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남해 미조 ( 彌助 ) 항은 남해반도의 남쪽 끝에 있다 . 흔히 전라도 해남을 땅끝이라 부르지만 , 이곳 또한 하나의 땅끝이라 할 수 있다 . 미조 ( 彌助 ) 는 ‘ 미륵이 돕는다 ’ 는 뜻으로 중생을 구제할 미래의 부처인 미륵불 ( 彌勒佛 ) 이 지키는 바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 전국 어디를 돌아다녀도 이런 이름을 갖는 포구를 찾기는 어렵다 . 그래서인지 미조의 밤바다는 언제가도 평화롭고 아늑하다 .
미조는 봄에 풍요로운 포구다 . 먼 바다서 그물로 잡아온 멸치를 포구에서 털어내는데 , 팔뚝에 근육이 불끈 솟은 사내들이 배 양쪽에 마주보고 서서 그물을 터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경이로움을 느끼게 한다 . 어깨가 빠지도록 고된 울력이기 때문이다 . 이즈음 전국의 사진 동호인들이 미조로 몰려드는 이유다 .
남해 바래길 4코스는 봄이면 아름다운 울력이 펼쳐지는 미항(美港), 미조를 지나는 길이다. 미조면 중심에 있는 망산을 한 바퀴 도는 코스이지만, 길의 중심은 산이 아니라 미조 포구다 .
미조항
길은 ' 섬노래길 ' 이란 별칭으로 불린다 . 바래길은 남해의 아낙들이 갯것을 잡으러 바다에 갈 때 ' 바래간다 ' 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 미조를 위시한 해안 걷기 길은 이렇듯 콧노래를 부르며 다닐 수 흥겨운 길이다 . 물론 당시 아낙들에게 ‘ 바래 ’ 는 거친 갯바람을 맞으며 석화 · 조개 등을 캐야 하는 고된 일이었을 테지만 말이다 . 바닷가를 끼고 도는 4 코스는 높낮이가 심하지 않아 걷기 편하다 . 또 3 월이면 발갛게 올라오는 벚나무 꽃봉오리를 벗 삼아 걷기 좋다 .
미조항 서쪽에 있는 송정해수욕장에서 시작하는 4 코스는 망산을 넘어 미조항에 닿고 , 다시 설리해수욕장을 거쳐 송정해변으로 되돌아온다 . 시계방향으로 걸으면 이렇고 , 시계반대방향으로 진행하면 송정해수욕장에서 설리해수욕장을 지나 미조항에 이른다 . 애초 남해 바래길에서 진행방향은 송정 → 설리 → 미조항으로 이 구간만 걸으면 약 7km 의 길이다 . 바래길 4 코스는 찻길과 도보 길이 혼재돼 있는데 , 이 코스로 가면 찻길을 피하고 고즈넉한 바닷길을 택할 수 있다 . 무엇보다 걷기 편하다 .
송정해수욕장
도로에서 ‘ 바다로 가는 길 ’ 이란 오솔길을 들어가니 송정해수욕장 앞 드넓은 바다가 펼쳐진다 . 너른 백사장과 소나무숲 사이로 작은 길이 나 있는데 , 바다에서 불어오는 칼칼한 바람과 소나무 숲에 이는 바람소리를 들으며 걷는 기분이 상쾌하다 . 남쪽이라 그런 지 바람도 그리 매섭지 않다 . 고개를 오른편으로 돌리면 끝없이 펼쳐진 바다 위로 내리쬐는 오후에 볕이 은빛으로 일렁인다 .
설리 마을 가는 길
송정해수욕장 길은 채 500m 가 되지 않는다 . 길은 다시 도로로 연결되는데 , 이 또한 언덕을 넘자마자 곧바로 오른편으로 설리 마을로 내려가는 길이 이어진다 .
설리마을
도로 위에서 내려다본 설리는 이름만큼 아름다운 마을로 초생달 모양의 백사장과 소나무 숲이 어우러진 작은 어촌 마을이다 . 처음 대하는 마을인데도 ‘ 하룻밤 묵어가고 싶다 ’ 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겹다 .
설리전망대
도로는 마을로 이어지지만 , 바래길은 마을을 끼고 오른쪽 바다를 끼고 돈다 . 아스팔트길이 끊기고 산책로가 시작되는 지점에 팔각정 전망대가 있다 . 저 멀리 남쪽으로 끝없이 펼쳐진 남해를 조망할 수 있다 .
설리전망대에서 바라본 바다
산꼭대기에 있는 전망대에서 마을로 가는 길은 계속해서 내리막이다 . 발에 부담 없는 흙길로 경사가 급한 곳은 계단을 설치해 남녀노소 누구나 걸 을 수 있다 .
해안 쪽으로 간간이 군 초소가 보이고 , 또 낚시꾼들이 이용하는 갯바위 낚시 포인트가 보인다 . 약 2km 의 길 , 30 분이면 설리 마을에 다다른다 . 백사장에서 마을을 올려다보면 푸른 마늘밭과 작고 예쁜 집들 , 그 너머로 푸른 소나무 숲이 어우러져 있다 . 설리는 미조까지는 약 2km 로 이웃해 있는데 , 설리 또한 미조만큼이나 아름다운 마을이다 .
설리마을
설리에서 미조까지는 도로 길이 나 있지만 , 마을과 마을을 잇는 작은 길로 차량 통행이 많지 않아 도보 길이나 마찬가지다 . 여기까지 그랬던 것처럼 오른편으로 푸른 바다를 끼고 도는 해안 길이 이어진다 . 예전 설리의 아낙들은 이 길을 따라 마늘을 심고 , 또 썰물이 지면 갯가로 나가 갯일을 했을 것이다 .
미조는 큰 포구다 . 그래서인지 고즈넉한 포구와는 어울리지 않은 커다란 얼음공장이 우뚝 서 있다 . 그만큼 어선들이 많이 출항하는 어업전진기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미조항 전경
포구 안쪽 면사무소 앞은 작은 시가지를 이룬다 . 봄이 되면 멸치쌈밥 · 도다리쑥국 · 물메기탕이 인기다 . 3 월 초가 되면 겨우내 인기를 끈 물메기가 사라지가 도다리쑥국이 올라오는 때다 . 멸치쌈밥도 이때만 맛볼 수 있는 별미다 . 그물에 잡힌 멸치가 아니라 죽방렴이라는 전통 방식으로 잡은 멸치들이 쌈밥 재료로 올라온다 . 죽방렴은 대나무발로 만든 전통적인 어구로 이것으로 잡은 멸치라야 몸통이 온전하기 때문이다 .
미조 포구에서 망산을 넘으면 길은 다시 송정해수욕장으로 이어진다 . 하지만 걷기 길은 이즘에서 마무리하고 미조 포구를 둘러보는 것도 좋다 . 포구를 끼고 동쪽으로 가면 걷기 좋은 바다 길이 이어진다 . 밤에 걸으면 포근하고 아늑한 길로 특히 보름달이 뜨면 때를 골라 이 길을 걸으면 그지없이 로맨틱하다 .
송정솔바람해변 ~ 망산 정상 ~ 미조항 ~ 설리해수욕장 ~ 송정솔바람해변 ( 총 9.5km, 3 시간 30 분 )
남해시외버스터미널에서 상주미조선 버스를 타고 송정마을에서 하차 (1 일 16 회 운행 ). 남해터미널 055-863-3507
화장실 송정솔바람해변 , 설리해수욕장 , 미조항 ( 수협활어위판장 ). 송정솔바람해변 , 미조항 등 매점 송정솔바람해변 , 설리해수욕장 , 미조항 ( 수협활어위판장 ). 송정솔바람해변 , 미조항 등 걷기여행 TIP - 망산을 중심으로 한 바퀴 도는 순환형 코스지만 , 송정해변에서 미조항까지만 걷는 코스도 좋다 . - 찻길과 산길 등을 번갈아 걷게 되므로 지도 등을 미리 준비하는 게 좋다 . 코스 문의 남해바래길 탐방안내센터 055-863-8778
글, 사진: 김영주 기자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