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중구] 구슬픈 김광석 노래가 흐르는 골목길 - 대구 중구 골목투어 4코스 삼덕봉산문화길
2017-10 이 달의 추천길2017-09-28
조회수1,606
대구 중구 골목투어는 대구의 원도심이라 불리는 중구의 근대 문화유산을 찾아가는 골목길이다. 동네와 동네를 실핏줄처럼 이어주는 골목에서는 잊힌 대구 역사,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도란도란 들려온다. 그중 4코스 삼덕봉산문화길은 역사와 예술이 숨 쉬는 길이다. 국채보상운동 기념공원, 김광석길과 방천시장, 봉산문화거리, 건들바위 등을 두루 둘러본다.
400년 동안 영남의 중심지, 중구
대구 중구는 옛날 읍성이 있었으며 조선 중기 이후로 400년 동안 영남의 중심지였다. 산업화 이후 외곽에 신도시가 생겨나면서 인구가 빠져나가 지금은 조용한 동네로 변했다. 중구는 오랜 역사만큼 많은 인사를 배출했다. 시인 이상화(1901~43), 소설가 현진건(1900~43), 독립운동가 서상돈(1850~1913), 가수 김광석(1964~96), 대우그룹 창업자 김우중(1936~) 등 시대를 풍미한 사람들이다. 대구의 골목길에는 유명 인사뿐 아니라 평범한 대구 사람들의 이야기가 묻어 있다.
국채보상운동의 역사를 알기 쉽게 전시한 국채보상운동 기념관.
4코스의 출발점은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이다. 동대구역에서 길을 건너 버스를 타면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주민들이 한가롭게 운동하며 쉬는 공원 안에 국채보상운동 기념관이 자리한다. 국채보상운동은 1907년 2월 서상돈 등의 제안으로 일본에서 도입한 차관 1300만 원을 갚아 주권을 회복하고자 했던 운동이다. 비록 실패에 그쳤지만, 국권 회복의 물결은 3.1운동으로 이어졌다. 특히 이 운동에는 여성들, 기녀들의 참여가 두드러졌다고 한다. 신분에 관계없이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은 다르지 않았다.
국채보상운동 기념관 안에는 당시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일본식 가옥 형태인 옛 대구 삼덕초등학교 관사. 현재 ‘삼덕마루’란 이름의 주민 도서관으로 사용한다.
기념관을 나와 중앙도서관과 한국은행 앞을 지나면 경북대학교 병원을 만난다. 병원 앞에는 고풍스러운 붉은 벽돌 건물이 남아 있다. 삼덕동주민센터를 지나면 전형적인 일본식 가옥인 삼덕마루를 만난다. 이곳은 삼덕초등학교의 옛 관사다. 1939년 대구덕산공립심상소학교 교장 관사로 건축된 목조건물이다. 지금은 건물을 고쳐 주민 도서관으로 개방하고 있다. 안으로 들어가자 넓은 다다미 마루에서 책을 읽는 주민들의 모습이 보기 좋다. 옷장 안에 아이가 들어가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 한 폭의 그림 같다.
삼덕초등학교 앞 거리에는 다양한 벽화가 그려져 있다.
삼덕초등학교를 지나 달구벌대로를 건너면 대봉동 방천시장을 만난다. 방천시장 안에 김광석길이 있다. 거리 입구에 김광석이 기타 치며 노래 부르는 동상이 서 있다. 그 모습에서 가슴이 찌르르해 온다. 불현듯 우리들 곁을 영원히 떠나 버린 김광석. 그러나 그의 노래는 아직까지 우리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골목으로 들어서자 김광석이 웃으며 반긴다. 350m 길이의 골목은 온통 김광석 그림과 음악으로 가득하다. 지금까지 작가 47명이 시장 제방 벽에 김광석을 그려 넣었다고 한다.
방천시장의 부활, 김광석길
영원한 가객, 김광석을 기리는 김광석길에서는 하루 종일 그의 구슬픈 노래가 흘러나온다.
김광석길은 방천시장의 부활사업을 통해 탄생했다. 낙후된 방천시장은 2011년 문화체육관광부의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인 ‘문전성시 프로젝트’에 선정되면서 싹 달라졌다. 미술작가들이 방천시장을 대표하는 인물을 앞세운 시장 부활사업을 시작했다. 그때 찾아낸 인물이 바로 김광석이다.
김광석길 입구에는 노래 부르는 김광석 동상이 서 있다.(왼쪽) / 김광석길에는 김광석을 추억하는 다양한 벽화가 있다.
정겨운 인심이 살아 있는 방천시장 골목.
방천시장을 둘러보고 나오면 봉산동으로 이어진다. 골동품 가게와 갤러리가 모여 있는 봉산동의 대구의 인사동이라 불린다. 대구제일중학교 옆을 지나면 대구향교로 들어선다. 1398년에 창건된 유서 깊은 향교다. 향교를 둘러보고 나와 골목을 좀 더 걸으면 건들바위가 나온다.
1398년에 창건된 유서 깊은 대구향교.
건들바위는 바위의 모습이 삿갓을 쓴 노인과 같다고 해서 입암, 즉 삿갓바위라고도 불려왔다. 생김새가 기이하게 생겨 점쟁이와 무당들이 몰려와 치성을 드렸으며, 특히 아기를 가지지 못한 부녀자들이 아들 낳기를 기원하며 치성을 드렸다고 한다. 원래 바위 앞에는 냇물이 흘렀는데, 1776년 대구판관 이서가 이 일대의 하천범람을 막기 위해 제방을 만들면서 물줄기를 돌려 물이 흐르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건들바위에서 삼덕봉산문화길은 마무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