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읍성뿌리길은 부산 지하철 수안역에서 동래시장을 지나 동래읍성 북문에 이르는 약 2.3km 의 길이다 . 대부분 도심을 지나는 길이다 . 그 길에 동래 장관청 , 만세거리 표석 , 동래부 동헌 , 송공단 , 복천동고분군 , 복천박물관 , 동래읍성역사관 , 내주축성비 , 동래읍성 북문 등 역사 유적지가 많다 . 또 동래시장도 지나는데 , 생기와 활력 넘치는 재래시장에서 기운찬 생활의 힘을 느껴볼 수 있다 . 걷는 거리가 2.3km 정도 밖에 안 되지만 , 역사유적지와 동래시장 곳곳을 돌아보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
지하철 역사에서 만나는 임진왜란의 역사
동래읍성임진왜란역사관
부산 지하철 수안역에 동래읍성뿌리길의 출발지점인 동래읍성임진왜란역사관이 있다 . 지하철역에 있는 역사관이라는 것도 특이하지만 , 역사관이 생긴 이야기가 더 재미있다 . 2005 년 지하철 수안역 공사현장에서 조선시대 동래읍성의 해자가 발견 된다 . 해자란 성 밖에 땅을 파서 물을 흐르게 한 도랑이다 . 해자가 발견되자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 해자가 있던 곳에서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동래읍성 전투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뼈와 다양한 무기류가 출토 됐다 . 수많은 인골과 무기류는 임진왜란 당시 전투의 참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 그 현장은 일본군에 맞서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선열들의 기상이 깃든 역사의 현장이었다 . 선열들의 항쟁의 뜻을 기리고자 수안역에 동래읍성역사관을 세우게 된 것이다 .
수안역(동래읍성임진왜란역사관) 바닥에 있는 ‘수자기’
수안역으로 드나드는 문은 성문의 모양을 따서 만들었다 . 수안역 바닥에는 수자기 ( 帥字旗 ) 를 디자인해 놓았다 . 수자기 ( 帥字旗 ) 란 장수를 뜻하는 수 ( 帥 ) 자가 적혀 있는 깃발을 말한다 . 수자기는 총지휘관이 있는 본영에 꽂는 깃발이었다 . 조선시대 숙종 35 년 (1709 년 ) 에 처음 그려진 그림을 1760 년 변박이 다시 그린 그림 ‘ 동래부순절도 ( 보물 제 392 호 )’ 에서 수자기를 확인할 수 있다 . 일본군의 침략에 맞서 싸운 동래부사 송상현과 조선 병사들의 용기와 항쟁의 정신을 상징하는 깃발이 수자기였다 . 그래서 수안역 바닥에 수자기를 새겨 넣은 것이다 . 역사관에는 동래읍성 모형도 있다 . 객사 향청 군영 무기고 동헌 내아 작청 성문 등의 이름이 붙은 단추를 누르면 불이 들어와서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
수안역 5 번 출구로 나가면 전봇대에 동래부 동헌 , 동래 장관청 , 송공단을 알리는 안내판이 붙어있다 . 안내판에서 가리키는 방향으로 걷는다 . 가장 먼저 만나는 곳이 동래 장관청이다 . 동래 장관청 ( 부산시 지정 유형문화재 제 8 호 ) 은 조선후기 동래부 청사 건물의 하나로 , 군장관 ( 軍將官 ) 들의 집무소였다 .
수안역 5번 출구로 나가면서 본격적으로 동래읍성뿌리길을 걷게 된다.
동래 장관청
일본과 인접하고 있던 동래부는 국방상 요충지였다 . 1655 년 ( 효종 6 년 ) 에 독진 ( 獨鎭 ) 으로 승격됐다 . 1669 년 ( 현종 10 년 ) 에 동래부사 정석이 장관청을 창건했다 . 1706 년 ( 숙종 32 년 ) 동래부사 황일하가 지금의 자리로 옮겨 지었다 . 이후 여러 차례에 개조하는 과정에서 원래의 모습과 많이 달라져 1998 년 전면 해체한 뒤 복원했다 .
동래 장관청을 보고 나와서 다음 목적지인 만세거리와 동래부 동헌으로 가야하는데 이정표가 안 보인다. 길을 물었더니 부산은행을 끼고 우회전해서 가면 된다고 한다. 친절한 부산 아주머니의 안내에 따라 가다보니 만세거리 표석이 보인다. 표석 주변에 동래부 동헌과 동래시장이 있다 .
만세거리 표석
동래읍성뿌리길은 마땅한 이정표가 없다. 사진과 같은 안내판이 있는데, 길 초반부에만 있다.
만세거리와 동래부 동헌, 그리고 동래시장
동래부 동헌
만세거리를 알리는 표석에 따르면 만세거리는 옛 동래읍성 남문터 ~ 동래시장 ~ 동래구청 ~ 시민도서관 동래분관에 이르는 길목이다 .
1919 년 3 월 동래고보 ( 현 동래고 ) 와 범어사의 학림명정학교 학생들이 주도하고 시민들이 함께한 , 일제에 항거하고 독립을 외쳤던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던 거리다 . 만세거리 표석 옆에는 동래를 빛낸 독립운동가를 기리는 비석들이 서 있다 .
동래부 동헌으로 자리를 옮긴다 . 동래부 동헌은 조선시대 수령의 집무공간이었다 . 일본과 가까운 군사적 요충지였던 동래부를 두고 조선시대에는 태조 이성계 때부터 진을 설치하고 국방을 튼튼히 했다 . 명종 12 년 (1547 년 ) 에는 도호부로 승격되어 정 3 품 당상관이 부사가 되었다 . 임진왜란을 겪고 나서 효종은 1655 년에 경주진관에 속해 있던 동래를 독립된 진영인 독진으로 독립시켰다 .
임진왜란 이후 다시 일본의 군대가 우리의 땅에 발을 들인 일제강점기에 일제는 부산의 역사가 깃든 동래부를 동래군으로 격하시킨다 .
아픈 역사를 딛고 일어선 사람들은 임진왜란 당시 동래읍성 전투 현장에도 있었고 , 만세거리에도 있었다 .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동래시장에는 혼신의 힘으로 나라를 지키려고 했던 선열의 기상처럼 오늘도 삶의 활력이 넘쳐난다 .
동래부 동헌에 있는 미니어처. 임진왜란 당시 전투 장면을 모형으로 만들었다.
동래읍성 서문에 걸렸던 현판
시장 골목마다 왁자지껄 떠들썩한 소리가 가득하다 .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들이 흥정과 웃음을 주고받는다 . 좁은 장 골목 바쁜 걸음에 어깨를 스치는 일쯤은 아무렇지도 않다 . 시장 건물 안도 사람들이 많다 . 흥정에 배고파진 사람들이 식당으로 모여든다 . 멸치육수에 양념장을 얹은 옛날 손칼국수와 김밥을 함께 먹는 사람들이 많다 . 큰 접시에 자기가 먹을 나물 종류를 담아오면 양푼에 밥을 담아주는데 , 보리밥과 쌀밥을 섞어서 주기도 하고 보리밥만 먹을 수도 있고 , 쌀밥만 먹을 수도 있다 . 나물 얹은 고추장 비빔밥이다 .
시장 건물 뒤에 다음 목적지인 송공단이 있다 . 송공단으로 가는 길에 장 골목 다라에서 자맥질을 하던 물고기 한 마리가 펄쩍 튀어 올라 길바닥에 떨어진다 . 장 골목을 지나던 사람이 “ 이왕 그렇게 된 거 가서 방생하는 게 어떻겠냐 ” 고 농담을 하자 주변 사람들이 다 같이 웃는다 . 그들의 웃음을 뒤로하고 송공단으로 향했다 . 송공단은 1742 년 ( 영조 18 년 ) 동래부사 김석일이 세운 추념 제단이다 . 원래 임진왜란 때 동래부사 송상현이 순절한 정원루 터에 설치했었다 . 송상현을 비롯하여 동래성을 지키다 순절한 사람들을 모셨다 .
역사와 현재가 공존하는 마을
복천동고분군에 자란 나무들
송공단에서 다음 목적지인 복천동고분군으로 가는 길 이정표가 없다 . 다시 길을 물었다 . 복천동고분군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 차가 다니는 좁은 도로를 따라 가면 우성아파트 앞이 나온다 . 거기서 우회전해서 조금만 가면 복천동고분군이다 .
복천동고분군은 복천동 일대 언덕에 있는 가야 시대 무덤들이다 . 여러 차례에 걸친 발굴조사로 40 여 기의 무덤이 확인됐다 . 무덤은 대부분 땅 아래 남아 있다 . 언덕에는 무덤 봉분이 하나도 없다 . 발굴한 무덤 자리 중 몇 곳에 키 작은 나무를 둘러 심어 무덤이 있던 자리를 알리고 있다 . 이곳 무덤들에서 2000 점 이상의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
복천동고분군
복천동고분군은 낮은 언덕처럼 보인다 . 그곳이 고분이라는 사실을 모르면 마을에 있는 언덕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 고분 곳곳에 나무가 자라고 , 길을 냈다 . 나무가 있는 언덕길에서 사람들이 산책을 즐긴다 .
복천박물관
복천동고분군에 난 길을 따라 복천박물관에 도착했다 . 복천박물관 제 1 전시실은 선사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 무덤의 형식을 알 수 있는 곳이다 . 제 2 전시실에는 복천동고분군에서 출토된 다양한 유물을 확인할 수 있다 .
복천박물관에서 나와 동래읍성역사관에 도착했다 . 동래읍성에 관한 자료를 보고 , 동래읍성 축소모형을 보며 동래읍성의 위치와 지형을 알아본다 . 동래읍성역사관 뒤에 장영실과학동산과 내주축성비 , 그리고 동래읍성뿌리길 도착지점인 동래읍성 북문이 있다 . 장영실과학동산에서는 해시계 , 간의 , 혼천의 등 장영실의 업적이 담긴 고천문의기들을 볼 수 있다 .
내주축성비는 1731 년 ( 영조 7 년 ) 에 동래부사 정언섭이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된 동래성을 대대적으로 수축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건립한 비다 . 비석 내용에 따르면 1731 년에 성터를 측량하고 연인원 41 만 7050 명 , 쌀 4585 석 , 베 1552 필 , 전 ( 錢 ) 1 만 3454 냥으로 4 월에 성벽을 축조했다 . 이어 5 월에 성문 , 7 월에 문루를 완공했다 . 이때 완성된 성은 둘레 약 3.8km, 높이 5.1m 였다 .
내주축성비
장영실과학동산
내주축성비를 지나 도착지점인 동래읍성 북문에 올랐다 . 장영실과학동산 , 동래읍성역사관 , 복천동고분군이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마을과 한데 어우러진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
동래읍성 북문
수안역 안 동래읍성임진왜란역사관 - 동래 장관청 - 만세거리 표석 - 동래부 동헌
- 동래시장 - 송공단 - 복천동고분군 - 복천박물관 - 동래읍성역사관 - 장영실과학동산 - 동래읍성 북문
(2.3km,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30~40 분 )
찾아가기 * 지하철 - 출발지점이 부산 지하철 수안역이다 . * 버스 - 수안역 ( 동래교차로 ) 버스정류장에 129-1. 144. 148. 200. 307. 506. 31. 43. 44. 57 번 버스 ( 동래시장 방향 ) 가 정차한다 . 돌아오기 * 마을버스 - 복천박물관 버스정류장에 동래구 6 번 마을버스가 정차 한다 . * 도착지점인 동래읍성 북문에서 다시 수안역까지 걸어도 좋다 .
화장실 수안역, 동래시장 건물, 복천박물관 식당 및 매점 도심을 걷는 코스기 때문에 식당 및 가게 많음 숙박 부산 시내 숙박업소 이용 코스 문의 부산시 동래구 문화관광관 051-550- 4082
글, 사진: 장태동(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