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순천] 선암사 겹벚꽃 구경부터 송광사까지, 남도삼백리 9코스 천년불심길

2019-05 이 달의 추천길 2019-06-02
조회수310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거니는

답사 트래킹

'남도삼백리 9코스 천년불심길'

노성경님


늦은 4월. 이맘때가 되면 선암사는 사방 천지 분홍빛 겹벚꽃이 만발해 사찰을 찾는 방문객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천 년이라는 세월. 100년도 채 살기 힘든 인간의 수명을 생각한다면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시간이다. 존재가 무엇이든 앞서 천년이라는 어구가 붙는다면 이미 정점에 들어섰다는 증거. 측정할 수 없는 오랜 시간 동안 꾸준히 한길을 걸어왔다면 그게 무엇이든 특별함을 품고 있을 테다. 한 반도 5천 년의 역사. 그 속에서 천 년. 가장 먼저 만연한 봄기운을 느낄 수 있는 전라남도에서 무려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꾸준히 한자리를 지켜온 보물이 있다.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가장 한국적인 사찰을 거닐다.


도로명)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선암사길 450

(지번) 전남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 802에 위치한 선암사 매표소.

남도를 대표하는 명산 조계산(884m)은 송광산(松廣山)이라고도 불리며 전라남도 진안, 소백산맥 끝자락에 솟아 있다. 전국의 여느 명산들이 그렇듯 조계산 역시도 울창한 숲과 깊은 계곡. 시원하게 떨어지는 폭포, 맑은 약수 등으로 전국에서 찾아오는 방문객들에게 자연이 가지고 본연의 소중함을 선물한다. 산 기운이 강하다 보니 이름난 절도 두 곳이나 자리하고 있다. 지난해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선암사와 삼보사찰 가운데 하나인 송광사가 사이좋게 동, 서에서 마주한다. 수려한 산수에 드높은 불심을 가진 고찰이 있는 만큼 길(路)이 빠질 수 없다. 선암사에서 시작해 조계산의 고갯길을 넘어 송광사까지 이어지는 답사길. 천년 불심 길이 바로 그곳에 있다.

크게 한 바퀴 남도를 그리는 남도삼백리 9코스 천년불심길은 선암사 주차장에서 시작해 선암사 - 자연생태관 - 큰굴목재 - 보리밥집 - 송광사 - 송광사 상업지구까지 이어지는 12km 길이다. 소요 시간은 대략 4시간. 평지가 아닌 산을 넘는 코스다 보니 길의 길이에 비해 다소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또한, 884m의 산자락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이어져 평소에 운동을 하지 않았다면 다소 어려움이 따를 수도 있다. 하지만, 워낙 풍광이 뛰어난 데다 길의 시작과 끝에 쉼과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사찰들이 있어 쉬엄쉬엄 걷다 보면 이내 곧 완주를 하게 된다. 여행 전에 앞서 마실 물, 간식. 산길에도 미끄러지지 않고 다닐 수 있는 트래킹화를 준비하면 좋다.


  


오랜 세월을 짐작게 하는 한 쌍의 장승이 선암사로 들어섰음을 알려준다.

매표소를 지나면 이내 곧 코스 시작을 알리는 팻말이 보인다. 선암사에서 편백나무 숲길을 지나 자연생태관까지만 들어서면 그 뒤부터는 팻말을 따라 어렵지 않게 송광사까지 갈 수가 있다. 산길 대부분이 외길인데다 길이 나누어지는 곳에 정확히 팻말이 있으니 오롯이 걷는데만 집중하면 된다.


매표소를 지나면 호젓한 숲길이 이어지는데 온 사방이 싱그러움으로 가득하다. 완전한 신록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이르긴 하지만 복잡한 도심에서 쌓인 눈의 피로를 덜어주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그리고, 눈으로 확인한 푸르름은 이내 곧 코로 이어진다. 진득한 숲 내음. 맘껏 기지개를 펴고 깊게 숨을 들이켜본다. 온몸 가득 충만해지는 자연의 기운은 결국 미소로까지 번지게 한다. 조계산은 곱향나무와 이팝나무 등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수목들은 물론이고, 셀 수 없이 다양한 수종이 있어 전라남도 채종림으로 불린다.


마치 퍼즐 조각을 맞춘 것처럼 한치의 빈틈도 없이 정교하게 맞물려있는 무지개 모양의 돌다리는 조선 숙종 때 만든 승선교로 보물 400호로 지정되어 있다. 자세히 보면, 다리 아래에 용머리 장식이 있는데 이는 사악한 기운을 제압하는 징벌의 의미가 있다. 또한, 이것이 뽑히면 다리가 무너진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반원형 홍예 사이로 보이는 누각. 쉴 새 없이 흐르는 계곡은 현실 세계를 벗어난 기분마저 들게 한다.

 
 



눈길 닿는 곳마다 소담스러운 볼거리로 가득한 선암사 어귀.


가장 한국적인 모습을 한 고찰이라고 했다.

빛바랜 대웅전의 모습이 고즈넉함을 더하고, 오랜 세월을 짐작게 했다.





  

산지 가람의 본래 모습의 가장 선명하게 그려진 선암사는 사찰 전통문화가 가장 많은 절로도 유명하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 겹처마 팔작집으로 단아하면서도 장중한 대웅전을 필두로 동서 모양이 거의 일치하는 삼층석탑 같은 보물 외에도 다양한 볼거리들이 경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사찰. 단순히 마음을 수양하고 정진하는 곳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아름답기만 하다.



늦은 4월. 선암사의 백미는 누가 뭐래도 분홍빛 설렘을 품은 겹벚꽃이다. 다른 벚꽃들이 지고 나서야 만발하기 시작하는 겹벚꽃의 고운 자태는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선암사 겹벚꽃은 고즈넉한 사찰의 경내 분위기와 어우러져 독특한 매력을 내뿜는다. 꽃의 색(色)만 보자면 한국적인 미(美)와 차이를 보이지만, 이상하게도 선암사에서만큼은 전통적인 아름다움이 선명하게 그려져있다. 덕분에 2시간 지나고 나서도 길을 나서지 못하고 발길이 묶여 있었다. 이야기가 있는 길을 소개하는 것도 좋겠지만 한 번쯤은 편안하게 사진으로 풀어나가는 것도 좋을 듯하다 :)

 
 




빨주노초파남보 원색의 무지갯빛 보다 더욱 마음을 설레게 하는 선암사의 색(色).

 



  

소박한 아름다움이 있다는 이야기와는 달리

실제로 마주한 4월의 선암사는 갖가지 화려함으로 멋을 뽐내고 있었다.


봄의 시작을 알리는 선암매를 시작으로 동백과 산수유, 진달래, 개나리

그리고, 겹벚꽃까지. 선암사의 봄은 아름드리 꽃 향연이 끊이질 않는다.

 



경내를 한 번 스케치하는데 돌아보는 시간 30분. 그렇게 세 바퀴나 돌아봤다. 돌아보는 중간중간에 몇 번이고 발길을 멈추고 감상을 시간을 가졌다. 말이 사찰이지 하나의 꽃 대궐에 들어선 기분이다. 곳곳에 피어있는 아름드리 꽃들. 이름조차도 모르지만 하나같이 눈길을 끌지 않는 것이 없다. 저마다의 꽃들이 아름다움을 뽐내는 모습에 절로 콧노래를 흥얼거리게 된다. 사시사철 이토록 고속 창연한 모습을 마주한다면 속세를 떠날만하겠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 곳곳에서 감탄을 하느라 번뇌가 들어설 틈조차도 없을 듯하다.

 
 

처음 봤을 때도 아름답고 다시 봐도 아름답다. 지겨울 정도로 시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아름답기만 하다. 경내를 가득 메우는 짙은 꽃내음. 고요하면서도 강한 힘이 느껴지는 목탁소리. 방문객들의 웃음소리. 산새들의 지저귐. 온갖 것들이 선암사를 찾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선사한다.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트래킹 코스.


선암사를 벗어나면 다시 울창한 숲길이 이어지고,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조계산 생태체험 야외 학습장.

오만가지 빛을 내뿜는 조계산은 살아있는 식물원 그 자체인 듯했다. 덕분에 길을 나서야 되는데 한 발 걷기가 무섭게 다양한 볼거리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가다가 멈추기를 몇 번을 반복하고 나서야 이내 곧 마음을 다잡고 속도를 붙여본다. 아니면 정말 꼼짝없이 산 속에 틀어박혀버릴지도.


피톤치드 가득한 편백나무 숲에서 크게 한 번 숨을 쉬고 나서는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자연 생태 야외학습장을 지나면 본격적인 오르막길이 펼쳐져 산자락인 큰굴목재까지 이어진다. 초반에 너무 평탄한 길이 이어졌기 때문일까?? 금방 숨이 가파 온다. 앞서 선암사에서 예상외로 많은 시간을 지체했기에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것도 발길을 어지럽게 했다. 젖 먹던 힘까지 짜내며 오르는데 금방이라도 다리가 풀려버릴 것만 같았다. 그 모습이 너무나 위태해 보였던 걸까?? 반대편에서 오는 행인이 여기만 지나면 끝이라며 응원의 손길을 보낸다. 가장 듣고 싶어 했던 말이 들려오자 거짓말처럼 힘이 난다. 한치 틈도 없이 빽빽하게 쌓여있던 수목의 지붕도 조금씩 틈이 벌어져 하늘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자 가픈 숨도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다.


옛 스님들이 수행의 길로 이 길을 걸었다는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다. 자연히 번뇌를 떨쳐버릴 수밖에 없는 길. 걷다 보니 수행자가 된 기분이다. 깨달음을 얻거나 득도는 하지 못하더라도 한 발 한 발 무거운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계속해서 성취감이 이어진다. 단순히 힘들다고 성취감을 느끼는 건 분명 아니다. 어쩌면, 정기를 품은 명산이 주는 바로 그것일지도.

 



바람이 휘날리는 태극기 아래 보이는 팻말. 전국의 유명한 길 중에서 코스 중간에 명소가 아닌 식당 이름이 들어간 곳에 몇이나 될까?? '조계산 보리밥집'은 조계산 산자락을 넘나드는 이들에게 오아시스와 같은 존재다. 오죽하면 보리밥집이 좋아 조계산을 찾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 먹거리 준비를 하고 오든, 그렇지 않든 누구나 짐을 내려두고는 잠시 쉬어간다. 겹벚꽃 하나에 아무런 생각도 없이 무작정 달려오느라 간식하나 준비하지 못한 나에게 있어서는 생명줄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 때문에 심히 과하게 상차림을 주문했다. 아직 절반. 갈 길이 먼 데도 불구하고 동동주까지 한 사발이나 주문을 했다. 주향이 진했다. 커다란 파전이 입안 가득 군침을 돋게 했다. 새콤달콤한 초장으로 비벼진 산채비빔밥은 6,0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도 불구하고 감동을 선사했다. 30분간의 꿀같은 여유를 만끽하고 난 뒤에는 힘차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밥심과 막걸리 기운에 가뿐하게 굴목재에 도착. 이제 칠부 능선을 넘은 셈이다.

  

천년불심길의 마지막 능선 큰굴목재를 지나고부터는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선암사와 함께 조계산을 대표하는 사찰인 송광사까지는 지척. 각각의 사찰이 가진 기운이 다른 걸까?? 신기하게도 선암사에서 보이던 편백나무와 참나무가 아닌 이전에 없던 소나무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알고 봤더니 송광(松廣)이라는 이름 자체도 지천에 소나무가 널려 있어서 붙은 이름이라고.


 

산자락을 넘어 다시금 평지로 들어서게 되면 농작물을 심은 밭이 보인다. 실질적인 9코스의 끝. 그리고, 대망의 송광사로 접어드는 순간이다. 송광사까지는 흙길로 된 평지가 이어진다. 그간 오르락 내리락하며 고생했던 다리를 주무르며 다시 한 번 마지막 힘을 내보기로 했다. 9부 능선을 지난 다음 남겨진 것은 다시없을 화려한 멋을 풍기는 사찰을 감상하는 일만 남았다 :)



선암사만큼은 아니지만 송광사에도 분홍빛 설렘을 담은 겹벚꽃을 볼 수가 있다.


고즈넉한 전각 옆으로 흐르는 계곡물이 참으로 맑았다.

송광사는 오랜 불교 역사의 전통 승맥을 계승한 승보사찰로, 합천 해인사 그리고, 양산 통도사와 함께 삼보 사찰로 불린다. 여기서 삼보(三寶)란 부처를 상징하는 불(佛), 부처의 말씀인 경전을 상징하는 법(法), 부처님을 따라 수행과 중생 구제를 하는 승(僧)를 말하며, 이를 각각 불보, 법보, 승보라 부른다. 역사서에는 보조국사 지눌이 당시 타락한 불교를 바로잡기 위해 정해 결사를 벌였던 도량으로 소개되고 있다.


송광사_반월형의 누각에서 바라본 임경당의 모습과 반영을 그리는 돌다리


송광사_돌다리에서 바라본 임경당과 반월형의 능허교.

천왕문을 지나기 위해서는 무지개 모양의 돌다리인 능허교를 건너야 하는데 그 풍광이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멋스럽고, 고색창연한 빛을 내뿜었다. 맑은 소리를 내며 흐르는 계곡 양쪽에 축대를 쌓아 만든 수로는 그 옛날 만든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정교함을 자랑한다. 축대 안으로 나와 있는 기둥 위로는 고풍스러운 누각, 임경당이 자리하고 있는데 수로의 풍광과 어우러져 호방한 기운이 넘실댄다. 양쪽으로 보이는 반월형의 능허교와 감성을 자극하는 돌다리. 동서 어디로 보든 수면에 비친 그 모습이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불심이 아니더라도 아름다운 그 모습에 취해 꼭 다시 한 번 오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선암사와 달리 송광사는 스님들의 수행공간이 곳곳에 있어 출입이 제한되는 곳이 많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분위기의 두 사찰. 길의 시작과 끝에 이토록 찬연한 빛을 내뿜는 사찰을 두 곳이나 만나볼 수 있는 길이 또 있을까?? 천년불심길. 남도삼백리의 길도 긴 길 중에서 특히나 드높은 이름을 날릴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화려하면서도 웅장한 분위기를 품은 송광사를 돌아보며 다시 한 번 답사 여행길의 매력에 흠뻑 빠져본다.


능허교로 건너 천왕문을 통해 송광사 사찰 내로 들어와 나갈 때는 홍예교와 마주한 돌다리를 건너기로 했다. 돌다리만 건너면 험난했던 여정의 마침표를 찍게 된다. 선암사에서 큰굴목재로 이어지는 길이 다소 험난하긴 했지만 명산이 주는 무한한 정기를 만끽할 수 있었기에 종국에 이르러서는 힘들었단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힘들지 않은 게 아니라 여정의 끝에서 찾아오는 아쉬움이 더욱 컸다고 보는 게 맞는 듯하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이질적인 감정 때문인지 쉽게 다리를 건널 수가 없었다. 결국, 돌다리 앞에 주저앉아 한참을 멍하니 바라봤다. 전국의 수많은 여행지를 돌며, 전국의 수많은 사찰들을 탐방하는 동안 아쉬움을 이렇게 선명하게 느꼈던 적이 또 있었을까?? 명확하게 설명할 순 없지만, 산과 절로서 이름을 떨치는 데에는 분명히 그만한 이유가 있는 듯하다 :)


▶︎걷는 시간

약 4시간

▶︎걷는 거리

약 12km

▶︎걷기 순서

선암사 주차장 - 선암사 - 야생체험관 - 생태체험관 - 굴목재 - 보리밥집 - 송광사

▶︎코스 난이도

▶︎교통편


KTX 순천역과 순천 종합버스터미널 앞에서 111번 탑승 (버스 시간 위의 이미지 참조)

▶︎코스 문의

순천 시청 관광진흥과 : (061)-749-4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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