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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성주] 봄이 스며든 산책로, 성주 별고을길 1코스

2021-04 이 달의 추천길 2021-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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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봄이 필요한 시점!

성밖숲부터 성주읍성, 성주 전통시장까지 걷기여행

성주 별고을길 1코스

글, 사진 : 여행작가 김정흠


이제는 봄이 필요한 시점

대구에 사는 Y에게 사진 한 장을 받았다.

남쪽엔 매화가 피었다며, 이제 봄이라는 이야기와 함께.

그래, 봄이다. 새싹이 돋아나고, 세상에 활기가 생겨나는 봄.

봄기운은 조금씩 세상에 스며들고 있었다.

내가 아직 길고도 두꺼운 패딩점퍼를 부여잡고 있는 것만 빼면 말이다.

나는 Y에게 서울은 아직 춥다고 답장을 보냈다.


​ 

봄이 왔다는데 웅크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조용하고 따뜻한 어디라도 찾아 거닐어야 했다. 그

래야만 내게도 봄이 찾아올 것만 같았다.

몸을 풀어주고, 따스한 기운을 오롯이 받아내고 싶었다.

한껏 굳어버린 몸을 풀고, 갑갑함을 떨쳐내면 마음도 한결 가벼워지지 않을까.

이제는 봄이 필요했다.

목적지는 경상북도 성주군의 별고을길이었다.

정해진 코스를 따라 걷기만 해도 마을의 구석구석을 둘러보게끔 하면서도,

성주의 역사와 문화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만나볼 수 있는 길이란다.

골목의 이야기를 탐닉하는 것도, 읍성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성주군의 서정적인 풍경을 조망하는 것도 가능하고. 무엇보다 왕버들이 우거진 숲을 거닐며 봄기운을 한껏 맞이할 수도 있었다.

성밖숲에는 봄이 왔을까

 

시작점은 성밖숲이다.

이름이 흥미롭다.

여기 어디에 성이 있다고.

이름에서 풍기는 묘한 분위기와는 달리, 멀리서 본 성밖숲은 그저 평범한 공원이었다.

오히려 좋았다. 마음이 가벼워졌다.

성밖숲 옆으로는 이제 막 얼음을 걷어낸 하천이 부드럽게 흘렀고,

탁 트인 하늘은 따스한 봄볕을 한가득 내리쬐고 있었다.

방향을 두고 걷기보다는 성밖숲을 여유롭게 즐겨보기로 했다.


성밖숲은 천연기념물 제403호로 지정된 숲이다. 3

00~500년 수령의 왕버들 50여 그루가 이 숲의 주인공이다.

거의 모든 나무가 왕버들로만 이루어진 숲이다.

나무의 평균 둘레는 3m, 키는 12.7m에 달하는 등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한다.

 

천연기념물이지만, 성밖숲은 일반인의 출입을 막지 않는다.

오히려 공원으로 조성해 많은 이가 산책이나 운동을 즐길 수 있도록 배려했다.

성밖숲은 지역 주민의 삶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으며, 도심 속의 숲으로 자리매김했다.

먼 옛날부터 그러했듯이.

이러한 모습으로 인해 성밖숲은 2017년 제17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공존상(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성밖숲은 사실 사람들이 조림한 인공 숲이다.

왕버들의 수령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이, 역사가 그리 짧은 것도 아니다.

선조들은 왜 이곳에, 성의 바깥쪽에 숲을 만들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곳은 '비보림'이다.

비보림은 풍수지리학에서 나온 말로, 주변의 기운을 보강하기 위해 조림하는 숲을 일컫는다.

주변의 기운이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흐를 때 이처럼 숲을 만들어 조정한다는 거다.


 

이에 관한 이야기를 성주군에 관한 기록인 '경산지', '성산지'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기록에 따르면 조선 중기 무렵, 성 밖 마을에서 아이들이 이유 없이 죽는 일이 빈번했단다.

이를 두고 한 풍수학자가 '마을에 있는 족두리 바위와 탕건 바위가 마주 보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재앙이 발생하니, 재앙을 막기 위해 두 바위의 중간 지점인 이곳에 밤나무 숲을 조성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고,

성주목사와 주민들이 이를 따랐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성주읍성의 서문 바깥쪽에 숲을 조성하자, 신기하게도 마을의 우환이 사라졌다고 한다.

참고로 '성밖숲'이라는 이름도 여기서 유래했다.

 

현재 성밖숲을 이루고 있는 나무는 밤나무가 아닌 왕버들이다.

밤나무 숲이 왕버들 숲으로 바뀐 시점은 임진왜란 직후로 알려졌다.

당시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지면서 마을의 민심이 흉흉해지고,

기강이 흔들렸던 것. 이에 따라 많은 사건과 사고가 터졌는데,

주민들은 이 또한 풍수지리의 기운이 변화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성밖숲의 밤나무를 베어버리고,

그 자리에 왕버들 숲을 다시 조성해 마을의 기운을 정리하고자 했다.

현재 성밖숲에 왕버들이 자라고 있는 이유다.

 

성밖숲의 노거수들에게 3월은 겨울이었다.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바람이 자유롭게 드나들고 있었다.

수십 그루의 거대한 왕버들이 수십, 수백 갈래로 뻗어낸 나뭇가지들이 정교한 기하학무늬를 만들어냈다.

새싹이라고는 없었다. 아니, 그런 줄 알았다.

가까이 다가가서 자세히 살펴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가지 끄트머리에서는 잎을 움 틔워낼 준비가 한창이었다.

아주 서서히, 봄이 오고 있음이 느껴졌다.


골목 탐닉

 

성밖숲을 빠져나온 후에는 별고을길 1코스를 따라 걸었다.

적어도 수십 년은 이곳에서 사랑방 역할을 했을 법한 구멍가게,

전통 한옥 또는 일본식 적산 가옥 형태의 가정집 등이 동네의 역사를 투영하고 있었다.

마치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연결된 골목길은 이곳의 역사가 꽤 오래되었음을 방증했다.



 

그러고 보니 성주군은 꽤 오랜 역사를 품은 도시였다.

성밖숲에 얽힌 일화도 그렇거니와, 중심지 곳곳에 여러 역사 유적 혹은 그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갑자기 흥미가 솟아났다.

봄을 만나러 왔다가 예상치 못한 역사 기행을 하게 될 줄이야.

 

성밖숲을 뒤로 한 채 별고을길 1코스를 따라 걷다 보면 가장 먼저 등장하는 비석, 쌍충사적비다.

이 비석에는 성주목사였던 충의공 제말 장군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는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을 조직해 성주목 일대를 방어했음은 물론, 주

변 지역으로까지 진출해 왜적에 맞서 싸웠던 인물이었다.

쌍충사적비는 제말 장군과 그의 조차 제홍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정조가 직접 내린 사적비인 것.

현재 성주초등학교 앞에 자리하고 있던 이 비석은 일제강점기 때 훼손되었다가,

1940년대에 이르러서야 지금의 위치에 자리를 잡았단다.


 

그 옆으로는 심산기념관이라는 이름의 건물이 있다.

심산은 독립운동가 김창숙의 호.

김창숙은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을사오적을 비판하는 상소를 올려

옥고를 치른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일제강점기 중에는 해외의 여러 곳을 다니며 조국의 독립을 위한 활동을 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일원으로도 활약했다. 광복 후에는 민주주의를 위해 끊임없이 싸웠던 투사였다.

조선의 교육기관이었던 성균관을 재정비, 성균관대학교로 새롭게 탄생시킨 인물이기도 하다.

심산기념관은 김창숙의 고향인 성주군에서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이 외에도 골목 곳곳에 조선 시대의 유적이 많이 남아있었다.

쌍충사적비 바로 뒤에 자리하고 있는 성산관은 조선후기 객관으로 사용되었던 관청 건물이다.

언덕 위에 있는 봉산재는 이 지역에 기반을 두고 있는 성주이씨가 조상을 기리는 재실이다.

성주읍성의 성곽을 거닐며


별고을길 1코스를 걷고 있는데, 저 멀리서 성벽처럼 보이는 건축물이 눈에 띄었다.

어디서나 잘 보이는 저것을 그냥 지나치기에는 아쉽지.

코스에서 잠시 벗어나는 듯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어차피 마을의 구석구석을 특별한 방향 없이 돌아다니고 있던 터였으니까.

마침 주변보다 높은 언덕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기도 했다.

 

성벽의 정체는 성주읍성이었다.

고려 우왕 6년(1380년)에 처음 토성 형태로 지어진 시설로, 조

선 중종 대에 이르러 석성으로 개축한 건축물이었다. 둘

레만 해도 2.1km에 달할 정도로 거대한 규모였단다. 임

진왜란 발발 직전에 성문을 건설해 완전한 성의 형태를 갖추었지만,

왜군에게 점령당하기도 했던 아픈 역사의 현장이었다.

이곳에 있었던 조선왕조실록 보관소인 성주사고도 당시 파괴되었다고.

옛 성주읍성은 거의 흔적만 남은 상태.  

별고을길 1코스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작은 안내 표지들로만

어떠한 모습이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작년에 성주군이 읍성의 일부, 그러니까 북문을 포함한 270m 구간을 복원해 선보였다.

엄청난 높이로 지역을 방비했던, 그 웅장한 모습을 엿볼 수 있게 된 셈이다.






 

청사도서관 옆으로 조성된 성주역사테마공원은 나를 성주읍성의 북문으로 인도했다.

남쪽에서 비스듬히 쏟아지는 햇볕이 방해물 하나 없이 그대로 공원 전체를 감싸 안았다.

봄기운이 한껏 올라오는 것만 같았다.

천천히, 성문 옆으로 난 계단을 하나씩 올랐다.

마지막 계단을 밟았을 때 성벽 너머로 따스한 분위기의 성주군 읍내의 모습이 펼쳐졌다.

저 멀리 구미의 금오산의 능선까지도 어렴풋이 보일 정도의 아름다운 소경이었다.


성벽 위에서 안온한 봄 기운을 한껏 받아내고 있는데, 어디선가 짙은 매화 향이 날아들었다.  

설마 벌써 매화가 피었다는 걸까. 몇 번이나 다시 맡아봤지만 틀림없었다.

KF94 마스크의 촘촘한 필터까지 비집고 들어올 정도로 강한 향이었다.

나도 모르게 매화향이 나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성벽 끄트머리, 그저 사람이 지나는 골목길 어귀에 꽤 오랜 세월 뿌리고 내린 채

자리를 잡고 있었을 매화나무 서너 그루가 화려하게 꽃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봄이구나.


봄이 스며들 때



 

다시 골목 속으로.

담벼락 너머로 고개를 내민 홍매화를 감상하고, 문 앞에 둔 화분에서 피어나는 새싹을 만났다.

겨우내 적막하기만 했을 초등학교 앞 골목길에도 생기가 감돌았다.

차분하고 조용했지만, 왠지 모를 활력이 느껴졌다.

봄은 그렇게 고요하게, 차근차근 곁에 다가오는 중이었다.

 

마을과 간선도로를 연결하는 어귀에는 시장이 있었다. 성주전통시장이었다.

1800년대부터 형성되었다는 이곳은 대구에 있었던 전통시장과 더불어

경북을 대표하는 거대한 장터였단다.

이미 1887년에 정기시장이 개설되어 지금까지도 2, 7일에 오일장이 열린다.

100여 년을 훌쩍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것이다.

아케이드 시설이 길게 뻗은 중심부를 비롯해

시장 주변으로도 활기가 넘치는 상권이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오일장이 열리는 날짜에 맞춰 걷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며 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따끈한 고깃국물을 끓여내는 국밥집, 소소한 물건들을 파는 잡화상점, 경상도 곳곳에서 들여와 진열대를 완성한 과일 상점, 그리고 올해 농사를 준비하는 이들을 위한 농기구 상점까지.

장날이 아님에도 문을 열고 손님을 맞이하는 이들의 표정에도 봄이 스며들고 있었다.

** 성밖숲, 성주역사테마공원, 성주전통시장 등에 화장실이 있습니다.

** 2021년 3월 현재, 심산기념관이나 성산관 등 주요 시설과 유적지의 문은 닫힌 상태입니다.

성밖숲 공원은 이용 가능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한 임시 휴관)

** 성주전통시장에서는 날짜의 끝자리가 2, 7로 끝나는 날에 오일장이 열립니다.

** 성주역사테마공원은 현재 조성 중인 곳이지만, 일부 시설(성벽 등)을 둘러볼 수 있습니다.



▶코스 경로: 성밖숲 - 쌍충사적비 - 심산기념관 - 성산관 - 청사도서관 - 봉산재 - 요도 - 관왕묘 - 성주전통시장 -

성밖숲

▶거리: 2.5 km

▶소요 시간: 1시간 30분~2시간

▶코스 타입: 순환형

▶편의시설: 성밖숲, 성주역사테마공원, 성주전통시장에 화장실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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