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중구] 필름카메라 하나 들고 책 향기 쫓아 걷는 '부산 갈맷길 3-2코스'

2020-06 이 달의 추천길 2020-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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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카메라 하나 들고 책 향기 쫓아 걷는 길

'부산 갈맷길 3-2코스'

이소민 여행작가



낡고 오래된 것들을 애정한다.

장롱 속 투박한 필름카메라를, 먼지가 뽀얗게 내려앉은 묵은 향내가 나는 책을, 따뜻한 인정이 넘치는 오래된 시장을 좋아한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갖춰진 길이 있다.

나만 알고 싶은 책들이 가득한 독립서점이 있는, 그리고 과거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부산 갈맷길 3-2코스를 오늘 걸어볼 것이다.

출발하는 아침, 날이 흐리다. 어쩌면. 햇빛 쨍쨍해서 더운 날보다는 이런 날이 더 좋지 않겠냐며 스스로 위안을 삼고 집을 나선다.

가볍게 필름카메라만 들고나온다. 책 내음과 옛것이 가득할 길이라 필름카메라가 찰떡일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필름 한장 한장 소중하게 담아보리라 다짐해본다.

 



역사를 따라 걷는 정겨운 골목길


갈맷길 3-2코스의 시작은 부산진시장이다.

안타깝게도 갈맷길 3-2코스의 대부분에는 갈맷길 이정표가 없는 편이다.그래서 시작부터 두루누비 어플의 힘을 빌려, 가는 길을 안내받기로 하였다.

3-2코스에는 꽤 여러 개의 시장이 있는데, 각각의 시장들이 특색 있어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중에서도 부산진시장은 상가건물로 된 대형시장으로 주로 의류나 신발, 직물류를 많이 판다. 그리고 전국에서 혼수로는 세 손가락에 꼽을 만큼, 백화점 못지않은 품질에 종류도 다양한 데다가, 최근에는 편의시설로 갖추어 쇼핑하기 참 좋다. 길가 쪽으로는 손수 짜 온 참기름부터, 직접 재배한 곡물류를 판매하시는 어머님들이 많으셔서 가만히 서서 이를 눈으로 담는 것도 꽤나 재미있다.

부산진시장의 뒤쪽 지하차도를 지나고 나면 횡단보도 하나를 지나 부산진교회 방면으로 올라간다.부산진교회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언덕배기위에 높게 솟은 빨간 벽돌집인데, 교회 앞에는 <아름다운 사람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라는 문구가 크게 적혀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빨간 벽돌집의 부산진일신여학교가 있는데, 이 두 곳이 왜 역사적으로 중요한 곳인지 안내판을 통해 찬찬히 읽어볼 수 있다.


동구의 역사적인 일들과 장소들을 찬찬히 읽으며 걷다 보면, 어느덧 구불구불하고 유난히 계단이 많은 길을 마주치게 된다.

동구 산복도로라 불리는 이 길은 산의 중턱에 위치하여 마치 그 굴곡이 서민의 삶의 닮았다 하는데, 최근 부산의 전경을 즐기기도 괜찮고 트래킹 코스로도 주목받고 있다고 한다.

사실 아찔한 계단에 몇 번을 주저할 뻔했지만, 높은 곳에서의 부산 전경이 너무 궁금해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도심 속 자연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길


어느덧 숲으로 둘러싸인 증산공원이다.

운동장, 농구장, 축구장, 게이트볼장 등 간단한 체육시설이 있어 이미 많은 주민분이 운동을 하고 계셨다. 천천히 둘러보며 걷다 보면 식수도 마실 수 있고, 녹음이 울창한 의자 아래에서 쉴 수 있는 공간도 여럿 볼 수 있다. 그리고 증산공원은 둘레길이 예뻐 구석구석 구경하는 즐거움이 있다. 늘 부산 동구의 높은 언덕에 있는 무지개색 아파트가 어디일까 궁금했었는데, 바로 증산공원 바로 앞 좌천아파트였다. 그 외에도 구석구석 예쁜 골목들과,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진 웹툰 이바구길까지. 눈으로 담고 사진으로 바삐 담으라 길에는 진전이 없었지만, 눈이 몹시 즐거웠다.

 







그 이후의 산복도로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이는 경치들을 구경하고, 버스가 다니는 길을 따라 걷는다. 어느새 길가에 내려앉은 여름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 보면 버스정류장 위에 놓인 새빨간 우체통, 유치환의 우체통을 발견할 수 있다. 청마 유치환 시인의 문화적업적과 예술성을 기리고자 전망대에 우체통을 설치한 것인데, 엽서나 편지를 써서 넣으면 1년 후에 도착하는 느린 우체통이라고 한다. 어쩐지 나 역시 엽서를 넣어보고 싶었지만, 갈 길이 멀어 꾸욱 참았던 게 지금은 내심 후회되는 중이다.

 



어째 갈맷길 이정표보다는 초량 이바구길 이정표가 나의 길을 안내해주는 듯하다. 초량상해거리(차이나타운)을 지나고 육교 하나를 건너면 힘겹게 갈맷길은 이어진다. 사실 앞서도 살짝 얘기했지만, 갈맷길 이정표는 찾기가 너무 어려워, 어플이 아니었다면 길을 따라가기 힘들었을 것 같다.



책향기를 쫓아 걷는 길





오래된 건물만큼이나 오래된 간판들, 서울에서는 보기 힘든 꽃이 심어진 아담한 집들을 구경하며 인쇄골목을 지나 추억의 40계단으로 향해본다. 40계단은 한국전쟁 당시 인근에 거주하던 피난민, 부두 노동자들의 애환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비 오는 거리 계단 장면이 바로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힘든 생활 속에서도 낭만을 간직한 아코디언 연주자의 동상이 계단 한가운데에 있는데, 옆에는 음향 장치가 설치되어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음악이 연주되어 무척 신기했다.

 


40계단을 지나고 나면, 드디어 이 걷기 여행에서 꼭 들려야만 했던 독립서점이다.

아침의 흐리던 하늘이 어느새 맑게 개어 더워지던 찰나, 이 근처의 독립서점에서는 커피 한 잔 값에 책을 읽다 갈 수 있어 무거웠던 발걸음이 절로 가벼워진다. 독립서점의 이름은 <주책공사>, 위트있는 말 덕분에 피식 웃게 된다. 그래, 나도 이왕이면 읽다 죽어도 멋져 보일 책을 읽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슬쩍 들어가 본다.




독립서점의 장점은 모든 사람이 가질 수 ‘없는’ 개성과 가양성이 돋보이는 책을 소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책공사에는 독립서적과 출판사에서 나온 책들이 적절히 섞여 있어 두루두루 볼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또한 작가들이 직접 남겨놓은 메모들이 책 앞에 붙어 있어, 작가들의 뒷이야기들을 보는 재미가 있다.


특색있는 시장들을 따라 걷는 길


이제 또 발걸음을 옮겨본다. 시간이 정오가 지나자 뜨거운 햇살이 내리쬔다. 이제 나는 용두산 공원으로 향한다. 숲이 우거진 길로 들어가자 시원한 바람이 내 땀을 식혀주었다. 서울의 남산타워가 있듯, 부산의 용두산에는 부산타워가 있다. 어디에서도 높이 솟아 잘 보이는 부산타워. 앞으로도 자주 등장할 예정이다.


우와 멋있다


정말 나도 모르게 내뱉어버렸다.

때마침 열린 하늘에서 빛이 쏟아져 내려 용두산공원의 산책길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이를 놓칠세라 필름카메라로 마구 담아본다.

아쉽다. 떠나기가 아쉬워 계속 담고 또 담았다. 가을에 오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하며 힘들게 발걸음을 떼 본다.




용두산공원에서 내려오면, 부산근대역사관을 지나고 곧장 국제시장 골목이다. 동명의 영화로도 널리 알려졌지만, 다양한 군것질거리가 있고 다양한 볼거리가 있어 언제와도 즐겁고 새로운 곳이 바로 국제시장이다. 전에는 보지 못했던 국제시장의 슬로건이 눈을 사로잡는다.




시장 구경을 정신없이 하다 보면 BIFF광장을 지나 어느덧, 부산의 대표적인 수산물 재래시장인 자갈치시장이다. 남포동 건어물 도매시장과 나란히 붙어있는데, 세상의 모든 수산물은 다 구경할 수 있다. 오른편으로는 바다를 끼고, 왼편으로는 시끌벅적하지만 활기차게 돌아가는 시장을 두고 걷노라면 ‘마, 이게 부산 아이가’ 라는 말이 절로 나올 것이다. 아마도 나처럼.




느리게 걷는 영도


저 멀리 빨간 영도대교가 보인다면 이제 길은 막바지에 들어선 것이다. 영도대교는 국내 유일의 도개교이다. 도개교란 배가 지나가기 위해 다리가 들어 올려지는 다리를 뜻하는데, 매일 오후 두 시에 들어 올려진다고 했다. 모든 차가 다 서서 도개가 끝나기를 기다린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시간이 맞지 않아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반짝거리는 윤슬을 보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다리 위를 걷다 보니 서운한 마음은 절로 사라져갔다.


다리를 건너 영도경찰서가 보인다면 곧 깡깡이예술마을이다. 녹슨 배의 표면을 벗겨내는 망치질 소리에서 유래해 깡깡이마을이란 별칭으로 불리는데, 문화예술인들과 협력하여 길을 멋지게 바꾸기도 하고 다양한 프로젝트와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부산 사람들의 역동적인 삶과 산업 현장이 예술과 만나 독특한 느낌을 주는 길이기도 하다. 알록달록한 벽들과 공업사의 모습들을 작품설명과 함께 보는 재미가 있으니 천천히 둘러보도록 하자.




이제 정말 마지막 구간이다. 이름이 독특한 OGO카페와 새빨간 남향방파제의 등대가 보인다면 마지막 구간인 브릿지 수변 테마공원이다. 바다 옆을 걸으며 산책할 수 있게 길을 잘 만들어두었고, 그 옆으로는 운동할 수 있는 넓은 공간들을 조성해두었다. 그래서 이미 운동하는 분들로 가득이었다. 등대도, 정면의 남항대교도 너무나 근사해서 마지막까지 사진으로 담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긴 구간이었음에도 이정표가 확실하지 않아서 고생은 좀 했지만, 걷는 내내 감상할 것들이 많아 행복했던 길이었다.

곳곳에 숨어있는 추억과 낭만을 찾아 많은 사람에게 더 사랑받는 길이 되기를 바라본다.

다음에 또 만나 :)


▶코스 경로: 부산진시장 - 증산공원 - 초량성당 - 부산역 - 백산기념관 - 부산근대역사관 - 국제시장 - 자갈치시장 - 영도대교 - 남항대교

▶거리 : 약 16km

▶소요 시간: 5시간

▶코스 타입: 비순환형

▶난이도: 중

▶편의시설

화장실 : 증산공원, 동구도서관, 부산근대역사관, 부산종합관광안내소, 중구관광안내소, 유라리광장, 브릿지수변테마공원

식수: 증산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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