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여수] 비밀의 숲 너머로 펼쳐지는 벼랑 끝 절경, 여수 금오도 비렁길 1코스

2020-07 이 달의 추천길 2020-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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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숲 너머로 펼쳐지는 벼랑 끝 절경

여수 금오도 비렁길 1코스

여행작가 김정흠

괜찮아

배는 뜬다고 하잖아?

늘 하루, 맑을 거라던 일기예보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럴 법도 했다. 한여름, 그것도 바다 날씨를 누가 쉬이 예측할 수 있을까. 다행이었다. 그래도 비는 내리지 않고 있으니까. 서울에서 다섯 시간. 연푸른 하늘과 청록빛 바다를 만나기 위해 새벽부터 부지런을 떨었지만, 선착장 앞에서 마주한 풍경은 그저 찌뿌둥한 하늘이었다.

J가 위로하듯 이야기했다.

"괜찮아,배는 뜬다고 하잖아"

돌산도 구석에 있는 신기선착장과 금오도의 여천선착장을 오가는 배는 자주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는 편이 좋았다.


배에 일찍 오르기로 했다. 갑판에 올라 주변 풍경을 살피고 싶어서였다. 바람도 적당했고, 온도도 적당했다. 꾸물꾸물한 하늘은 아쉬웠으나, 마음을 달래주는 건 탁 트인 바다였다. 잔잔한 바다 너머로 둥둥 떠 있는 섬들, 그 사이 어딘가에 금오도가 있겠지. J와는 잠시 떨어진 채, 각자 마음에 드는 풍경을 눈으로 한참 담아냈다.



어느새 사람들이 배에 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차들도 질서정연하게 자신의 자리를 찾아 도열했다. 고동 소리가 몇 번 울리는가 싶더니, 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묘하게 설렜다. 섬은 오랜만이었고, 하물며 금오도는 처음이었으니까. 배를 타고 이동한 시간은 20분이 채 되지 않았다만, 마음이 말랑해지기에는 충분했다.




금오도의 관문 중 하나인 여천여객선터미널에 내리자마자 발걸음을 옮겼던 곳은 선착장의 대기실도, 식당도 아닌 버스정류장. 분위기를 살필 겨를 같은 건 없었다. 버스가 곧 출발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탓이었다. 선착장 앞에 도열해 있는 버스로 향했다. 함구미 쪽으로 가는 버스를 찾아 올라탔다. 버스 요금은 2천 원. 에누리 없이 현금이었다.


길에 붙은 '비렁'이라는 이름은 '벼랑'이라는 의미란다. 그 말인즉슨 벼랑을 따라 걷게 된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섬은 대체로 산을 품고 있으니, 그곳의 벼랑이라면 탁 트인 바다를 만날 수 있을 터였다. 그것만으로도 천천히 걸어야 할 이유는 충분했다. 뭐, 비렁길을 걷고 있노라면 그깟 이유야 대여섯 개쯤은 더 댈 수 있었다. 그저 이 길을 쉬이 끝내고 싶지는 않았다는 얘기다.



오솔길은 산 너머로 이어졌다. 작은 계곡이 따라 흐르기도, 작은 대나무 숲이 곁을 내어주기도 했다. 공기가 촉촉했다. 흙바닥이 폭신했다. 밤새 내렸던 비, 흐린 날씨 덕분에 선선했다. 걷기에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발걸음이 가벼워지는 건 당연했다.




'비렁'은 금방 나타났다. 금오도의 남서쪽으로 힘차게 솟은 절벽이 눈앞에서 그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 위로 조성된 비렁길도 마음을 설레게 했다. 본격적인 '비렁'길이 이곳에서 시작하는 셈이었다. 흐린 하늘은 나름대로 운치가 있었고, 바람도 적당했다. '미역널방'이라는 곳이었다. 마을 주민들은 절벽 아래 바다에서 미역을 채취해 이곳까지 운반한 뒤, 널어두었단다.

 




발아래 저 멀리에서 어슴푸레하게 들려오는 파도 소리가 청량했다. 의자는 필연적으로 그 자리에 있었다. 운명에 순응할 수 밖에. 등받이에 몸을 맡기고, 저 멀리 시선을 옮겼다. 숨을 크개 들이마신 뒤, 천천히 내뱉었다. 내가 이 풍경에 전하는, 최고의 찬사였다.


이 절경을 알고 있던 건 우리만이 아니었다. 고려 시대의 승려, 보조국사 지눌이 이곳에 송광사라는 이름의 사찰을 지었다는 기록이 있다. 모후산에 올라 좋은 절 터를 찾고자 나무로 조각한 새 세 마리를 날려 보냈는데, 그중 한 마리가 이곳 금오도에 내려앉았다는 것이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는 것.

비록 지금은 누군가의 터전으로만 남아 있을 뿐이지만, 너른 들판과 그 뒤로 병풍처럼 솟은 대부산, 나뭇가지 사이로 펼쳐지는 바다의 풍경은 여전히 아름답게 어우러지고 있었다.





풍경에 이끌려 잠시, 절벽을 치대는 파도 소리에 이끌려 잠시 멈춰 서기를 몇 차례.

중간 지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두어 시간이 훌쩍 지난 후였다. 이는 순전히 비렁길이 발목을 잡은 탓이었다.

쉬어갈 만한 곳이 눈에 띄었다. 비렁길 1코스 중간 지점에서 유일하게 만날 수 있는 식당이었다. 마침 아침도 거르고 섬에 들어와 여기까지 정신없이 걸었던 터라 배고프기도 했던 참이었다.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시원하면서도 속이 든든할 것 같은 도토리묵무침 한 접시, 철저히 우리의 취향으로 고른 해물라면, 목을 축일 수 있는 식혜 두 잔을 주문했다.

금오도의 '비렁'과 바다를 한눈에 만날 수 있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테이블에 가득 깔리는 반찬들. 금오도가 방풍나물로 유명하다는 건 진즉에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반찬마다 가득 올라올 줄은 몰랐다. 가볍게 한 끼 해결하려고 들어섰을 뿐인데, 금오도의 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을 줄이야. 주인장은 인심이 좋았다.


식당에서도 한참을 머물렀다. 이즘이면, 의자가 있는 곳마다 쉽게 지나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고백해야겠다. 그랬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금오도를 최대한 천천히, 즐기고 싶었으니까. 발걸음이 점점 느려졌던 것도 전부 그 때문이었다. 시간은 충분했다.









길은 벼랑 끄트머리를 절묘하게 타고 넘나들었다. 때로는 비밀의 숲으로 우리를 인도하기도 했다. 앞서 걷던 J는 "요정이 나올 것 같아."라며 간략한 감상평을 남겼다. 그렇게 느껴질 법도 했다. 나뭇가지 위에 앉은 새들도, 이슬을 머금은 풀잎 사이에서 더듬이를 이리저리 뻗어대는 곤충들도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것처럼 서로 교감하고 있었으니까. 숲을 묘하게 울리는 그 소리가, 온몸을 감싸고도는 그 분위기는 정말이지 몽환적이었다. 비렁길 1코스는 그렇게 우리를 한없이 금오도의 깊숙한 곳으로 이끌었다.


길은 반전 매력을 보이는 법을 아는 것 같기도 했다. 별안간 자연이 전망대를 눈앞에 딱하고 가져다 두었으니까. 신선대라는, 조금은 뻔한 이름의 바위는 그 무엇보다도 극적인 반전 매력을 선보였다. 때마침 구름이 걷히기까지 했으니, 우리가 탄성을 내질렀던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바다가 반짝였다.








기승전결은 완벽했다. 비렁길은 강약을 적절히 조절하는 법을 알았다. 신선대의 풍경을 뒤로하고 내려오는 숲길은 한 숨 돌리기에도, 미쳐 즐기지 못했던 금오도의 매력을 압축해서 보여줬다. 바람이 불 때마다 머리 위로 재잘댔던 대나무 숲, 시원하게 쏟아지는 계곡, 햇볕이 부서지며 한껏 싱그러움을 더했던 풀잎까지.





코스 종점, 두포마을 방파제에 걸터앉아 버스를 기다렸다. 한껏 청명해진 하늘이, 바다 위로 부드럽게 부서지는 윤슬이 마음을 간질였다. 바다가 건넨 바람은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기도 했다. 지그시 눈을 감았다. 이 여운을 오래 간직하고 싶어서였다. 그러기를 바랐다.


▶코스 경로: 함구미 - 미역널방 - 송광사절터 - 신선대 - 두포

▶거리 : 5km

▶소요 시간: 2시간

▶코스 타입: 비순환형

▶난이도: 보통

▶편의시설

화장실 : 함구미, 두포(초포)

식수: 함구미, 두포(초포)

매점: 함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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