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광역시 중심부를 흐르는 태화강이 동해와 몸을 섞는 곳, 울산만이다. 이곳 울산만은 울산이 공업도시로 성장하기 훨씬 이전부터 외국과 교역하던 중요한 관문이었다. 방어진과 염포, 대왕암 등의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지금 울산만과 동해에 기대어 사는 마을은 울산 동구다.
울산 동구를 위성지도로 보면 바닷가 쪽은 공장지대이고 그 안쪽으로 사람들이 사는 공간이 들어서 있다. 이런 공단과 도심의 삭막함을 눅여 주는 것이 염포산과 마골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다. 그리 높지 않은 산들이지만 도심의 허파 노릇을 충실하게 하고 있다. 아니 어쩌면 나지막한 산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찾는지도 모른다.
마을과 가까운 산이라서 이 산줄기에는 등산로도 여럿이다. 울산에서는 이런 등산로들을 이어 길을 엮어냈다. 울산어울길이다. 모두 일곱 코스로 울산 도심 외곽의 녹지를 따라 말굽처럼 이어진다. 울산어울길의 시작이 동구의 염포산이다. 200m 남짓 되는 순한 산이지만 능선에 서면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울산만을 지키던 언덕
길을 여는 곳은 신라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 시절에 창건했다는 월봉사부터다. 조선시대에는 해안가와 섬 등에 나라에서 쓸 말을 기르는 목장을 운영했는데 이곳 방어진에도 목장이 있었다. 목장 둘레에는 말이 도망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돌로 담장을 쌓았는데 이를 마성(馬城) 이라고 한다. 월봉사는 마성 안에 위치하고 있기에 말의 안녕을 빌고, 말의 영혼을 달래는 기능도 한 것으로 전해진다.



곰솔 숲 가운데에 조금 솟아오른 곳이 봉수대터인데 울산만과 방어진을 지키던 곳이다
봉수는 과거의 군사통신제도다.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횃불로 국경과 해안의 상황을 중앙에 알렸다. 고려 말부터 시작되었지만 조선 세종임금 시절에 체제가 정비되었다. 봉수는 평상시에는 한 줄기의 연기나 횃불을 올렸고, 적이 나타나면 둘, 적이 국경에 접근하면 셋, 적이 국경을 넘어오면 넷, 적과 싸우게 되면 다섯 개의 연기나 횃불을 올렸다. 이곳 울산만은 오래전부터 왜구의 침입이 끊이지 않던 곳이어서 화정천내봉수대는 아주 중요한 봉수대였다. 조선말까지 유지되던 봉수대는 전화와 전보가 보급되면서 폐지되었다.
울산대교 전망대
봉수대를 지나 부지런히 걸음을 옮긴다. 오르내림은 얼마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계속 올라가는 길이다. 그렇다고 힘이 드는 것은 아니다. 유순한 임도를 따라 길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조금 경사가 있는 언덕을 다 오르면 울산대교 전망대가 우뚝 서 있다.

울산대교 전망대, 울산대교, 태화강, 산업단지의 모습이다 (사진 : 울산 동구청 제공)
울산대교 전망대는 높이가 63m 이고, 전망대가 딛고 서 있는 언덕 화정산의 높이가 140m 라서 전체 높이는 203m 다. 그런데 이
203이라는 숫자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울산대교 주탑의 높이가 203m이고, 울산대교 전망대 뒤로 이어진 염포산의 높이가 또
203m 다. 울산대교 전망대, 울산대교 주탑, 염포산의 높이가 모두 203m 인 것이다.
울산대교 전망대로 오르면 울산대교는 물론 울산의 젖줄인 태화강, 울산만, 방어진, 일산해변, 동해와 함께 울산의 3대 산업인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공단 등이 발아래로 잡히고 멀리는 울산을 둘러싼 산줄기들까지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울산대교 전망대 인근에 있는 옛 전망대
울산대교 전망대를 내려와서 잠깐 걸으면 땅 위에 바로 만든 다른 전망대다. 이곳도 해발 140m는 되는 곳이라서 울산대교 전망대가 세워지기 전까지는 인기 있는 장소였지만 바로 옆에 비교도 되지 않는 높디높은 전망대가 생기자 그만 효용을 잃었다.
염포산을 오르다
능선을 따라 염포산 정상으로 향한다. 염포산 높이가 해발 203m 라서 비고(比高)는 60m 정도다. 염포산까지 거리가 3km 정도 남았고 비고 60m 니까 평지나 다름없다. 염포산으로 오르는 길은 산악자전거도 다닐 수 있는 길이다.
동구청에서는 염포산에서 산악자전거대회를 정기적으로 개최한다. 올해로 9회를 맞은 대회라서 연륜도 있다. 그래서인지 걷는 사람들 사이로 자전거를 탄 사람들도 제법 보인다. 서로 조심하고 배려하면 문제없이 같이 즐길 수 있다.




산꼭대기에 핀 매화가 봄이 왔음을 알리고 있다
염포산 정상을 지척에 둔 길가에 매화나무 몇 그루가 꽃을 피웠다. 매화나무는 매실나무라고도 한다. 같은 나무지만 목적에 따라서 이름을 나누어 부르는 것이다. 열매인 매실 채취가 목적이라면 매실나무, 꽃을 감상할 목적으로 키운다면 매화나무라고 한다. 조선의 선비들은 ‘매란국죽’ 사군자 중 하나로 매화를 사랑했고, 퇴계 선생께서도 돌아가시기 전에 ‘저 매화나무에 물을 주라’고 했을 정도로 매화나무를 사랑하셨던 분이다.
염포 가는 길
염포산 정상에 있는 정자 오승정을 뒤로 하고 산을 내려간다. 1km쯤 이어지는 내리막길인데 이 길에도 봄이 찾아왔다. 진달래도 곳곳에서 수줍은 자태를 보이고 있고 생강나무도 여럿 만나게 된다. 산길이 끝나면 방어진순환도로로 내려서게 되고 걸음을 마칠 염포 119안전 센터는 지척이다. 염포삼거리에 ‘삼포 개항지 염포’라는 표석이 서 있다. 무슨 뜻일까?

해발 203m 의 염포산 정상-울산대교 전망대, 울산대교 주탑 등도 모두 203m 다


염포삼거리에 있는 ‘삼포 개항지 염포’ 표석
삼포(三浦)는 조선 세종 시절 왜인들의 왕래와 거주를 허가한 세 포구다. 부산포(지금의 부산광역시 동래구), 내이포(지금의 창원시 진해구), 염포(지금의 울산광역시 방어진 부근)를 말하는데, 염포는 세종 때인 1426년 개항하였다. 이후 부산포에 거주하는 왜인들의 숫자를 줄이기 위해 염포에 왜관을 설치했으나 왜인들은 법을 어기고 상주인원이 늘어났다. 이는 후에 삼포왜란의 원인이 된다.
염포(鹽浦)라는 이름은 ‘소금이 나는 바닷가’ 라는 뜻인데, 이는 이 지역에서 소금을 많이 생산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생산하던 소금은 염전에서 바닷물을 증발시켜서 만드는 천일염이 아니고, 바닷가에서 1차로 염도가 높은 바닷물을 만들고 그 바닷물을 가마솥에서 끓여서 만드는 자염(煮鹽)이었다. 일제강점기 시절 천일염이 들어오기 전까지 우리나라에서 만들었던 전통 소금이 바로 자염이다. 염포는 이 자염을 만들었던 곳이다.
염포삼거리에 길을 따라 이런 이야기들을 간단하게 소개해 놓았다. 걸음도 끝났고 해서 하나하나 읽다 보니 좀 더 자세한 내용이 알고 싶어진다. 기다리는 버스는 아직 멀었다. 버스정류장 벤치에 앉아 인터넷을 뒤진다.
▶ 걷기 여행 코스
총 6km
월봉사(울산 동구 화정동 893번지)~화정 천내봉수대~입암골~제1전망대~쑥밭재~큰골~화정산삼거리(전망대)~염포산~염포삼거리
▶ 총 소요 시간
3시간
(순 걷는 시간. 답사시간, 간식시간, 쉬는 시간 등은 포함하지 않음)
▶ 난이도
보통
▶ 교통편
[찾아가기]
- 울산 동구 화정동 화정주공아파트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200m 정도 걸으면 월봉사 주차장이다.
101번, 106번, 107번, 114번, 126번, 131번, 134번, 1401번
- 울산역 앞에서 5001번(꽃바위행) 리무진버스를 타고 화암중학교 버스정류장에서 내린다.
길 건너 버스정류장에서 101번, 131번 버스를 타고 화정주공아파트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200m 정도 걸으면 월봉사 주차장이다.
[돌아오기]
- 염포삼거리 부근 성내 버스정류장에 울산 각 방면으로 가는 버스가 많이 있다.
- 염포삼거리 부근 성내 버스정류장에서 아무 버스나 타고 두 정류장 가서 성원상떼빌 버스정류장에서 내린다.
내린 자리에서 5002번(울산역행) 리무진버스를 타고 울산역에서 내린다.
* 주차장 : 시작 지점인 월봉사 앞에 주차장이 있다.

글, 사진: 김영록 여행작가 (걷기여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