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담양] 메타세콰이어길이 있는 '담양 오방길 05코스 누정길'

2019-09 이 달의 추천길 2019-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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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롱나무 꽃 붉은 정자와

원림의 땅

'담양 오방길 05코스 누정길

일부 구간'

이승태 여행작가


잎 서걱대는 소리가 매력적인 죽녹원과 강바람 맞으며 걷기에 더할 나위 없는 관방제림, 도무지 현실적이지 않아 보이는 메타세쿼이아길까지! 다른 지방에서는 하나만 있어도 원이 없을 것 같은 최고의 관광명소가 석류알처럼 모인 곳이 담양이다. 그래서 담양에서는 어지간해서는 관광안내도에 명함도 못 내민다.

또 담양은 정자와 원림과 별서의 땅이다. 나라 안 이름 있는 정자는 담양에 다 모인 듯 그 수가 많고, 하나같이 절경이다. 이들 정자와 원림은 정계로 진출했다가 벼슬에서 물러나거나 조선시대를 뒤흔들었던 온갖 당파싸움에서 밀려난 이들이 고향으로 돌아와 자연에 묻혀 여생을 보내던 곳이다. 한거(閑居)와 은둔의 땅이며, 학문과 세상사에 대한 토론과 문학이 꽃 핀 땅이 담양이다. 면앙정과 송강정, 명옥헌, 식영정, 소쇄원, 환벽당에 취가정, 독수정 등 영산강과 그 지류, 무등산 자락에 흩어져 있는 이들 정자와 원림은 독특한 정자문화권을 이뤘고, 여기서 아름다운 가사문학이 태동했다.

이토록 아름다운 정자와 원림을 보석처럼 한 줄에 꿰며 담양 오방길 5코스 누정길이 이어진다.

술 없이도 취하는 숲, 명옥헌원림


산덕마을 입구에 나를 내려준 181번 버스는 할머니 한 분만 태운 채 창평면 쪽으로 꽁무니를 감춘다. 식당(고산촌집)이 하나 있지만 산덕마을은 쥐 죽은 듯 조용하다. 명옥헌원림은 포도가 익어가는 산덕리 너머의 후산리 안쪽에 있다. 맥문동과 하늘타리 꽃이 눈길을 끄는 길을 걸어 명옥헌까지는 1킬로미터쯤이다.

오전 7시 조금 넘어 도착했는데도 명옥헌원림엔 꽤 많은 이들이 보인다. 8월 중순은 1년 중 명옥헌원림이 가장 아름다운 때로, 명옥헌의 상징과도 같은 배롱나무 노거수에 붉은 꽃이 만발한다. 원림 전체가 앵글에 들어오는 언덕엔 삼각대가 늘어섰고, 연못 주변에도 대포 같은 망원렌즈를 단 카메라들이 전깃줄에 앉은 참새떼 같다. 그나저나 정말 황홀한 풍광이다. 배롱나무가 이토록 아름다운 꽃나무였는지, 새삼스럽다. 명옥헌은 울창한 배롱나무숲에 가려 지붕 한 귀퉁이만 보인다. 배롱나무 붉은 꽃에 취할 것 같은 명옥헌원림. 사진에 담기도 아까운 풍광 속으로 천천히 걸어가 본다. 며칠 전에 내린 비에 떨어진 붉은 꽃잎이 연못에 가득이다.

나무둥치를 손으로 건드리면 가지가 흔들린다고 해서 ‘간지럼나무’, 꽃이 여름 내내 피고 진다고 해서 ‘목백일홍’이라고도 부르는, 중국이 원산지인 배롱나무가 이곳 명옥헌 주변에 심어진 때는 1652년이다. 인조반정 후 문과에 급제해 한림원 기주관을 지낸 오희도(1584~1624)의 넷째 아들 오명중(1619~1655)이 아버지가 살던 이곳에 명옥헌을 짓고 연못 두 개를 판 후 주변으로 배롱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370년 가까이 된 나무들인 셈이다.



붉은 꽃 아래로 난 오솔길을 따라 오른 명옥헌. 한 나무인 듯 길게 이어진 배롱나무숲의 붉은 꽃들이 점점이 눈부시고,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아름드리 느티나무 둥치가 이 원림의 세월을 가늠케 한다. 시원한 정자 마루에 앉아 조선의 지식인들이 읊조리던 그 풍류의 품격에 나도 취해 본다. 술에 취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묘한 감동이 느껴진다. 이 멋진 자연과 함께 한거와 은둔에 들었다니, 조선 선비들의 사치(?)가 한없이 부러워지는 순간이다.

배롱나무꽃 흐드러진 들녘


명옥헌원림을 벗어난 길은 덕촌마을을 만나기까지 남쪽 들녘을 가로지르며 1.5킬로미터쯤 차도를 따른다. 만나는 밭뙈기마다 배롱나무 한두 그루는 기본이고, 길 옆 가로수도 죄다 배롱나무다. ‘담양의 여름은 배롱나무’라는 인상이 절로 마음에 새겨진다. 죽녹원과 관방제림, 메타세쿼이아길에서는 담양이 푸르고 푸르더니 정자와 원림을 찾아가는 이 길에서 만난 담양은 온통 붉다. 그래서 담양을 상징하는 나무가 배롱나무가 아닐까 싶었는데, 찾아보니 담양 군화(郡花)는 매화다.



봉황동에서 광주호로 이어지는 짧은 구간은 5코스에서 만나는 유일한 산길이자 고갯길이다. 길옆으로 밤나무가 더러 보인다. 가을이면 알밤이 제법 떨어져 있겠다. 완만한 고개를 넘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한옥, ‘창평 학구당’이라고도 불리는 수남 학구당이다. 고려 말에 세워진 향적사라는 절이 있던 곳이었으나 억불숭유를 내세운 조선이 들어서며 절이 문을 닫자 유학을 가르치는 교육기관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명심보감>과 <대학>, <중용>에 대한 주말강좌를 연다는 학구당이 궁금해 계단을 올랐지만 문이 닫혀 있다.


수남 학구당을 나오니 광주호다. 1976년, 영산강유역 종합개발계획 사업의 일환으로 완공된 댐으로 생겨났다. 호숫가를 따라 887번 지방도가 지나는데, 오방길은 지방도를 따라 광주호를 오른쪽에 끼고 상류로 오른다. 오르는 내내 무등산이 광주호 뒤로 우두커니 서 있어 멋들어진 풍광을 연출한다. 예서 보는 무등산은 장불재에서 올려다보던 익숙한 모습이 아녀서 낯설지만 그 특유의 한결같음과 듬직함은 여전하다.

식영정과 송강 정철의 <성산별곡>


광주호와 무등산을 마주 보는 성산[별뫼]의 한쪽 끄트머리에 자리한 식영정. 조선 명종 15년(1560)에 김성원(1525~1597)이 스승이자 장인인 석천 임억령(1496~1568)에게 지어 드린 정자다. 해남 출신으로 담양 부사를 비롯해 여러 벼슬을 지냈던 임억령이지만 주변 사람들은 시와 문장에 탁월하며 도량이 넓고 청렴하던 그를 관리로 일하기엔 적당치 않다고 평했다. 그러한 임억령이 지은 정자 이름이 식영정이다. ‘그림자가 쉬고 있는 정자’라니! 임억령은 자신이 쓴 <식영정기>에 ‘<장자>에 자신의 그림자가 두려워 도망치는 이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내가 이 외진 산골에 들어온 것은 내 그림자를 없애려 애쓰기보다 조물주와 함께 바람을 타고 끝없이 거친 들을 노닐고자 함’이라며 이름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우의정과 좌의정, 전라도체찰사를 지낸 송강 정철(1536~1593)이 임억령의 제자다. 서울 청운동에서 태어난 정철은 을사사화에 휘말린 아버지를 따라 유배지를 떠돌다가 명종 6년(1551)에 아버지가 귀양살이에서 풀려나자 할아버지의 산소가 있는 이곳 담양으로 들어와서 과거에 급제할 때까지 10년쯤을 보냈다. 이 시기에 임억령을 비롯한 여러 스승들에게 배우고 이이, 성혼, 송익필 같은 큰 선비들과 사귀며 그 유명한 <성산별곡>을 지었다. 식영정 바로 옆에 성산별곡 시비가 있고, 시조와 가사문학의 대가인 정철이 살던 마을이 식영정에서 가까운 한국가사문학관 바로 뒤의 지실이다.



꽃향기, 솔향기 그윽한 식영정 아래에 근래에 만든 부용정과 연지, 김성원이 거처하던 서하당도 있다. 어디서 봐도 아름다운 풍광이다.

한국가사문학관 앞 창계천을 건너면 광주호 호수생태원이다. 2006년에 문을 연 ‘광주호 호수생태원’은 호수가 품은 자연 생태의 아름다움에 환경친화적인 관리가 더해져 최고의 시너지를 보여주는 곳이다. 천연기념물 제539호인 왕버들 세 그루의 자태가 말을 잃게 만들고, 메타세쿼이아와 버드나무숲을 따라 조성된 덱 길이 더할 나위 없는 힐링 코스로 소문이 자자하다. 2018년 남북정상회담 시 화제가 되었던 판문점 도보다리를 재현한 공간과 세계적 명성의 황지해 작가 작품도 인상적이다. 가을이면 코스모스와 꽃무릇이 호수생태원을 뒤덮는다. 오방길에서 살짝 벗어난 곳이지만 꼭 들러볼 만하다.


호수생태원 들머리 왼쪽의 소나무가 뒤덮은 작은 동산에 조선 명종 때 사촌 김윤제(1501~1572)가 세운 환벽당이 있다. 주변 자연과 어우러짐이 일품인 이곳은 송강 정철이 27세로 과거에 급제할 때까지 10년 남짓 머물며 공부하던 곳으로, 정철은 김윤제의 외손녀와 결혼했다. 담양에서 정철의 자취가 가장 많이 묻은 환벽당은 송강정, 식영정과 함께 대표적인 정송강 유적이다.

감동의 크기를 잴 수 없는 소쇄원


가사문학관에서 소쇄원이 멀지 않다. 입구의 대나무 숲에서부터 마음이 무장 해제되고 마는 곳. 속세의 잡다한 소식에 찌든 귀를 씻고 들어오라는 듯, 대숲에 바람이 인다. 대숲이 끝나며 모습을 드러낸 소쇄원, 올 적마다 감동의 크기를 잴 수 없는 풍광으로 맞이한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약간의 손질만 더해 자연과 인공이 다정하게 어우러져 있는 조선시대 원림문화의 중심지로 호남 누정문화의 멋이 살아 있는 소쇄원은 조선 중종 때 살았던 양산보(1503~1557)의 별서 정원이다. 소쇄원이 자리한 지곡리는 창암촌이라고도 불렀는데, 양산보의 아버지 양사원의 호가 창암이어서다. 창암촌은 제주 양씨 집성촌으로, 소쇄원은 마을 뒤에 숨은 듯 자리를 잡았다.


뒷산에서 흘러내린 맑은 물이 폭포와 작은 물웅덩이를 만들며 정원을 가로지른 후 대숲을 빠져나간다. 수량이 과해 위협적이지 않고, 갈해서 풍경이 빈약하지 않으니 참 안성맞춤의 계류다. 이 아름다운 물길을 사이에 두고 대봉대와 광풍각, 제월당이 마주 본 자태는 자연과 인공의 행복한 조화 그 자체다. 대봉대를 지나 폭포의 상류를 건너 광풍각으로 가도록 동선이 짜였다. 산에서 흘러든 물은 담장 아래를 지나는데, 담 아래로 넓적 바위를 걸쳐 수로를 만든 재치가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수로 위의 흙 담장은 그대로 작품이어서 보고 또 봐도 지겹지 않다.

그런데 아까부터 광풍각 주변에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한 무리가 보인다. 가까이 갔더니 ‘소쇄원을 거닐다’라는 이름의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들이다. 누구라도 소쇄원을 만든 처사 양산보가 되어 건축과 나무와 풀, 돌멩이 하나에도 어떤 의미를 부여했는지 샅샅이 알아보는 탐험의 시간으로, 올해 6월부터 11월까지 매주 토요일에 진행된다고 한다. 네이버에서 ‘소쇄 처사 양산보와 함께 걷는 소쇄원’을 검색한 후 예약을 하면 남녀노소 불문하고 참여할 수 있다. 참여한 이들의 환한 웃음이 이 아름다운 정원과 잘 어울린다. 직접 참여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소쇄원의 옛 모습을 상상케 하는 이런 퍼포먼스를 직접 만난 것만도 행운이다.


양산보는 온 정성을 다해서 가꾸던 소쇄원을 두고 “절대 남에게 팔지 말 것, 하나라도 상함이 없게 할 것, 어리석은 후손에게는 물려지지도 말 것”을 유언했다. 그 유언이 지켜져 오늘 우리는 비교적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최고의 정원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광풍각 마루에 누워 눈을 감으니 물소리, 바람소리, 새소리들이 더 크게 다가온다.

산들바람이 부는 여름날 오후, 이만한 호사가 또 없겠다.


▶︎걷는 시간

2시간 (사진 찍으며 여유있게 걸으면 3시간 30분정도 소요)

▶︎걷는 거리

7.7km

▶︎걷기 순서

산덕마을 입구→명옥헌원림→봉황노인정→수남학구당→광주호→식영정→가사문학관→환벽당→광주호 호수생태원→소쇄원

▶︎코스 난이도

보통


▶︎코스 TIP

- 담양오방길 05코스 누정길은 총 32km로, 딴눈 팔지 않고 부지런히 걸어도 12시간은 족히 걸린다. 핵심구간은 정자와 원림이 집중되어 있는 명옥헌원림에서 소쇄원에 이르는 8km쯤으로, 쉬엄쉬엄 걸어 3시간 남짓이면 된다. 국도와 지방도, 논밭길과 마을길을 넘나들며 꼬불꼬불 이어가는 터라 곳곳에서 갈림길을 만난다. 그러나 2005년에 개통한 오방길은 정확한 방향을 잡기에 충분할 정도의 이정표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걷기 전에 확대한 노선도를 준비하거나 두루누비 앱으로 지도를 열어 수시로 비교하면서 걷는 게 좋다.

- 산덕마을을 빠져나와 후산리로 접어들면 곧 명옥헌원림을 만난다. 대한민국을 대표할 만한 배롱나무숲이 소나무와 연못과 어우러지며 멋들어진 정원을 펼친 명옥헌은 8월, 해묵은 배롱나무의 꽃이 만발할 때면 무릉도원 같은 딴 세상이다.

- 명옥헌원림을 빠져나온 길은 아스팔트 포장도를 만나며 곧장 남쪽으로 내려선다. 덕촌마을을 만나기까지 1.5km쯤 들판을 가로지르는 구간은 그늘이 부족하다. 그러나 높고 낮은 산지에 둘러싸인 풍요로운 평야지대여서 걷는 기분 난다.

봉황동 마을 뒤의 작은 언덕을 넘으면 조선시대 교육기관인 수남 학구당을 만나고, 곧 광주호다. 여기서부터는 887번 지방도를 따른다. 이 도로는 주변으로 광주와 담양을 대표하는 관광지가 많고, 호수와 어우러진 숲이 좋아 차량 통행이 많은 편이다. 반면 도로 옆으로 공간이 좁아 걸을 때 주의해야 하는 구간이다.

- 무등산을 배경 삼은 광주호의 아름다운 풍광에 취해 걷다보면 곧 식영정을 시작으로 환벽당과 취가정, 소쇄원이 창계천을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연이어 나타난다. 명옥헌원림의 감동이 채 가시지 않았는데 눈이 호강이다. 모두 나라 안에서 으뜸과 버금을 다투는 명승들이라 자꾸만 걸음을 붙잡는다.

▶︎화장실

명옥헌원림 주차장, 봉황노인정, 가사문학관, 소쇄원

▶︎음식점 및 매점

광주호 호수생태원 입구에 있는 ‘외할머니집(062-972-3824)’은 국내산 미꾸라지를 사용하는 추어탕 맛집. 전국적으로 택배주문이 많은 곳으로 가격도 저렴하다. 추어탕 6000원, 떡갈비 7000원. 추어탕 포장은 1인분 4000원.

- 소쇄원 주차장 근처의 ‘절라도(061-381-4744)’는 담양의 건강하고 싱싱한 식재료로 담양의 맛을 상에 담아내는 곳으로 잘 알려졌다. 한우떡갈비(20000원)와 오리떡갈비(16000원), 돌솥영양밥정식(10000)이 메인.

- 명옥헌원림 주차장 옆의 디저트카페 ‘OPAL(061-382-5825)’과 소쇄원 주차장 직전에 분식점을 겸한 편의점도 있으니 참고할 것.

▶︎교통편

산덕마을 입구(명옥헌원림 입구) : 181번 지선버스(광주역 옆 서방시장↔담양군 대덕면) 소쇄원 입구 : 187번(광주시 북구↔가사문학면), 188번(국립5·18민주묘지↔가사문학면) 지선버스, 담양 225번(광주종합버스터미널↔가사문학면) 시외버스

*자세한 정보는 이곳을 참조해주세요.

tour.damyang.go.kr 담양군청 문화관광

▶︎코스 문의

담양구청 문화관광과 061-380-3114

소쇄원 061-381-0115

▶︎길 상세보기

글, 사진 : 이승태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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