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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보성] 소설 태백산맥 배경 따라 걷는, 태백산맥 문학기행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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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연하고 아름다운
포구마을을 걷다
태백산맥 문학기행길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 읍이지만 옹골찬 땅과 바다를 품은 도시는 겨울이면 살 오른 꼬막을 먹으러, 그리고 소설 <태백산맥>의 흔적을 찾아 몰려든다. 이 조그마한 갯마을은 일제강점기에 교통의 요지가 되면서 북적였다. 일본으로 배가 오갔으며, 철로가 놓였고, 도로가 생겼다. 읍내는 우후죽순으로 일본식 시가지가 들어섰다. 해방되면서 그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갔지만, 여전히 벌교는 보성에 속한 작은 마을이 아닌, 독립적인 하나의 도시 같다. 벌교의 매력은 문학이 깊이 관여한 도시라는 점. 남북분단 이데올로기와 인간의 속살을 깊고도 장대하게 보여주는 소설 <태백산맥> 덕분이다. 문학관을 지나 오래된 다리를 건너고 읍내로 들어가는 길, 시대의 흔적이 쓸쓸하고도 담담하게 남아있다.

 

 


벌교천을 가로지르는 무지개 모양의 홍교(虹橋). 소설 <태백산맥>에 자주 등장했다.

 

 

 해방 이후 분단문학의 새 역사를 쓴 소설 <태백산맥>. 분단이라는 처절한 한 시대를 진실 가까이에서 써 내려간 대하소설이다. 조정래 작가의 방대한 취재와 단단하고도 유연한 필체, 끈질긴 집필이 모여 하나의 역사가 쓰였다. 소설 속 배경 도시, 벌교는 서울에서 차로 4시간이 넘게 걸리는, 남쪽 끄트머리의 도시였다.

 

 


태백산맥문학관 건물과 옹석벽화는 소설의 장엄한 이야기가 스며있다.

 


전시관은 소설 <태백산맥>을 한 장 한 장 넘겨보는 듯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조정래 작가의 가족과 독자의 필사본엔 소설의 애정이 담뿍 담겨 있다.

 

 

 태백산맥 문학기행길은 소설 속 배경지를 천천히 돌아볼 수 있는 코스다. 2시간 남짓 이어진 길로, 소설을 읽었다면 길 위에서의 시간은 더 길어질 것이다. 본격적으로 길을 걷기 전, 태백산맥문학관에 들른다. 문학관 오른편엔 <백두대간의 염원>이라는 옹석벽화가 눈에 띈다. 10권의 소설을 표현한 거대한 한 장의 그림일까. 수많은 돌이 차곡차곡 쌓인 것을 바라보고 있으니 그 광대한 이야기가 넘실거리듯 다가온다. 길이 81m, 높이 8m에 이르는 벽을 조심히 쓸어 담듯 쫓는다.
 
 소설 <태백산맥>은 해방 후, 1948년부터 5년간의 시간을 담았다. 조정래 작가는 4년의 준비, 약 6년의 집필을 거쳐 10권의 장편소설을 썼다. 그 모든 것이 담겨 있는 문학관은 건물 자체가 하나의 두툼한 책이다. 입구 왼편엔 건축가 김원의 이야기가 쓰여 있다. 땅속에 묻힌 진실을 파낸 소설처럼 언덕을 파내고 10m 아래 건물을 지었단다. 또 전시관을 많이 채우지 않았다. <태백산맥>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행자에게 더 깊이 사유할 수 있는 공간인 것이다.

 문학관 1층엔 작품 집필 동기와 작품 구상, 출간 과정, 작품 내용 등 10여 년의 길고 긴 시간을 촘촘하게 나열했다. 2층으로 올라가면 작가 조정래의 삶과 문학 세계, 가족과 독자들이 기증한 필사본이 놓여 있다. 이 거대한 소설을 한 자 한 자 써 내려가는 그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그 시대가 겪은 인고의 시간에 조금이라도 닿으려는 성실한 용기가 아니었을까. 소설을 읽은 이도, 읽지 않은 이도, 상처의 흔적, 그리고 희망을 가슴에 품고 이 공간에서는 진지해질 수밖에 없다.  

 

 


문학관 근처에 자리한 현부자네집

 


한옥과 일본식 가옥의 중첩되어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문학관 바로 옆엔 아담한 소화의 집이 자리한다. 집 둘레로 낮은 토담이 쌓여 있고, 뒤에 대숲이 집을 보듬고 있다. 태풍에 쓰려진 후, 그때의 풍성함이 한껏 사그라든 모습이다. 길 건너편엔 현부자네집이 자리한다. 한눈에 보아도 좋은 터에 지어졌음을 알 수 있는 집이다. 소설 속 그 문장이 밟힌다.

 

 

 

 

그 자리는 더 이를 데 없는 명당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는데,
풍수를 전혀 모르는 눈으로 보더라도 그 땅은 참으로 희한하게 생긴 터였다……

 

 

 

 

제석산 자락에 지어진 집은 대문과 안채는 한옥이지만 곳곳 일본식 건축양식이 엿보인다. 천장과 누각, 단청 장식 등이 낯설다. 특히 대청에서 바라보이는 대문채 2층 누각과 마당 한가운데 화단은 이질감이 느껴진다. 지금은 오를 수 없지만 2층 누각에서 중도방죽이 내려다보인단다. 소작인들을 감시하기 위해 올랐다고 생각하니 씁쓸해진다.

 

 


회정리교회에 오르는 길, 나뭇잎이 떨어져 운치 있다.

 


짧고도 가파른 언덕을 올라야 닿는 회정리교회.

 


언덕 위에 고요하고도 다부지게 서 있는 회정리교회.

 


벌교천을 가로지는 다리 중 가장 멋스럽고도 오래된 홍교.

 


태백산맥 문학기행길 위엔 장소마다 소설 이야기를 담은 표지판이 있다.

 


벌교천을 따라 난 데크, 저 멀리 바닷바람이 불어온다.

 


부용산공원에 오르는 계단, 동네사람들의 산책 코스이기도 하다.

 

 

 현부자네집을 나와 회정리교회로 향한다. 가파른 언덕에 석조 예배당이 굳건하게 자리하다. 1935년에 지어진 건물이지만 그 어느 건물보다 단단하다. 소설에서 고뇌하는 지식인으로 등장했던 서민영이 야학을 열었던 곳이다. 부당하게 징역을 살다 온 이지숙은 이곳에서 교사로서 상처를 보듬으며 지냈다. 지금은 내부를 볼 수 없지만, 당시에 남녀 따로 예배당이 있었단다. 교회를 나와 천변을 걷다 보면 돌다리 홍교가 나온다. 홍교는 무지개형 아치형 다리를 말하는데 이 홍교는 벌교천 다리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1729년에 지어졌다. 세 칸의 무지개형 돌다리는 우리나라에 지어진 홍교 중 아름답기로 손에 꼽혀 보물 제304호로 지정되어 있다.

 

 


벌교 읍내는 과거의 시간을 품은 듯 키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소설 <태백산맥> 기념조형물 앞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월곡 영화마을 벽화엔 영화와 애니메이션 속 친근한 캐릭터를 만날 수 있다.

 


인상적인 벽화 덕분에 여행자는 추억 속으로 빠진다.

 


잔잔한 문학기행길 속 색다른 재미를 주는 벽화.

 

 

 홍교를 건너 벌교 읍내로 들어선다. 나지막한 부용산공원에서 올라 벌교를 한눈에 담고 숨을 고른다. 차분한 느낌의 길 위에, 갑작스레 화사한 그림이 펼쳐진다. 월곡 영화마을이다. 친구같이 불쑥 반기는 토토로, 시 짓고 있는 윤동주 등 다정하고 따뜻한 모습으로 벽에 그려져 있다. 점점 낙후되어 가는 월곡마을에 하나둘 생겨난 영화 속 주인공은 동네 주민들에게도 새로운 활기를 주고 있는 듯하다.

 

 


벌교 금융조합, 빨간 지붕의 건물이 인상적이다.

 


배경지마다 친절한 안내판이 있어 소설을 읽지 않아도 걷는 재미가 있다.

 


벌교 읍내 골목은 아직도 시간이 느릿느릿하다.

 


하룻밤 쉬어갈 수 있는 여관은 여전히 운영 중.

 


보성여관 2층 다다미에서 바라본 풍경.

 


널찍한 다다미방엔 볕과 바람이 풍성하다.

 

 

 월곡마을에서 한참 그림 속에 빠져 있다 다시 고즈넉한 마을로 나왔다. 1918년에 지어진 벌교 금융조합은 2013년에 복원했지만 그 시절 모양새를 잘 갖췄다. 지금은 화폐 관련 작은 전시와 소설 필사를 할 수 있는 공간 등이 마련되어 있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고풍스러운 여관 하나를 만난다. 1935년에 지어진 보성여관은 한옥과 일본식 건축이 혼재된 양식이다. 보성여관에 들어서면 걸음을 조심스레, 말소리는 절로 낮춰진다.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소설을 읽기 시작할지도 모르겠다.

 2층 다다미방에 올라갔다. 반지르르한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자 너른 다다미방이 나온다. 나무의 부드러운 결이 바닥에서도, 창에서도, 천장에서도 느껴진다. 여름이면 꽤 시원할 것 같다. 창밖엔 벌교초등학교가 빠끔히 보인다. 창 가까이에서 바짝 마른 볕이 쏟아진다. 여관에서 하루쯤 머물러보는 것도 추천한다. 자그마한 방이지만 방 앞에 대청에 앉아 심심한 시간을 보내도 좋을 터다. 나무가 많은 공간은 고른 숨이 퍼지듯 온화해진다.  

 

 


한상 가득히 나오는 꼬막정식

 


따끈한 밥에 꼬막회무침을 넣어 쓱쓱 비비면 겨울바다의 향을 느낄 수 있다.

 

 녹슨 철길이 멀리서도 처연하게 이어져 있다.

 

 

 이맘때쯤은 꼬막으로 식당들은 한껏 바빠진다. 여관 근처 오래되어 보이는 식당으로 들어섰다. 꼬막으로 만든 요리가 한 상 가득 차려진다. 보기만 해도 배가 그득해지고, 어디에 젓가락을 멈춰야 할지도 모르겠다. 삶은 꼬막과 양념 꼬막, 꼬막회무침, 꼬막국 등 꼬막의 변신에 즐겁기만 하다. 겨울 앞, 든든한 보양식으로 가득 채웠다.
 
 길의 끝, 철다리로 향한다. 언젠가는 철이었을까, 싶을 정도로 붉은 색으로 녹이 슬었다. 1930년 무렵 경전선 철도가 놓이면서 만들어진 철다리로 소설에서 철교 아래 선창에서 물건을 훔치다 들킨 염상구가 일본 선원을 죽이고 해방과 함께 돌아와 독립투사로 변신했단다. 다래 아래 우후죽순으로 자란 풀들과 함께 스산한 기운을 내뿜는다. 옆의 중도방죽은 물이 밀려오는 것을 막는 둑으로 일제강점기에 땅을 일군 것이다.

 ‘흙 한 삽, 한 삽이 다 가난한 조선사람덜 핏방울이고 한덩어린디, 정작 배불린 것은 일본눔덜이었응께……’ 갯벌 자리에 논으로 채워져 있다. 그곳을 바라보며 풍요로움 보다, 시린 마음이 더 자명하게 느껴진다.

 

 

 

 

 

 

 

 

▶걷는 거리
약 8㎞

 

▶걷는 시간
 약 2시간
 
▶난이도

 

▶걷는 순서
 태백산맥문학관 → 회정리교회 → 소화다리 → 김범우의집 → 벌교홍교 → 자애병원 → 부용산공원 → 월곡 영화마을 → 벌교금융조합 → 벌교초등학교 → 보성여관 → 벌교역 → 철다리 → 중도방죽 → 진트재 → 벌교시외버스터미널

 

 

 

 

 

 

 

 

▶화장실
태백산맥문학관, 부용산공원, 월곡 영화마을, 벌교금융조합, 보성여관, 벌교역, 벌교시외버스터미널

 

▶식사
태백산맥무학관, 보성여관, 벌교역, 벌교시외버스터미널 주변
 
▶ 교통편
자가이용: 네비게이션 ‘태백산맥문학관’ (전남 보성군 벌교읍 홍암로 89-19)
대중교통: 경전석 벌교역에서 ‘보성-벌교(조성)’ 버스를 타고 벌교버스터미널정류장 하차, 10분 소요.

 

 

 

 

글, 사진 : 박산하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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