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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남원] 봄이 오는 소리를 들으며 걷는, 교룡산 둘레길

2021-04 이 달의 추천길 2021-03-26
조회수1,027

봄이 오는 소리를 들으며 걷는

교룡산 둘레길

글, 사진 : 여행작가 이소민




교룡산 둘레길의 쉬어가는 정자에서

차가운 공기가 옷 속으로 스며들던 지난겨울, 집안에 고양이처럼 웅크리고 앉아서 나는 다짐했다.

돌아오는 봄에는 꼭 계절 속을 천천히 거닐겠다고.

그리고 어느덧 앙상한 나뭇가지 위로 푸릇푸릇 한 새싹이 돋아나는 봄이, 나에게도 찾아왔다

. 이미 남쪽에는 꽃이 피고 날이 따뜻하다던데, 가만있을 수 있어야 말이지.

서둘러서 짐을 싸 전라북도 남원으로 달려가 본다.

최고 기온 18도.

남원에 도착도 하기 전, 이미 코끝으로 느껴지는 향긋한 봄 내음과 따뜻한 햇살이 나를 설레게 한다.

가벼운 옷차림과 오래 걸어도 괜찮을 운동화,

그리고 숲으로 가는 나의 선택이 아주 탁월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 숨어있는 봄을 찾으며 걷는 교룡산 둘레길

남원은 예로부터 사계절 아름다운 지리산과 섬진강이 어우러진 자연의 고장이다.

그중에서도 교룡산성 아래쪽 산허리를 휘감아 도는 8.3km의 순환형 둘레길은

숲길부터 마을 길, 체육시설과 야영장 등 볼거리가 많기로 유명하다.

둘레길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함께 차분히 길을 거닐며 마음의 여유를 찾아보도록 하자.



교룡산 둘레길의 안내판. 마을을 두 개 지나가는 8km 둘레길이다

레길의 시작점은 바로 교룡산 국민관광지이다.

어느 방향으로 돌아도 다시 돌아오게 되는 순환형 코스이기 때문에 그 어디로 돌아도 괜찮다.

나는 푸릇푸릇 한 운동장이 보이는 방향으로 걸어보기로 했다.

교룡산 국민관광지는 산 중턱의 교룡산성과 옛 승병장의 본거지인 선국사 등을 비롯하여

각종 체육시설과 야외 민속전시장 등을 갖춘 국민관광지이다.

누구나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게 무료 개방해두어 이미 많은 시민분들이

산책 겸 운동을 하고 계시는 걸 볼 수 있었다.


교룡산 국민관광지의 화장실. 둘레길을 걸으면서 화장실을 찾기 어렵기 때문에 미리 가두어야 한다


오늘 나를 안내해 줄 교룡산 둘레길 이정표


시민분들이 이용하실 수 있게 만들어둔 넓은 운동장

이른 봄 날씨 탓인지 운동장 옆 울타리의 나무 가지들에는

어느덧 연둣빛의 새싹들이 수줍게 인사를 하고 있다.

걷는 내내 숨어있는 봄들을 찾는 재미에 푹 빠져 열심히 셔터를 눌러보다가

푸른 잔디의 운동장에 내심 누워 보고 싶어 달려가 보았다.

푹신푹신.

이 얼마 만의 운동장인지 저절로 콧노래가 흘러나와 마냥 신이 난다.

혼자 이 봄날을 즐기는 게몹시나 아쉬웠지만,

사진으로 남겨 친구들을 보여주겠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셀프 사진을 담아 본다.

실제로 친구들은 내 사진을 받고 봄을 사무치게 그리워했다.

괜찮아, 그곳도 이제 곧 봄이 찾아갈 테니.

 


수줍게 피어난 봄


어쩐지 둘레길의 시작을 알려주는 듯 한 작은 다리. 다리 옆 푸릇푸릇한 나무들이 새심 봄임을 한 번 더 알려준다

다리를 지나 5분 정도 걸었을까.

둘레길의 오른쪽 언덕 위로 예쁜 정자들이 보인다.

아직 둘레길을 시작조차 안 했음에도 불구하고,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기에 잠시 앉아있다 가기로 한다.

이미 정자에는 산책 나오신 어르신 몇 분이 앉아계셨는데,

어디서 하늘하늘한 치마를 입고 온 여자 하나가 카메라를 들고 다가가니

호기심 어린 눈으로 말을 걸어 주신다.

- 아가씨, 여기가 처음인가 봐~ 사진 찍으러 왔나 보다.

- 네, 오늘 여기 걸어보려고 서울서 왔어요. 완전한 봄 날씨이네요 남원은

주거니 받거니 얘기를 나누다가 은근 슬쩍 어르신께 간식도 얻어먹어본다.

이런 게 바로 정이지 싶어 나도 초콜릿 몇 개를 건네드리고 다시 길을 나섰다.


느긋하게 쉬었다가 가라고 만들어둔 정자


메타세콰이어 나무들 옆으로 정자가 여러 개가 있는데, 봄에는 피크닉 하기에 너무 좋을 것 같았다


#고즈넉한 산길의 매력

구불구불 산길의 본격적인 시작이다.

생각보다 둘레길은 걷는데 어렵지 않았다.

발길 닿는 곳마다 이정표가 세워져있고, 길은 갈림길 없이 따라가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헷갈리지도 않는다. 길은 이미 수많은 산책하시는 분들 덕에 더 단단하고 평탄해져있으니, 남녀노소 산책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또한 걷는 동안 교룡산의 귀여운 동물 친구들이 발견되기도 하니 즐겁기까지 하다.



둘레길을 걸으며 만난 길 동무들. 꽃향기를 맡고 날아온 나비와 귀여운 다람쥐. 사진에는 없지만 고라니들도 제법 많다

 


산속의 그늘에는 아직 봄이 안온 듯 했으나, 길에는 초록 풀들이 자라고 있다


잊을만하면 나타나는 쉼터와 이정표

고즈넉한 산길을 걷다 보면 어느새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등산객들을 만난다.

비록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있긴 해도, 반짝이는 눈빛에는 기분 좋은 설렘이 가득하다.

간단하게 눈인사를 하고 지루할 틈 없는 숲길을 바람소리에 발맞춰 걸어본다.


오가는 등산객과 나누는 눈인사


마음을 비우기 좋은 고즈넉한 산길이지만 지루할 틈 없이 변화무쌍하다




산길의 필수 코스 작은 돌탑

유명한 산길이라면 꼭 있다는 작은 돌탑에 돌을 올려 소원을 빌어본다.

그리고 유난히도 파란 하늘을 벗 삼아 천천히 걸어본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 보면 어느새 마냥 평탄하기만 했던 길이 나를 높은 산 위에 올려둔다.

이렇게 내가 높이 올라왔던가 싶어 다시 뒤를 돌아봐도 전혀 가파르지 않은 길이다.

저 멀리 마주한, 낮게 깔린 풍경들이 신기해 한참을 바라보았다.


작은 대나무 숲길과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어린 메타세쿼이아 길




눈치채지 못할 사이 정상에 도착했다


#계절을 따라 걷는 길

30분쯤 산길을 따라 내려왔을까.

이젠 마을 길의 시작이다.

저 멀리 알록달록한 지붕들이 마냥 귀여워 카메라에 담아본다.

누군가가 심어둔 벌거벗은 묘목들이 궁금해 가까이서 살펴보기도 하지만,

나는 전혀 알 길이 없어 금세 포기하고 만다.

정오에 출발했었는데 어느새 해가 많이 기울어 푸른 잎이 따스한 빛이 머금는다.

보기만 해도 노곤해지는 따뜻한 햇볕 때문일까, 늘어지게 낮잠이 자고 싶었지만 꾹 참고 다시 걸어본다.


알록달록한 지붕이 귀여운 마을


이름 모를 묘목들이 빼곡하게 심어져있다


반짝반짝 빛을 머금은 봄


마을 곳곳에 심어진 이름 모를 나무들

- 아 매실나무였구나!


하얗게 팝콘처럼 피어난 매화


파란 하늘 때문에 더 돋보이는 하얀 매화


매화가 만들어낸 작은 터널


반짝이는 매화 반지

이제 이 길을 지나고 나면 처음 출발했던 교룡산 국민관광지의 주차장이다.

울창한 나무 때문에 어두컴컴해진 길 사이로 한줄기 빛이 든다.

예쁜 그 빛을 놓칠세라 또다시 부지런히 눈에 담아 본다.

“Sometimes I don't. If I like a moment, for me, personally,

I don't like to have the distraction of the camera. I just want to stay

가끔은 사진을 찍지 않아, 정말 멋진 순간… 나를 위해서,

이 순간을 망치고 싶지 않아서 그냥 이 순간에 머무를 뿐이야. 바로 이 순간”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라는 영화 속 내가 좋아하는 대사이다.

사진을 촬영하는 이유는 아름다운 순간을 함께하고, 오래 기억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뷰 파인더로만 풍경을 담기만 한다면, 내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는 장면은 별로 없을 것이다. 난 오늘 오래간만에 한 나들이에서 마주한 사소한 기쁨들과 계절을 마음에 부지런히 담았으니

그걸로 되었다.

이른 봄날을 온전히 즐길 수 있었던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걷기 여행이었다.


+)교룡산 둘레길은 지금 등산객들을 맞이하기 위해 한창 단장 중이다.

임도 치료 중이라는 얘기는 전해 들어 사전에 양해를 구하고 오긴 했으나,

여름까지 공사가 이어질 수 있다고 하니 방문하는 분들은 미리 알아두셔야 할 것 같다.



곳곳에 공사중인 모습



▶코스 경로: 교룡산 주차장–보성마을 갈림길–사방댐–금강마을 갈림길–화정마을 갈림길–교룡산 주차장

(순환형 코스이기 때문에 어느 방향으로 돌아도 상관없다)

▶거리: 8 km

▶소요 시간: 걷기에 집중한다면 3시간, 쉬엄쉬엄 구경하며 걷는다면 4시간

▶코스 타입: 순환형

▶편의시설: 교룡산성 주차장 및 관광단지 내에 화장실 2개 있음

상가 및 매점은 없기 때문에 사전에 식음료를 준비해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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