가지가 걸린 샘을 만난다. 나라 안이 이토록 가문데도 샘은 맑은 물로 가득하다. 한 바가지 들이키니 온 몸이 맑아지는 느낌이다


찬물내기를 출발해 만난 샘. 전국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가뭄에도 샘은 맑은 물로 가득 차 있었다.(왼쪽) /
샛재 오르기 전에 만난 ‘할아버지 할머니 금강소나무’. 지금은 점점 사이가 멀어지고 있다고.

 

 

 

오르막길에서 거대한 소나무 두 그루를 만난다. ‘할아버지 할머니 소나무라고 한다. 원래 금슬 좋게 붙어 있었는데, 지금은 서로 멀어지고 있다고.

 

 

심금을 울리던 ‘선질꾼의 노래’


바람이 지나는 길목인 샛재에서 천연 바람을 만끽하고 있는 일행. 1구간 중 가장 높은 지점이다.

 


5분쯤 더 오르자 아까 까마득히 멀어 보이던 샛재다. 골짝을 타고 불어온 바람이 에어컨 부럽지 않다. 지나온 길이 7.6킬로미터, 남은 길이 5.9킬로미터다. 이정표만 봐도 힘이 난다. 샛재 바로 아래에 성황당이 있다. 최근 서까래를 교체하는 등 보수를 마쳤다. 모두 모여 절을 하며 트레킹의 무사 완주를 기원한다. 성황당 옆으로 샛재를 넘나들던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을 것만 같은 450년 수령의 소나무가 우람한 자태를 자랑하며 서 있다.

 

 

십이령을 넘나들던 이들이 무사평안을 기원하던 조령성황당. 샛재 고갯마루 바로 아래에 있다.

 

 

이제부터 내리막길입니다. 길이 예쁘죠? 마치 애기 피부 같은 길입니다.

 

 

조령성황당과 450년 수령의 금강소나무. 십이령을 넘나들던 보부상들의 애환을 저 둘은 기억하고 있을까?(왼쪽) /

샛재 아래의 주막터. 화전민 소개령으로 떠난 이들이 썼을까? 녹이 슬고 깨진 무쇠솥 두 개가 길옆에 나뒹굴고 있었다.

 

 

성황당 아래에 주막이 있었던 모양이다. 녹슬고 깨진 무쇠솥 두 개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주막 앞의 1842년에 세웠다는 불망비는 거대한 바위를 기단석으로 삼았다. 이 주막에서 성황당도 관리했단다. 최근까지도 사람이 살았지만 1968년 울진 삼척 무장공비침투사건 이후로 화전민 소개령이 내려지며 모두 정착촌으로 떠나갔다고 한다.

 

 

샛재 아래의 주막터에 있는 불망비. 거다란 바위를 통째 기단석으로 삼았다.

 

샛재를 내려온 곳에서 만난 아들소나무. 샛재 너머의 할아버지 할머니 금강소나무의 자식들이란다.

이들도 서로 사이가 멀어지고 있었다.

 

 

내려서는 길에 김동구씨가 잎이 무성한 덩굴식물 하나를 가리킨다.

 

이게 오미자입니다. 옛날엔 일대에 오미자가 많았는데, 최근엔 많이 줄었죠. 나무 중에 끝에 ‘자’가 붙은 것은 모두 몸에 좋은 것들입니다. 이 오미자를 비롯해 구기자와 복분자 같은 나무가 그렇습니다.

 

 

대왕송 갈림길에서 ‘선질꾼의 노래’를 들려주고 있는 숲해설가 김동구씨.

그의 구성진 목소리가 더해지며 노랫말은 더욱 애잔하게 다가왔다.

 

 

숲해설가들이 들려주는 금쪽같은 이야기 때문에 금강소나무숲길을 걸으며 상식 수준이 엄청나게 업그레이드되는 느낌이다. 이윽고 만난 대왕송코스 분기점 삼거리. 김동구씨가 걸음을 멈추고 선질꾼의 노래를 들려준다.


미역 소금 어물 지고 대성장을 언제 가노
대마 담배 곡물 지고 흥부장을 언제 가노
한양 가는 선비님도 이 고개를 자고 넘고
오고 가는 원님들도 이 고개를 쉬어 넘네
꼬불꼬불 열두 고개 조물주도 야속하다
가노 가노 언제 가노
시그라기 우는 고개
이 고개를 언제 가노


심금을 울린 그의 노래가 끝나자 모두 환호로 답한다. 김씨의 구슬픈 가락이 더해진 노래를 듣고 있자니 길 위에서 들꽃을 꺾어 혼인하고 주막에서 아이를 낳아 기르던 가난한 상인인 옛 보부상들의 애환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간다.

 

 

 

대광천초소 직전의 개울. 비교적 넓고 평탄한 지역이라서 갈대도 보인다.

 

 

초롱꽃과 터리풀, 꿀풀도 보고 몇 번의 개울을 건넌 후 만난 대광천초소. 널찍한 터에 통나무의자가 여러 개 놓여 있다. 초소 앞개울 건너에 화장실도 있다. 보부상의 노래를 들려주던 김동구씨와는 여기서 헤어지고 마지막 소구간은 숲해설가 김동현씨가 안내를 맡는다.

 

 

대광천초소. 쉬어갈 수 있는 벤치와 화장실도 있다.

 

 

대광천초소에서 날머리 금강송펜션까지는 너삼밭재와 저진터재 두 고개를 넘어야 한다. 너삼밭은 부인병에 특효약이라는 너삼이 많아 이름 붙었고, 땅이 젖어있어서 저진터라 불린다고 한다. 고갯길이 험하진 않아도 먼 길을 걸어온 후에 만난 터라 살짝 숨이 가쁘다. 

 

 

너삼밭공터로 이어진 개울. 너른 개울바닥을 물억새와 갈대가 뒤덮었다.(왼쪽) /

너삼밭재를 향해 오르고 있는 일행. 주변은 온통 단풍나무다. 가을이면 환상적인 빛깔을 보여준다고.

 

 

마지막 고개인 저진터재에 세워진 이정표를 보니 날머리까지 남은 거리가 700미터다. 내려서는 길을 따라 밭뙈기들이 보인다. 울타리를 타고 인동덩굴이 자라는 산골. 하루에 버스가 두 번 들어온다는 두메산골 소광리의 집들이 보이며 트레킹이 끝난다.

 

 

너삼밭재 오름길에 만난 샘. 이곳은 가뭄에 물길이 끊겼다.

 

1구간 마지막 고개인 저진터재. 이 날 함께 걸었던 일행이 기념촬영을 했다.(왼쪽) /

1구간 종점인 소광2리의 한 집. 겨울을 대비해 쌓아둔 장작더미가 눈길을 끈다.

 

 

길 안내


금강소나무숲길은 옛 보부상들이 울진에서 미역과 소금, 어물을 지고 봉화에 가서 대마와 담배, 콩으로 바꿔 돌아오던 무역로인 울진 십이령 보부상길을 복원한 길이다. 금강소나무숲길 1구간에서는 십이령 중 바릿재와 샛재, 너삼밭재, 저진터재 네 개의 고개를 만난다. 길은 이 네 개의 큰 고개를 중심으로 수없는 골짜기와 물길, 임도를 드나들며 이어진다. 전체적으로 울창한 숲속을 지나기에 거의 해가 들지 않으며, 계곡물소리와 새소리, 바람소리가 길을 걷는 내내 끊이지 않는다. 곳곳에서 만나는 아름드리 금강소나무의 위용은 이 길에서 만나는 최고의 즐거움이다. 전문 지식을 갖춘 숲해설가가 동행하며 탐방객의 안전한 탐방안내는 물론, 길에서 만나는 자연과 십이령길, 보부상에 얽힌 재미난 이야기도 들려준다. 

숨이 찬 몇 곳의 고개를 만나고, 길이도 짧지 않지만 비상시 탈출할 수 있는 지점이 중간에 있다. 1구간 중 두 곳의 샘이 있고, 점심 때 식사와 함께 식수를 준비해 오기에 물통을 채울 수 있다. 탐방 3일전까지 구간별로 인터넷예약(www.komount.kr)을 하면 된다. 숲해설가가 동반해서 숲길탐방이 진행된다. 탐방일 09:00에 탐방이 시작된다. 매주 화요일은 숲길 휴식의 날이다. 

 

 

코스 요약

두천1리 원두막주차장내성행상불망비바릿재장평황장봉산 동계표석찬물내기샛재(조령성황당)
주막터대광천너삼밭너삼밭재저진터재소광2
(13.5km, 7시간)


교통편

출발지인 두천1리로 가려면 울진버스터미널 바로 앞에서 06:40, 13:15, 16:25, 18:05에 출발하는 버스를 이용. 요금은 1,500.
소광2리에서 울진으로 나가는 버스는 16:30에 출발한다. 이 버스가 울진을 거쳐 출발지인 두천1리까지 간다.
두천리까지 1시간 걸리며, 울진까지 1,500, 두천리까지는 3,000원 받는다.
도착지인 소광리는 울진버스터미널에서 08:05, 15:20 두 차례 버스가 들어간다. 요금은 1,500. 1시간쯤 뒤에 되돌아 나온다.

 


TIP

 

화장실
출발지와 도착지, 점심식사 장소인 찬물내기와 대광천초소에 화장실이 있다.

음식점 및 매점
예약시 아침과 점심식사를 주문할 수 있다. 각각 6000원이며, 두천리 주민들이 직접 농사지은 싱싱한 재료로 상을 차려내기에 때마다 메뉴가 달라진다. 아침식사는 두천리로 오전 730분까지 와야 하며, 주민들이 돌아가며 준비하기에 장소는 때마다 다르다.
점심은 트레킹 중간지점인 찬물내기로 주민들이 직접 배달해 준다.
날머리인 소광2리에 식사와 막걸리, 파전과 감자전도토리묵 등을 파는 십이령주막(054-782-9201, 010-9775-4645)’이 있다.
동해 청정 바다를 끼고 있는 울진엔 싱싱한 해산물을 이용한 횟집과 중화요리, 대게전문점이 많다. 죽변면의 제일반점(054-782-3466), 후포면의 고바우한중식(054-788-1116), 울진버스터미널 부근 청목신신짬뽕(054-781-2278)은 해산물짬뽕으로 유명하다.


코스 문의
금강소나무숲길 안내센터 054-781-7118, 782-6118
www.komount.kr 한국등산트레킹지원센터

 


글, 사진: 이승태 (여행작가, jirisan0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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