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시대. 그럼에도 우리는 ‘연탄’과 ‘산동네’ 등, 희미해져가는 단어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감상에 젖는다. 그렇게 정겨웠던 지난날을 추억하는 건 지친 삶을 달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인천둘레길 11코스엔 ‘연탄길’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이름만으로도 이미 어린 시절, 연탄이 그득하게 쌓인 골목길을 누비던 그 때가 떠오른다. 연탄길은 사라져가는 풍경을 아직 붙잡고 있다. 재개발에 밀려 사라져가는 골목길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고 미로 같은 산동네 풍경이 아직도 남아있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옛 추억을 안겨주는 곳이다.
우각로 문화마을
연탄길이 시작되는 도원역(왼쪽). 우각로 문화마을로 이어지는 언덕길은 꽤나 가파르다.
인천둘레길 11코스 연탄길의 시작은 지하철 1호선 도원역에서 시작된다. 도원역을 빠져나와 왼쪽으로 발걸음을 돌리면 바로 연탄길이 시작된다. 2017년 9월 현재 도로 개선 공사 중이니 반드시 안전 펜스 안쪽으로 걷는 것이 안전하다. 3~4분 남짓 발걸음을 이어가면 굴다리 하나가 나타나고 그 곳을 통과하면 오르막길로 이어지는 우각로 문화마을이 나타난다. 우각로 문화마을은 한 때 재개발로 인해 숨이 죽어버린 이 지역에 2012년부터 지역문화예술인들이 빈 집 벽에 벽화를 그리며 활기를 불어넣은 곳이다. ‘우각로’라는 이름은 마을의 모습이 휘어진 뿔 모양이라 붙여졌다. 이 부근엔 인천 개항 시기에 조계지에서 밀려난 조선인들에 의해 동네가 형성되기 시작했고, 한국전쟁 이후엔 고향을 잃은 피난민들의 모여 사는 등 많은 이야기가 얽힌 곳이다.
우각로 문화마을 담벼락 곳곳에 숨어있는 벽화
마을의 역사만큼이나 오랜된 골목길 사이를 걷다보면 담벼락마다 알록달록한 벽화가 나타난다. 재미있는 건 집집마다 벽화가 주욱 이어진 게 아니라 골목길을 걷다보면 간헐적으로 벽화를 마주치게 되는 점이다. 저벅저벅 골목길 사이를 누비다 보면 우각로의 옛 모습이 담긴 벽화와 원색으로 화려하게 그려진 벽화가 문득문득 튀어나온다. 마치 벽화와 숨박꼭질을 하는 기분이다. 이쪽으로 가면 파스텔톤으로 칠해진 ‘행복도서관’이 나오고 저쪽으로 가면 푸른색으로 칠해진 문화마을 사무소가 나온다.
길바닥에 늘어선 마른 고추가 정겨움을 더한다.
조금 더 높은 언덕으로 향하니 햇살 좋은 날을 맞이해 마을 지천엔 고추가 마르고 있다. 꼬부랑 할머님들이 소쿠리에 고추를 가득 담아와 그냥 바닥에 휙휙 뿌리고 지나가신다. 덕분에 조심조심 고추를 피해가며 걸어야하지만 정겨운 모습에 괜히 웃음이 난다. 마을의 가장 높은 곳으로 오르면 마을 구 전도관이 여행자를 반갑게 맞이한다. 고종의 주치의였던 알렌 미국영사가 별장으로 사용했던 곳으로 현재는 교회 예배당으로 사용 중이다. 제법 가파른 산동네 꼭대기에 위치해 있기에 전도관 담벼락에 오르면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힌다. 그래도 마을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니 그 풍경을 감상하며 잠시 쉬어가면 좋다. 단 번에 눈길을 사로잡는 풍경은 아니지만 그 안을 걸으면 점점 빠져들게 되는 풍경이다. 길도 사람도 천천히 빠져드는 것이 좋다.
좁은 골목길이 이어져 길이 헷갈릴 땐 인천둘레길 간판을 따르면 된다.
금창동 주민센터에서 창영 초등학교까지
인천세무서로 가는 길엔 유독 오랜된 옛 집들이 많다.
우각로 문화마을을 빠져나오면 인천세무서로 이어지는 길이 나타난다. 주변엔 유독 오래된 전통가옥들이 이어진다. 삐걱거리는 나무집들을 지나치다보면 시간여행이 시작되는 듯하다. 점차 사라져가는 풍경들을 만날 수 있어 호기심에 절로 다리에 힘이 들어간다. 세무서 지나 금창동 주민센터로 이어지는 언덕길에도 형형색색 벽화가 이어진다. 동명초등학교 담벼락을 가득 메운 벽화는 ‘금창 어린이집’. ‘창영사’등 지역 상호까지 넣어 그렸다. 세심하게 그린 벽화를 보며 이 지역 주민들이 얼마나 흐뭇했을지 생각하니 나까지 흐뭇해진다. 이 주변은 어르신들이 많은 지역이다 보니 골목이나 거리에 낡은 쇼파와 의자가 생뚱맞게 놓여있다.그래서 골목길 자체가 어르신들께는 쉼터이자 수다방이 된다. 재잘거리는 꼬마들의 목소리보단 손뼉을 치며 대화를 나누는 할머님들의 목소리가 많이 들린다.
금창동 주민센터로 가는 길에 나오는 길다란 벽화
창영 초등학교 인천 3.1운동의 시작점이 된 곳으로 백 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금창동 주민센터를 지나 내리막길을 내달리면 창영초등학교가 나타난다. 그냥 지나치기엔 섭섭한, 역사가 숨쉬는 초등학교다. 1907년에 개교한 창영초등학교는 1919년 인천 3.1운동의 시발점이 된 곳으로 그 자체로 대한민국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순국선열들의 그 외침이 내후년이면 백 주년을 맞이하게 된다. 창영 초교의 담벼락에도 벽화가 촘촘한데 벽화의 작가는 모두 창영 초교의 학생들이다.작은 타일에 고사리 손으로 그려 넣은 그림들이 모자이크처럼 이어진다. 학교 앞 매점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 물고 걸으니 나의 초등학교 시절이 떠올라 다시 추억에 잠긴다.
창영 초교 학생들이 타일에 그린 벽화
배다리 헌책방거리
한미 서점은 드라마 ‘도깨비’에 등장해 인기 서점으로 등극했다.
창영 초등학교에서 이어지는 배다리 헌책방거리는 연탄길에서도 가장 인기가 높은 곳이다. 언제 찾아가도 반가운 헌책방이 줄줄이 이어지기도 하고 최근엔 인기드라마 ‘도깨비’가 촬영된 곳이기 때문이다. 특히 드라마에 직접적으로 등장한 한미서점은 이 동네 최고의 인기 서점이다. 노란색 페인트로 곱게 외관을 칠한 서점엔 인증샷을 찍기 위해 몰려든 여학생들이 키득거리며 사진을 남긴다. 학생들의 눈치를 보며 서점 입구에 늘어선 독특한 디자인의 미니북을 하나 사들었다.괜스레 소녀감성이 폭발한다.
배다리 헌책방거리 초입에 있는 조형물
헌책방에 가득 들어찬 책 속에 파묻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신정희 장군 동상 너머로 보이는 송현동의 전경
송현근린공원은 다양한 조형물과 체육공간, 산책로 등을 갖추고 있다.
송현근린공원에 자리 잡은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은 꽤 큰 규모를 자랑한다.
달동네박물관에 실감나게 재현된 1960-70년의 동네 풍경.

찾아가기
* 지하철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편하다. 지하철 1호선 도원역에서 하차하면 바로 둘레길이 이어지며 둘레길이 끝나는 지점에 1호선 동인천역이 나타난다.
버스로 도원역 이동시 간선버스 15번, 22번, 28번 등 이용.
돌아오기
1호선 동인천역에서 서울 방향 지하철 탑승.
화장실
도원역, 인천세무서, 금창동주민센터, 송현근린공원, 동인천역 등에 있다.
음식점 및 매점
인천세무서, 금창동주민센터 등 주요 관공서가 있는 구간이므로 편의점이나 슈퍼마켓, 음식점 등은 쉽게 찾을 수 있다.
숙박업소
도심에 있는 짧은 걷기 코스라 딱히 숙박이 필요하진 않지만, 만약 필요하다면 도원역과 동인천역 주변에 숙박업소들이 몰려있다.
코스문의
인천지속가능발전협의회 032-433-2122
글, 사진: 태원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